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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희 Sep 26. 2024

중섯재에 가면 그분이 계신다.

행복한 고흥 사람들

남편과 함께 그분을 찾아간다. 중섯재로 오르는 길이다.     

중섯재는 고흥의 박지성 스타디움에서 시작하여 운암산으로 오르는 길목이다. 운암산은 고흥의 중심부에 있으며 정상에는 어머니의 산이라 적혀있다. 고흥 사람들에게는 포근한 품을 내어주는 산이다. 바다 조망이 잘되는 팔영산이나 봉래산에 비하여 다 잘 알려지지는 않지만 운동하기에 더없이 좋다.     

고흥의 운동장에 운동선수 이름이 붙은 운동장이 있는데 고흥읍에는 있는 공설운동장에는 박지성 스타디움 목동에 있는 운동장에는 고흥 출신 축구선수 김태영 운동장이라 이름을 붙였다.

고흥은 박지성 아버지의 고향인데 아버지가 어려웠던 당시 고흥에 세 점암초등학교 신기분교에서 4학년까지 다녔다고 한다.     

브런치 글 이미지 1

 중섯재에서 운암산 정상까지는 500m 거리라 적혀있지만 경사도가 심한 편이라 중섯재에서 숨을 고르고 가야만 한다. 내려올 때도 마찬가지다. 시원한 그늘이 있고 편안한 벤치가 있어 좋았다.

중섯재라 하여 버섯과 관련 있나 아니면 운암산 오르는 중간 부분이라 중섯재인가 하며 그 이름이 붙은 연유를 알고 싶었으나 인터넷 검색을 하여도 잘 나오지 않았다.

그런데 중섯재란 이름은 중(스님)이 서 있는 고개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한다. 수도암과 지금은 절터로 남아 있는 중흥사로 스님들이 오르내리다 잠시 쉬는 곳이었던 모양이다.     

운암산을 오르기도 했지만

중흥마을로 가는 길도 자주 걸었다. 그 길은 고흥의 마중길 2코스이기도 하다. 도자기 이야기가 있는 길인데 그중 2구간인데 길이름이 싸목싸목길이다. 쉬엄쉬엄 걷는 길이라는 이름의 이 길은 보통사람들이 정말 운동하기에 좋은 길이다. 그때는 일이 없을 때는 그곳으로 갔다.     

 중섯재에서 쉬곤 했는데 어느 날 그분을 만났다. 산에서 내려오는데 색소폰연주를 하고 계셨다.

산에서 음악을 듣는 것은 즐거운 일이었다. 그냥 앉아서 쉬기만 해도 좋은데 음악이 있어 신나는 쉼터였다. 앉아서 손뼉을 치다가 이야기도 하게 되었다. 경찰(경감)로 퇴직하시고 음악에 심취해 계셨다. 기타, 색소폰, 노래 모든 분야에 뛰어난 분이었다.

 지나가는 객들에게 커피도 한잔 대접하시고 담소를 나누기도 하신다.          

그러다 그 당시 우리에게 가장 골치 아팠던 일을 해결하게 되었다. 처음에 고흥으로 귀촌할 때는 귀농어인의 집이라는 곳에서 살았는데 1년 동안만 살 수 있는 곳이라 정착할 집이 필요했다.

시골 집값이 싸다고 하지만 부동산이나 광고를 보고 가면 실랑이 컸다. 부모님이 사시다 돌아가시고 난 후 청소도 하지 않은 몇 년 묵혀둔 집들이 대부분이었는데 수도 시설, 화장실, 도배장판 등 보수해야 할 부분이 많았고 보수를 한들 꽤 적한 환경이 되지 않았고 신축하는 돈을 들여 안 할 정도의 집들이 대부분이었다. 어느 정도 괜찮은 집은 가격이 억대를 넘어갔다.

그런데 어느 날 그분 최소장님의 중섯재사랑방에 다른 분이 앉아계셨다.

이야기 도중 "우리 집에 들어오시죠"

농담인 줄 알았는데 진짜였다. 부모님 집을 보수해서 들어가 살려고 했는데 사정이 있어 10년 정도는 그곳에서 살 수 없을 것 같다고 했다.

세 들어 사는 분이 다른 곳으로 이사를 한다고 몇 달 후 집이 빈다고 한다.

그 집에 찾아가 본 후 마음에 든 우리는 새 보금자리를 구하게 되었고 고흥에서의 생활을 안정된 가운데 행복한 생활을 할 수 있었다.     

브런치 글 이미지 2

최소장님의 사랑방이 인연이 되어 우리는 집을 구하였고 그 후 나는 여행기와 귀촌 작가단으로 글을 쓴다고 매일 중섯재로 운동하러 못 가고. 남편은 계속 중섯재로 간다.     

소장님은 그곳에서 주변 쓰레기를 다 정리하신 후

지나가는 사람들과 담소를 나눈다. 말을 잘 경청해 주시니 대화가 재미있다. 지나는 분들과 눈높이를 맞추어 재미있게 대화하시고 커피도 한잔 대접하니 길 가다 뜻밖의 행운을 만난 것 같다. 그리고  기타 치며 노래를 시작하신다. 김광석의 노래를 잘 부르시지만 양로원 봉사활동을 위하여 트로트 연습도 한다. 점점 노래 실력이 늘어나시니 연습하시는 것을 들어도 거리공연을 보는 것 같다. 혼자서 좋아하는 기타를 치며 노래하는 것이 제일 행복하시다는 소장님, 지나가시던 분들이 손뼉 치고 잘한다고 격려해 주시면 금상첨화란다. 처음에 시작할 때는 90%의 사람들이 별난 사람 다 있다는 눈으로 보았는데 요즘은 90%의 분들이 손뼉 치고 격려의 말을 해준다고 한다.     

직장생활을 할 때 누구보다 치열하게 직장에 최선을 다했기에 지금의 자유로움이 너무 행복하다고 하신다. 제복과 시간, 일에서 오는 긴장의 생활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란다. 청바지를 입고 다니지 못하는 직장의 분위기가 아쉬웠던 때문인지 지금은 항상 청바지를 입고 다닌다. 카우보이처럼 모자를 쓰고 흰 티셔츠에 청바지를 입으신 모습도 멋있다.     

현재 다른 일을 하고 싶으시지 않으냐는 질문에 돈은 어떻게 버느냐고 아니고 어떻게 쓰느냐가 관건이다. 내가 지금 돈을 벌면 자식에게는 도움이 되겠지만 나 자신을 위해서는 큰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다. 자유롭게 하고 싶은 일 하며 이렇게 사는 것이 행복하다. 내 일생 중 가장 행복한 때가 지금이라고 말씀하셨다.     

우리와 같이 노래를 부르다가 소장님은 마지막 일과인 테니스를 하기 위해 총총히 떠나신다.     

멋지고 행복한 고흥 사람

최 소장님

존경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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