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 흑인 테니스 선수의 진기명기

by 김철수

보통의 토요일이라면 늪과 같은 침대에서 아직도 허우적대고 있을 시간이었지만, 오늘은 그럴 수 없었다. 이사를 위해 최근 본 집은 마음에 들었다. 규모에서 오는 쾌적함은 물론이거니와 적당한 외부 테라스와 프라이빗한 옥상까지도 마음에 딱 들었다. 아쉬움이 있다면 외부주차를 해야 한다는 점뿐이었다. 사실 지금 집은 내부주차를 제외하면 마음에 드는 구석이라고는 찾기 어려운 상황이다. 어쨌든 오늘은 이사할 집의 계약서를 쓰는 날이다.


중개사무실이 도보로 5분 이내의 거리라서 느긋하게 영상을 영상을 보며 샤워를 하는데, 괴물 흑인 테니스 선수의 진기명기라는 제목이었다. 료마에 대해서 잠깐 생각하다가 뭔가 껄끄러운 부분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괴물은 비유적인 표현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는데, ’ 흑인‘을 굳이 제목에 쓴 이유는 무엇일까?


등급을 나누어야 할 필요성이 있는 경우에는 하나의 카테고리 안에 있는 대상을 세분화하며 하나하나에 명사, 또는 대명사를 부여하고 분류한다. 차별은 이러한 분류에서 특정집단을 우대하는 경우 발생하는데, 처음에는 그럴 의도가 아니었지만 특정집단을 우대하기 위해 그러한 분류가 생겨나기도 한다.


인간을 분류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지역에 따라 서양인과 동양인. 피부색에 따라 백인과 흑인. 성별에 따라 남성과 여성. 연령에 따라 아동과 성인. 이러한 기준은 사실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문제가 되는 것은 이런 기준에 따라 나눠진 집단들에 대해 다른 방법들이 적용된다는 점이다.


남녀 함께 대중목욕탕에 들어가는 것은 쉽게 상상하기 어렵다. 물론 그러한 문화가 있는 곳에서는 목욕이라는 카테고리에서 남녀를 구분할 필요가 없겠지만, 대다수의 나라에서는 통용되지 않는 문화이기 때문에 남녀의 구분이 필요하다.


아동과 성인은 그 기준이 불분명하다는 것이 개인적인 생각. 마찬가지로 청소년과 성인도 기준이 불분명하다. 정신적 성숙 어쩌고 하는데, 나이가 몇 살이건 정신적으로 성숙하지 못한 사람들은 얼마든지 있다. 차라리 육체적으로 생식이 가능한 시기로 분류한다면 기준이 명확하지 않을까 한다. 어쨌든 이런 기준에 따라 이런저런 자격이 부여되고 혜택을 얻기도 한다. 사회적인 약속에 따라서 말이다.


피부색으로 사람을 분류하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피부색이 다르기 때문에 병원에서 다른 피를 수혈받아야 하는 것도 아니고, 다른 음식을 먹어야 하는 것도 아니고, 다른 화장실을 써야 하는 것도 아니다.


다르지 않은 것을 다르다고 생각하며 그것에 의미를 두는 순간 차별이 시작된다. 반대로 다른 것을 인정하지 않고 다르지 않다고 하는 순간에도 역차별이라는 문제가 발생한다.


‘괴물 흑인 테니스 선수의 진기명기’

테니스라는 경기에서 선수를 분류하는 기준은 남성과 여성뿐이다. 공식대회에서 남성과 여성이 겨루지는 않으니 말이다. 이 또한, 공식적인 경기가 아니라고 한다면 필요 없는 분류이기도 하다.


많은 인종차별주의자들이 저학력자들이다. 타인의 학력이야 아무래도 상관없지만, 그 파생효과가 집단적 사회악의 발현이라면, 그리고 그 영향을 조금이라도 받게 된다면 더 이상 상관이 없다고 말하기는 힘들 것 같다.


매체의 특성상 불특정 다수가 보게 되는데, 아무런 생각 없이 저런 제목을 본다면 무의식 속에 차별의 싹이 움트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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