망상 노트
코끼리 먹기
이 나이가 되어서는 나보다 오래 산 생물을 먹는 것이 좀처럼 쉽지 않게 되었다. 식재료 중에 오래 사는 것을 꼽으라면 그나마 흔한 것은 자연산 바닷가재이고, 거북이도 구하기는 어렵지 않겠지만 식재료로 쓰일 녀석을 찾는 것은 국내에선 힘들 것이다. 이따금 수산시장에 고래고기가 들어오고는 하지만 해체된 상황에서는 나이를 알 수는 없다.
바닷가재는 나이에 따른 맛의 차이가 그리크지 않다. 그도 그럴 것이 랍스터는 유전자를 완전히 복제하는 동물이라서 어린 개체나 나이 든 개체나 텔로미어의 길이가 똑같다. 오래 살 수 있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이가 먹어라도 맛의 차이가 거의 없다. 크기에 따른 식감 정도의 차이만이 있을 뿐이다. 거북이는 보통의 파충류와 맛이 비슷하다. 파충류는 조류 중에서도 닭과 맛이 비슷하다. 뱀에게서도 닭 맛이 난다. 아나콘다에 전분을 입혀 튀기면 닭다리보다 먹을 것이 많을지도 모른다. 악어 튀김을 파는 나라도 있지만, 먹어본 적은 없다. 악어의 나이가 나보다 많지도 않다.
내가 가장 먹어보고 싶은 동물은 코끼리이다. 코끼리의 수명을 70년으로 생각한다면 적당히 50년 정도 산 녀석이 좋을 것 같다. 맛을 생각한다면 15~20년 된 코끼리가 맛있겠지만, 코끼리를 먹고 싶다는 부분에서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많은 나이이다. 축산업을 하시는 분들은 살이 잘 여물지 않았다는 이유로 송아지 고기를 먹지 않는다. 경제적인 이유로 30~36개월 된 소를 도축하지만, 가장 맛있는 연령은 그 이후가 아닐까 싶다.
어쨌든 코끼리다.
'코끼리가 먹고 싶어.'
'응? 뜬금없이 코끼리가 먹고 싶다고? 파는 곳이 있나?'
'아프리카 국립공원 안에 자연사 한 동물들로 요리를 해주는 음식점이 있다는 걸 들은 적이 있어. 하지만 나는 도축된 젊은 코끼리를 먹어보고 싶어.'
'코끼리 지능에 높아서 먹으면 안 되는 것 아닐까?'
'그건 굉장히 문명적이기도 한 생각일 수도 있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지능이 낮은 생물은 잡아먹어도 된다는 뜻인가? 그렇다면 사회적으로 부족한 개체들에 대한 차별을 은연중에 인정한다는 것으로 들리는데...'
'그렇게까지 심각하게 생각하고 싶지는 않아.'
'코끼리를 먹고 싶다는 건, 상당히 심각한 문제야. 원하는 식재료를 구할 수 없는 것이 일단 가장 큰 문제이고, 밀렵꾼이 코끼리의 상아만을 취하기 위해서 사냥을 한다면 제삼자인 내 입장에서는 코끼리의 죽음이 너무나 허망해 보이거든. 상아의 값어치가 얼마이건 간에 말이지. 심지어 신생대 마만트의 뼈로는 집까지 만들었는데, 지금은 상아만 잘리고 버려지는 썩은 고기가 되는 거야...'
'내가 어떻게 해줄 방법이 없네.'
'그냥 이런 헛소리를 들어주는 걸로 충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