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원 춘향제에 참여하여 광한루원을 둘러본 후 우리는 서도역으로 향했다. 나는 이곳에 대한 사전지식이 전혀 없다. 남편이 최명희의 혼불의 배경이 되는 역이라 한다. 나는 지금 혼불의 내용이 기억나지 않는다. 전주 한옥마을에서 최명희문학관을 찾은 일은 있다.
처음에 찾아간 곳은 신역사 건물이었다. 다시 차를 돌려나오니 구서도 역이 나왔다. 주차를 할 공간이 부족하다. 마침 나가는 차가 있어 그 자리에 주차를 하고 들어갔다. 우리 포함 3팀의 관광객이 있었다.
역사건물은 1932년 지어졌고 철도는 1934년부터 간이역으로 개통되었다 한다. 오늘 건물 안은 개방되지 않았다. 이런 목조건물들을 보면 잊고 지냈던 아련한 옛 추억이 떠오른다.
기차역에 대한 나의 추억은 초등학교 5학년 자유교양경시대회를 하러 하동 갈 때 시작된다.
경상남도 하동 한 시골 동네에 사는 당시 우리 동네엔 저녁에 들어왔다가 새벽에 출발하는 버스 한 대 운행하였다. 그 버스를 타고 교감선생님과 친구 한 명 세 사람이 기차가 다니던 북천역에 가서 하동 가는 기차를 탄다. 대회를 나간다는 자부심과 기차를 타는 설렘으로 가득한 날이었다.그역 이 코스모스축제를 하는 하동 북천역이다.
고등학교 다닐 때였다. 그때 나는 진주에서 고등학교를 다녔다. 추석에 시골집에 갔는데 돌아오는 버스를 타지 못했다. 우리 동네에 오기 전에 구겨 넣어도 만원이 되어버린 버스는 우리 동네 정류장은 서지도 않고 가버렸다.
내일 학교에 가야 하는데 이를 어쩌나?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그런데 구세주가 나타났다. 트럭이 한대 서더니 우리를 기차역까지 태워다 준다고 했다. 제일 가까운 역은 사천 곤명면의 봉계역이었다. 진주에서 공부하는 10여 명의 유학생들은 재빨리 트럭을 탔다. 울퉁불퉁한 길을 공처럼 통통 튀면서 디스코팡팡을 즐기며 기차역까지 갔다.
그날 많은 시간을 기다리면서 레일을 따라 걸으면서 가위바위보 놀이도 했고 동전을 모아 짤짤이 놀이를 했다. 친구들이 있었기에 긴 시간이 지루하지 않았고 재미있었다.
긴 의자가 양쪽으로 놓여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서서 갔다.
서도역은 그때의 분위기를 간직하고 있다. 최명희의 혼불은 그 내용이 거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옛 기억을 더듬으며 이곳저곳을 돌아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