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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희 Sep 03. 2024

꽃병이 된 셰이크 보틀


남편의 최애 기호 식품은 커피다. 외출했다 돌아오면 항상 커피를 마신다. 밖에 나가 있는 동안 안 마셨으니 커피가 먹고 싶어 안달 낸다.

남편이 외출에서 돌아오자마자 커피포트 버튼을 누른다. 내가 커피를 탄다.  집안 살림을 안 하는 내가 남편에게 해 줄 수 있는 일이기에 기꺼이 한다. 오늘은 같이 마시려고  잔을 탄다.

아메리카노답게 머그컵 한 컵 가득 찰랑거린다., 나는 오늘은 많이 마시고 싶지는 않아 반만 타야지 생각했는데 눈 깜짝할 사이 어!  내 컵에도 아메리카노가 한잔 가득 출렁거린다. 두 컵에 똑같이 타버렸다. 아! 그 건망증


른 컵에 반쯤 따라서 냉동실에 넣어 두어야지. 좀 있다가 차게  먹어야지.


주변에 담아둘 컵이 없다.  선반을 보니 아들의 셰이크 보틀이 보인다. 검은 것이 보기엔 튼튼해 보여  뜨거운 커피를  2/3 정도 부었다.


거실 안락의자에 앉아 커피를 홀짝 거렸다. 한두 모금 마시니 커피가 없다. 좀 더 마셔야지

 보관해 둔 커피를 보틀에서 따라먹으려는데 뭔가 이상하다. 아까 그 모양이 아니다. 비스듬히 기울고 크기도 작아졌다. 1분 사이에 일어난 일이다.


이게 이렇게 쉽게 망가질 줄이야

후회해도 이미 태는 늦었다

아들의 셰이크 보틀은 금방 주문했다. 내일쯤 배달 오겠지


망가진 것은 어떻게 할까?

모양이 좀 특이해져서 버리기는 아까운데

불균형 속에 균형이,....

나도 모르게  예술을 한 건가?

뚜껑은 버리고 꽃병으로 쓰자.


아침에 보니 뚜껑이 덮여 있다.  그러고 보니 뚜껑에

구멍이 있어 좋네. 꽃은 한송이만 꽃아도 되니까.


가위를 들고 텃밭으로 나간다.


부추 꽃이 한창이다.  고운 란 같다. 아니 내가 좋아해서 심으려 했다 나도 흰꽃 나도 샤프란같이 예쁘다. 꽃대가 올라오면서 키도 커졌다.


저번 만항재에서 박남준 시인의 직접 하는 시낭송을 들었다. 산에 가서 나무를 하는데 시인이 다쳤단다. 시인이 베다간 다친 것은 나무의 옹이 부분이 단단해서다. 다리를 쩔뚝거리며 지게에  지고 온 나무를 아궁이에 때고 남은 하얀 재를 부추밭에 뿌렸단다. 옹이 진 인생 언제나 필까?

그리고 피어난 하얀 부추꽃

시인의 시 중 부추꽃에 대한 부분을 올려본다.

.

'흰 부추꽃이 피어나면 목숨이 환해질까?

부추꽃 그 환한 환생 '


시를 생각하며 그 앞을 맴돌다 '미안해 ' 하며 두 송이 꺾는다.


흰 꽃송이 사이에 꽂을 분홍색 낮달맞이꽃도 꺾는다.

이렇게 우리 집 식탁 가장자리에는 꽃병이 자리 잡고 앉아 있다. 

우리의 환한 인생 계속 이어지기 바라며 화사한 꽃병 하나 탄생 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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