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의 첫 시험이 끝나고

잠들지 않는 꿈

by 온돌향

오늘 중간고사가 끝났다. 고등학교 들어와 처음 치르는 내신 평가.

고생 많았구나, 얘들아.


시험을 망쳐 펑펑 우는 아이, 그 아이 곁에서 위로해 주는 아이, 낙심한 표정으로 종례를 기다리는 아이, 홀가분한 표정으로 비 오는 창밖을 바라보는 아이, 실수를 아쉬워하며 다음을 다짐하는 아이, 만족스러운 결과에 기쁨으로 빛나는 아이.

아이들의 모습은 제가끔이지만 언제나 마음이 가는 건 시험을 망친 아이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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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례는 생략.

서둘러 아이들을 보내고, 종례 대신 학급 단톡방에 신영복 선생님의 글씨와 함께 다음의 글을 써서 올렸다.


위의 그림은 신영복 선생님(1948-2016)이 쓰신 글씨란다. 군사독재 시절에 민주화 운동을 하시다가 20년 넘게 장기수로 영어(감옥에 갇힘)의 생활을 하셔야 했어. 이분이 혹독한 시절을 견뎌내시면서 이루신 서체가 바로 위 글씨의 서체야.

신영복 선생님의 글씨는 획 하나하나가 자유로워. 여러 획이 모여 글귀를 이루었지만 각각의 획이 자신의 위엄을 오롯이 갖추고 있지.

획 하나가 길에서 벗어나면 그다음 획을 앞의 획에 맞춰 써 줌으로써 글씨가 제 길로 돌아오게, 그래서 균형을 갖게 만들어 주는 것이 신영복 선생님 서체의 특징이야.

그래서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를 쓰신 유홍준 교수님은 이를 일컬어 '어깨동무체'라고 이름을 붙이셨지.

우리의 3년 공부는 위에 '잠들지 않는 꿈'이라는 글귀 전체를 써 나가는 공부야. 이번 중간고사는 그 글귀 가운데에서 첫 글자 '잠'의 첫 획을 그은 것일 뿐이야.

획 하나 그은 것 가지고 글씨를 잘 썼다 못 썼다고 말할 수는 없어. 마찬가지로 글자 하나 쓴 것 가지고 작품 전체가 조화롭다 조화롭지 않다고 말할 수 없지. 첫 획에 이어지는 다음 획, 그다음 획을 앞의 획에 맞춰 잘 써 나가면 돼.

그렇게 해서 우리 4반 밥네들은 모두 종당에는 신영복 선생님의 글씨처럼 멋진 작품을 여러분의 삶을 통해 이루어 낼 거야.

첫 획을 고생해서 그었으니 오늘의 첫 획을 잘 살펴서 다음 획을 잘 그어 보자.

어떤 경우든 너희들이 최고야. 늘 자랑스럽고 고마워.

어서 쉬렴.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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