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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희 Feb 29. 2024

고흥에 머물다-초보 살림꾼

60대 초보주부 이야기

  나는 한 20년간 집안일을 하지 않았다. 워크홀릭이라 한 가지 일에 집중하면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주변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일을 마치고야 주변이 보인다.

. 마침 일찍 퇴직한 남편이 전업주부가 되어 직장생활 후반 20년간은 일에만 매진하며 살 수 있었다. 아이들도 살뜰히 잘 보살피는 덕분에 집일일은 다 잊었었다. 참으로 고마운 남편이었다.


지난해 나는 명예퇴직을 했고 시간도 많이 남고 몸도 편해져 부엌일을 하고 싶어졌다. 현모양처 노릇을 하고 싶어졌다.

예쁜 그릇에 예쁘게 담은 음식을 차려  가족과 같이 먹고 싶었고  자식들에게 멘토로서 엄마로서 이제까지 못한 것들을 해주고 싶었다. 자식들은 이미 다 자랐으나 뭔가를 해줄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생긴 것이었다. 그리고 이제까지 부엌살림을 해온 남편도 쉬게 해 주고 싶었다.


 남편이 외출을 하면 나는 재빨리 텃밭으로 나가 푸성귀를 뽑아 나물을 무쳐 놓곤 했다. 그러나 그런 나의 요리는 가족들의 입맛을 맞추지 못했고 남편은 계속 자기가 전업주부임을 고집하였다. 요리는 물론 설거지조차 넘겨주지 않았다. 내가 몰래  설거지한 그릇에 무언가가 묻어 있는 것을 트집 잡아 잔소리를 하곤 해서 나는 부엌일은 놓아버렸다.


  남편과 나 그리고 아들 3명은 고흥으로 귀촌하여 살보 있고 부산집에는 딸이 혼자 산다. 30세를 넘긴  골드미스 딸은 직장 다니느라 바쁘다.


그런데..,,,,

어제 전화가 왔다. 요즘 선거철이라 일이 바빠져 엄마가 부산 집에 와 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딸은 미혼이라 혼자서 생활하니까 옛날 그 나이 때  내가 했던 일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나는 두 아이의 엄마로 가정주부로 아내로 1인 3역을 해야 했으니까. 그 시기 나는 정말 힘들었다. 거기에 간간이 고부갈등까지 있었으니 지금 생각해도 눈물에 절어 살던 그때의 상황은 한숨이 나온다.


나는 전화를 받고 뛸 듯 기뻤다. 부산으로 가면 나는 전업주부 노릇을 할 수 있다. 일이 바빠서  마음을 알아주지 못했던 지난 시절을 넘어 딸과의 사이도 가까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밭에서 내가 키운 홍갓과 상추 파 그리고  지칭개를 뜯어 봉지에 담았다. 지칭개는 ㅌ에서는 잡초에 속하나 봄에는 나물이 된다.


시외버스로 3시간 30분, 시내버스 30분 

집에 도착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일요일에 도착했으니 딸이 집에 있다.  집 정돈이 되었다고 걱정하고 있다. 새직장에 다닌 지 3개월니 그럴 만도 하지. 피곤할 때는 쉬는 게 최고다.

딸아 걱정하지 마라 내가 그것 해주려고 왔다. 엄마가 싹 다해줄게. 청소도 음식도 네 힘든 이야기도 다 들어줄게


시내버스에서 내릴 때, 우리 집보다 한 정거장 더 가서 내렸다.  슈드라는 식품할인점  있기 때문이다. 싱싱하고 값이 싸 우리 식구는 자주 이곳을 이용한다. 딸이 좋아하는 샤인 머스켓과 LA갈비를 사갈 생각이었는데 하필 일요일이라 슈드가 문을 닫았다.

제과점의 식빵 한 봉지, 모닝빵 한 봉지, 아이스크림 그리고 계란 한 판을 사서  올라갔다.


반가워하는 딸과 상봉

엄마 엄마하는 딸과 그것이 머쓱한 엄마

그래도  딸 딸 하면서 기분을 맞춰준다.

유치원 놀이를 하는 것 같다.

집은 그리 지저분하지 않았고  저녁으로는 통닭을 시켜준단다. 이건 딸이 한턱낸다.

저녁은 통닭으로 아침은 샌드위치로 먹었다.

딸이 집에서 음식을 많이는 먹지를 않네. 잘 먹는 것을 해줘야지. 내가 하고 싶은 음식을 만들어 억지로 먹일 순 없지.


다음날, 상품권  1장을 식탁 위에 올려놓는다. 시장 볼 때 쓰라고 한다. 10만 원권이다. 마트에 간 김에  고등어찜을 하려고 생선코너로 갔는데 하얀 갈치도 눈에 띈다. 고등어 한팩 9800원, 갈치 작은 팩 6800원. 둘 다 살 수는 있으나 신선해야 하니 오늘은 고등어만.

아침대용 두부 큰 거 ,  무, 떡볶이, 어묵, 샤인머스캣 1 상자, 바나나,

돼지고기 한팩

양배추 반개

라면 10개

색약하나

카트를 밀고 나오며 10만 원에 가까이 소비했다는 생각이 든다. 금액이 넘으면 카드로 계산하지 뮈

그런데 88000원 12000원이 남았다.


  장바구니에 물건들을 넣는데 아뿔싸 다 들어가지를 않는다. 샤인머스켓박스와 라면은 따로 들었다. 장바구니를 어깨에 메고 양손에 박스를 든다. 조금 가니 미끄러운지 장바구니가 어깨에서 미끄러진다.  코스 횡단보도를 건너고 쉬고  난 후  다시 어깨에 장바구니를 메고 양손에 박스를 든다. 또 미끄러지네. 겨우 100M 가서 또 쉰다. 그리고 반복

다시 횡단보도 하나 더 건너기 물론 여기서도 쉰다.

이제 아파트로  올라간다. 우리 아파트로 올라가는 길은 오르막이다. 인도에 벤치가 군데군데 있어 다행이다.  한 코스 50M쯤 되는 길을 걷는다. 그것도 힘들다.

아! 크로스, 어깨에 멜 때 그러면 되겠다. 끈을 반대방향 어깨에 메고 가니 안정적이다. 흘러내리지 않는다.

그렇게 3코스를  쉬었다. 10코스를 걸어

드디어 집에 도착했다. 총 1km쯤 되는 거리다. 어깨가 묵직하다.


이제 할 일은 고등어 찜하는 거다. 대충의 요리법은 알지만 유튜브를 켠다. 두요리사의 비법을 보았다.  갓 데친 것 깔고 무 큼직하게 썰어 깔고 간잠두스푼 미리 끓인다. 10분이라 스톱워치 켜 놓는다. 그 후 양념장 만들고 채소 썰어둔다. 고춧가루 고추장 매실 맛술 조청 간장 그런데 맛술이 없네. 사러 갈까?

그러다 맛술 없이 양념장을 탔다.

고등어 넣고 양파 넣고 고추파 다 넣고 양녕장 끼얹기 이제 끓이기만 하면 된다.

타이머 작동, 20분

드디어 완성 살은 땡글탱글 한데 간이 덜 배었고 비린내를 못 잡았다. 그래도 맛있네. 내가 만든 것 나는 맛있어. 나 혼자 3일을 먹어야 하나?


저녁 딸 퇴근시간

잡곡밥에 맛있는 시간, 비린내가 조금 나는 거 안 먹으면 어쩌지?

속은 잘 모르지밀 괜찮다고 먹어줍니다.

기특한 딸


오늘의 요리보다 더 맛있는 고등어찌개

다음에 해줄게

내일은  엄마가 자신 있는 떡볶이와 돼지고기 삼겹살로 소박하고 맛있는 밥상 차려줄게


딸 사랑해


남편은 자신이 잘하는 고등어찌개를 내가 이렇게 만든 것 보면. 무어라 할까?

사람은 저마다 타고난 소질이 있으니 잘하는 것만 하라고 할까?

아니면 말없이 먹어줄까?


고등어 비린내 제거에 맛술은  빠지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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