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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희 Sep 24. 2024

고흥에 머물다-오늘 아침엔 벌레가 한 마리도 없다.

술 마신 양배추

9월 11일 양배추 모종이 왔다.

밑거름도 넣고 일주일 동안 물을 충분히 뿌려 밭을 만든 곳에 아주심기를 했다.


9월의 폭염

양배추에겐 생과 사의 길이었다. 한낮에 시들시들하다가 땅바닥에 달라붙더니 다음날 아침에 보면 아 정신을 차리고 하늘 향해 가녀린 팔을 뻗고 있곤 했다.

일주일 정도 물만 주었다. 벌레는 그리 달려들지는 않았다. 하루도 구름 낀 날도 없어 양배추는 생과 사를 넘나들었다. 그중 3 포기는 흔적도 없어져 버렸고 뿌리 활착을 못한 3그루는 아직도 생존을 위하여 사력을 다하고 있다.


차박 간다고 집을 비운 나흘

집에 돌아오니

청벌레 메뚜기 벼룩잎벌레가 보였고 양배추 잎이 구멍이 나기 시작했다.


그다음 날부터 비가 오기 시작했고 폭우가 쏟아지기도 했다. 비가 와서 양배추는 그저 바라만 보고 있었다. 벌레들도 활동을 못한다고 했다.


사흘 후

하늘이 맑게 개었다.


싱싱한 청벌레 3마리가 신나게 먹고 있었다.
벼룩잎벌레 메투기 그리고 민달팽이 소행인듯. 현행범은 없었다
성장점이 없어진듯 곁싹이 났다. 일단 하나만 남기고 제거
비교적 정상인 양배추

텃밭은 총체적 난국이다. 아직은 초록빛은 있지만 내일 아침은 어떻게 될지 모른다.


드디어 시작했다.

해충들을 핀셋으로 모두 잡았다. 청벌레는 당장 없어졌지만 벼룩잎벌레는 좀 있다 보면 또 날아온다.

벼룩이뻘레

 큰 나비, 작은 나비 나는 것들은 들은 눈에만 띄어도 밉다.


작년에는 해충인 줄도 몰랐던 무당벌레를 닮은 벼룩잎벌레도 귀엽기만 했던 메뚜기도 모두 해충이다. 이들을 잡으니 살생이라는 뭔가가 또 가슴을 무겁게 한다.


날이 개어 맑은 날 해충들의 잔치상이 될 나의 텃밭이 너무 걱정된다. 오늘 저녁만 지나도 내일 양배추가 생선뼈처럼 되어 있을 것 같다.


오랫동안 준비했던 그것

오늘 해야 할 것 같다.  그것을 뿌릴 것이다.


사카린, 주방세제, 물, 그리고 담금주인 소주이다. 처음이라 반신반의다. 우선 좀 세게 제조한다. 담금주 500 ml  물 1500l  사카린 5g 주방세제 3번 2l 분무기에 넣고 섞었다.


양배추에도 온 잎이 씻길로 정도  충분히 뿌렸다. 혹 양배추가 시들해질까 걱정했다.


그리고 추비를 했다. NK비료를 5cm쯤 떨어진 곳에 땅을 파고 붙었다. 물은 주지 않았다. 현재 습도는 충분하고 비료가 빨리 흡수되면 양분이 과할까 봐서이다.


주변의 풀에도 소주살충제를 뿌렸다. 풀에서 사는 해충들도 많기 때문이다. 그들의 안식처다. 이곳에 있다가 배고프면 양배추에게로 돌진하겠지?


민달팽이 유인제

이 병은 스파게티 소스병인데 속에 들어있는 것이 민달팽이 유인제이다. 옆으로 눕혀놓으니 비도 잘 안 들어가고 민달팽이 약을 뿌리지 않아도 된다.

지난봄에 민달팽이가 수없이 들어왔다. 민달팽이의 사체로 병 속이 처참해서 보기가 힘들었다. 그 후 우리 밭에는 민달팽이가 줄었고 어쩌다 집안으로 들어오기도 했었는데 올해는 한 마리도 들어오지 않았다.


이번에도 병 속에 한두 마리씩 들어온다. 민달팽이 잡는 데는 확실하게 효과가 있다. 그래서 민달팽이는 걱정하지 않는다.


대파에 북도 주고 다른 작물에게도 추비를 했다. 작업은 결과가 어떻게 될지는 모른다.

걱정이 가득하지만 나는  최선을 다했다.


오늘 아침


일어나자마자 텃밭으로 갔다. 소주 먹은 양배추는?


싱싱하게 잘 자란다.


벌레는?


한 마리도 없었다.


평소 벌레가 많던 깻잎을 툭툭 쳐보아도 메뚜기가 뛰어나오지 않는다.


소주살충제는 대성공


언제까지 효과가 지속될지는 모르겠다.


신나는 마음으로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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