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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희 Sep 09. 2024

여보, 나는 맥가이버가 아니에요.

어떻게 내가 이런 걸......

영월차박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니 택배가 와 있었다. 한** 앞으로 온 택배인데 본인이 뜯지 않고 나보고 뜯어보라 한다. 나에게 주는 선물인가? 약간의 설렴이 있다. 현재 필요한 것은 별로 없고 또 필요하면 내가 사면 되는데 그래도 선물이라는 것은 요상한 마음을 가지게 한다. 내게 필요한 것을 굳이 뽑으라면 키높이 운동화가 있고 마스크팩이 있다.


어 이거 뷰티제품, 어떻게 알았지?

남편이  이렇게 세심해졌나? 내게 뷰티 제품을?


또 하나가 있다.

가죽케이스다, 필통인가? 아니면 붓이 들었나?


두 가지 제품을 열기 전까지는 설렘을 놓지 않았다.


두구두구두구두두~~-----


개봉박두!!!!

케이스 속에서는 가위가 나왔다. 가위 2개와 빗, 그리고 핀이 두 개가 있다.


그리고 뷰티랩 속에 들어 있는 것은  바리깡이라고 불리는 이발기이다.


"이걸 왜?"


남편의 이발기기라 한다.


"누가 미용사야?"


"당신이지. 당신 손 야무지잖아."


"아무 의논도 하지 않았는데"


"나도 사기전 많이 생각해 봤어. 고민하고 고민하다가 산 거야."


한 번도 잡아보지 않은 그 기기로 이발을 해 달란다.


이거 참 나 원!


어디 연습을 해볼 수도 없다. 연습하려고 마네킹과 인조머리를 살 수는 없지 않은가?


친구인 강수화 작가가 '재벌이 되기까지라'는 소설 속에서 미국에 건너가서  미용사가 되어 처음으로 외국인 이발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때 그 장면에서  얼마나 두근두근 했는가? 그도 돈을 받고 하는 미용사로서의 첫 경험이니......


남편의 머리카락을 깎는 일이라 그보다 긴장은 덜하겠지만 긴장하기는 마찬가지다.


유튜브로 상고머리 자르기를 한 번 쓱 보았다. 차례를 아는 것, 자르는 방법을 아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손의 숙련도가 필요한 일이다.


오늘 아침

남편이 운동을 나간다.

그리고 숙제를 주고 갔다.

이발기 사몽법을 익히라 한다.


눈으로 볼 수는 있어도 해 볼 수 있는 방법이 없다.

대충보고 브런치 스토리에 글 하나 적는다.


그러고 있는데 운동 갔던 남편이 들어오면서


"여보, 이발하자."


가 왔구나. 시간은 어찌나 빠르게 지나가는지?

엄청난 스트레스


 해보고 싶기도 하다.


  "헤어스타일 망쳤다고 원망하면 안 돼"


"그럼, 그건 각오했어"


마당에 의자를 두고 미용가운도 없이 이발 시작


이발기 시동

유튜브에서 배운 대로 뒷머리와 옆선을 먼저 잡았다.  어어. 이걸 어째, 생각보다 잘 잘리네. 방심하는 사이 뭉텅 잘린다. 쥐 파먹은 것 같다는 표현이 썩 잘 어울린다. 이러면 안 돼.

빗으로 받쳐 조금씩 잘라야지  조금씩


이제 조금씩 자른다. 작동법이 손에 익어간다.

뒷머리를 깎느라 고개를 숙였는데 앞머리를 깎는데도 자세를 바꾸지 않고 그대로 숙인 채로 깎았네. 앞머리선이 너무 올라가 버렸어.


이제 어쩔 수 없다. 나머지 머리를 조금씩 다듬어 나간다. 세심하게 신경을 쓰니  내 코가 남편 머리 가까이 간다. 머리카락이 코로 들어가는 것 같다. 다음에는 마스크를 써야겠다.


최선을 다해 깎았다. 세상에 오직 하나밖에 없는 스타일이다.  깎은 곳이 없는 것 같다.

내 눈에는 실수한 부분만 보인다.


여보, 보름만 모자 써요. 다음에는 일취월장할 것 같아요. 이제 이발기 사용법이 손에 익으니 잘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아우트라인을 잡고 한 번에 자르는 머리카락 양을 적게 적게 커트하면 될 거 같아요.


완성을 했다.

나는 미안해하고 남편은 잘 깎았다고 한다.

몇 번 하면 개성 있는 상고 스타일의 멋진 머리를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맥가이버가 아니지만 여러 일을 한다.

텃밭 가꾸기 농부(내일은 양배추 모종이 와 가을 농사 시작), 핸디재봉틀 사용하는 미싱사,  이발사,   정원사 등 여러 가지다. 요리와 운전에서만  제외된다. 나 혼자 외출할 만 스스로 운전을 한다.


맥가이버처럼 능숙하지는 않지만 재미있기는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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