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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희 Jun 17. 2024

고흥에 머물다-남편과 메로나와 소확행

메로나는 행복이다.

고흥

 남편과 아들과 셋이 살던 집을 떠나 딸이 살고 있는 부산 집으로 갔다. 친구들도 만나고 옛 동료들도 만날 즐거움으로 가득하다. 남편으로부터, 어쩌면 지겹기도 한 일상으로부터 떠난다는 것은 설렘을 주며 자유로움도 느끼는 매우 행복한 일이었다.


남편과는 차박도 하고 서해랑길도 걷는다. 등산도 하며 자연의 싱그러움을 함께 느끼기도 하머. 무한한 바다와 신록의 산들을 같이  라보며 무아지경에 빠지기도 하고 자연의 경이로움도 느낀다. 그때는 둘은 통한다.


그러나 일상생활

 남편은 부엌살림을 전담하고  나는 청소를 하고 텃밭농사와 글 쓰는 일에 매진한다.  그저 그런 하루를 보낸다. 때로는 작은 갈등이 있기도 하다. 되풀이되는 일상에서 벗어나 잠시 떨어졌을 때 오는 느끼는 자유로움 더할 나위 없이 좋다. 하루는 친구들과 놀고 하루는 딸 집에서 전업주부가 되었다. 살림살이를 내 멋대로 해보는 것도 즐거움이다.


고흥 집으로 돌아오는 날 

즐거운 외출을 끝내고 그저 그런 일상으로 돌아오는 날

남편은 어김없이 고흥터미널로 마중 나온다. 감정의 표현이 풍부하지 않은 우리 부부는


집에 별일 없었어요,

아들은 잘 지내고?

동네에서는 무슨 일 있었나요?

딸 집 냉장고는 잘 교체했어?

덥지 않았어?

친구들과 재미있게 놀았어?

그저 그렇고 그런 이야기들만 늘어놓는다.




집으로 돌아왔다. 남편이 냉장고에서 아이스크림 하나 꺼내왔다. 메로나를 사려고 했는데 품절되어 붕어빵 닮은 아이스크림을 사 왔다 한다.


메로나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아이스크림이다. 달달하면서 시원한 입맛이 좋다.  등산을 했을 때 지쳐있으면 남편은 기가 먹을 커피와 함께 메로나를 하나 사 온다. 더울 메로나 하나를 먹고 나면 정신이 든다. 그래서 땀을 흘릴 때 가게에 들른 남편의 손에는 연둣빛 메로나가 들려 있다.


남편은 커피를 좋아하지만 아이스아메리카노는 안 마신다. 얼음제품은 입에도 안 댄다.


"우리 마누라 좋아하는 메로나가 없네요."

"메로나가 없어요. 요즘 더워서  나갔나 보네요."

 남편 뒤에 줄을 섰던 여성 어르신이 깜짝 놀라며 하신 말씀

"아주머니 줄라고 아이스크림을 사요?"

"이분은 사모님 드리려고 아이스크림 자주 사가십니다."

농협마트 직원이 말했더니

"부러버서 뒤로 나자빠지려고 해 뿌리네. 아주머이한테 꼭 전하시오. 할머니가 부러버 죽겠다 하더라고"


우리에게는 그냥 일상

그러나 그것이 모든 사람들의 일상은 아닌가 보다.

이곳 여성들은 논밭에서 일은 똑같이 한다. 나이 드신 노부부는 여성들이 일을 더 많이 한다.  그리고도 꼭꼭 삼시세끼 밥을 해야 한다. 때로는 반찬투정도 한다고 한다.

지난 동네의 이장님도 말씀하셨다.

 나도 선생님 팔자가 되고 싶어요.  남이 해주는 밥 먹고 싶어요."

일하고 나서 지친 몸으로 밥하고 설거지하는 게 너무 힘든다고 했다.




퇴직하고 나서 내긴 전업주부가 도려고 했다. 예쁜 그릇에 적당하게 맛있는 음식이나마 예쁘게 세팅하여 식탁을 차리고 싶었다. 남편은  맛만 있으면 되니 테이블 세팅은 관심이 없다. 나와 신경전을 벌였는데 남편은 끝내 부엌일에서 손 떼지 않았다. 그런 나의 팔자를 이곳 여성분들은 부러워한다.


남편하고 동갑인 마을 이장님과 농기구수리점 김사장님과 자주 어울린다. 이장님은 현재 솔로이셔서 일을 많이 하지는 않으신다. 자전거 타고 슬렁슬렁 마을을 돌아보며  동네 어르신 안부를 살피기도 하고 방역차로 소독을 자주 해 주신다. 그래도 농사일에 매진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남편이 이장님 팔자 좋다고 말하면 이장님은 남편의 팔자가 좋다고 한다.

의식주 생활을 위해 돈 벌려고 노력을 안 해도 되니 왕팔자라고 한다. 그럼 이장님 팔자는요? 하고 물으면 자기는 개팔자라고 대답한다.


남편의 왕팔자는 사실 나로 인하여 만들어졌다.

내가 이곳 여성들의 부러움을 사는 것은 남편으로부터 만들어졌다.

우리 부부 사이의 해결 못한 갈등도 있지만 일상의 평범함 속에 느끼는 소확행을 즐기며 살아야겠다.


메로나, 메로나는 행복이다.


내가 좋아하던 시 신달자 시인의 여보 비가 와요를 찾아 낭송해봅니다.


         여보 비가 와요

                                신달자


아침에 창을 열었다

여보! 비가 와요

무심히 빗줄기를 보며 던지던

가벼운 말들이 그립다

오늘은 하늘이 너무 고와요

 혼잣말 같은 혼잣말이 아닌

그저 그렇고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소한 일상용어들을 안아 볼을 대고 싶다


너무 거칠었던 격분

너무 뜨거웠던 적의

우리들 가슴을 누르던 바위 같은

무겁고 치열한 싸움은

녹아 사라지고


가슴을 울렁거리며

입이 근질근질 하고 싶은 말은

작고 하찮은

날씨 이야기 식탁 위의 이야기

국이 싱거워요?

밥 더 줘요?

뭐 그런 이야기

발끝에서 타고 올라와

가슴 안에서 쾅 하고 울려오는

삶 속의 돌다리 같은 소중한 말

안고 비비고 입술 대고 싶은

시시하고 말도 아닌 그 말들에게

나보다 먼저 아침밥 한 숟가락 떠먹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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