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언제나 내가 무뚝뚝하고 상냥하지 않다고 한다. 사실 사고방식과 관심분야, 취향이 달라서 남편과 대화를 하는 것은 무미건조하다. 내가 가끔 그의 말에 영혼 없는 맞장구를 치는 게 다이다. 자신의 말에 동의를 해주기를 바라고 존경, 이런 것을 바라는 것 같다. 그러면서 남은 배려하고 가장 가까운 자기는 배려하지 않는다 한다. 남에게 잘하지 말고 자기한테 잘하라는 말을 항상 한다.
남편은 나를 어렵게 여기고 배려하느냐 하면 그렇지 않다. 필터 없이 편안하게 듣기 싫은 말을 한다. 나는 익숙해져서 그 많은 말들을 한쪽 귀로 흘려버린다. 이렇게 세월을 흘려보낸다.남편에게 내가 만만해 보이나 생각할 때가 많다. 은퇴할 때까지 가계를 꾸려왔던 것은 나이기 때문이다. 평생 제일 많이 배려해 준 사람은 자기인 줄도 모르고......
하지만 그도 공짜로 사는 것은 아니다. 그는 집안일도 하고 차박여행도 같이 한다. 밥하고 운전하고 고된 일을 혼자서 다하려고 한다.자기 건강관리 잘하고 나름 괜찮은 면도 있다.
밖에 나가면 자연에 취해 말이 통하기 시작한다.
"아 공기 좋다."
"저기 봐, 하늘에 구름 한 점 없네."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만만하게 보일 때가 많은 것 같다. 키도 작고 뚱뚱하기도 하고 그리고 항상 웃고 다니기 때문일 것이다.
불갑산 상사화 축제날 중 하루였다. 남편이 화장실 간 사이 혼자 두리번거리며 걸어가고 있는데 회색 상하의 절복을 입은 초로의 여성분이 내게로 다가왔다.
"가족 모두 업장소멸하고 소원성취세요"
라는 덕담을 해 주셨다. 그리고 묵주와 열쇠고리 하나를 선물이라며 내 손바닥에 위에 올려 주셨다.
쓸 수 없는 정도로 아주 조잡한 것이었다.
덕담이 고마워서인가? 견물생심인가? 곧 버려질 물건인데 받으려는 마음이 생겼다
"이거 공짜로 주시는 거예요."
"우리가 이걸 선물로 주기는 하지 하지만 선물은 받은 사람은 그냥 있으면 안 되지"
"저요, 지금 현금 하나도 없어요."
그러자 두말없이 묵주와 열쇠고리를 받아 들고 다른 사람에게로 갔다. 그래도 덕담은 거둬가시지 않았다.
공짜가 아니었다. 선물로 그냥 줄 생각은 없었다.
내가 돈을 가지고 있었다면 만원 정도는 드렸겠지.
절복은 입고 있으나 불갑사 쪽의 분들은 아닐 것이다. 그래도 덕담은 거둬가지 않았으니 그건 내가 받고 오늘부터 다른 많은 분들께 감사나 칭찬이나 덕담을 해야겠다.
보성녹차휴게소에서 있었던 일이다. 오랜만에 가족이 광주로 가는 날이다. 남편은 외부 음식을 안 먹으니 휴게소에 들러도 재미가 없었는데 아들이 있어 주전부리를 할 생각이었다. 화장실 간 아들을 기다리며 서있는데 두 여성분이 책상 앞에 계란을 얹어 놓고 앉아있었다. 나를 보고 계란 하나 선물 받으세요.라고 했다.
"계란하나?
삶은 계란도 있나요?"
"네 삶은 계란 날계란 다 있어요."
"그럼 삶은 계란 하나 주세요."
그러니 한분이 눈에 뜨이지 않던 뒷공간에서 계란을 하나 내주었다. 계란이 정말 따뜻했다.
우리 아들 것 하나만 더 달라고 말하려는데 이번엔 10구짜리 계란도 한 판을 가져가라고 했다.
이건 아닌데 난 공짜 계란 두 개만 원했어.
시간이 얼마 흐르지 않았다. 다른 한분이 파일을 펼치고. 있었다.
아뿔싸!
이건 아니다.
화들짝 놀라 받았던 계란 하나 돌려주었다.
"우리 계란 정기배송 배달 안 시켜요."
그분들은 계란은 돌려받고 더 이상 설득하러 애쓰지는 않는다. 그것만으로도 다행이다.
나는 공짜로 준다는 말을 액면 그대로 믿었을까?
내가 순진해진 것 읽까?
오늘 더 확실히 해둔다.
공짜 뒤에는 항상 함정이 있다.
지금 누군가 공짜를 준다 할지라도 결국 공짜는 크나큰 빚일 뿐이다.
공짜는 없다. 공짜는 없다.
그리고 어쩌면 내가 남을 배려해 주는 사람이 아닐까? 하고 웃어 본다. 그러나 유혹에 빠져들지 않았으니 어느 정도는 판단력도 있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