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갇힌 진심은 타인을 베는 칼이 되고
"넘쳐나는 노인이 나라 재정을 압박하고, 그 피해는 전부 청년이 받는다.
노인들도 더는 사회에 폐 끼치기 싫을 것이다.
옛날부터 우리 일본인은 국가를 위해 죽는 걸 긍지로 여겨왔다.
나의 이 용기 있는 행동을 계기로 진솔하게 논의하고 이 나라의 미래가 밝아지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하야카와 치에 감독의 첫 장편 '플랜 75'는 충격적인 장면으로 시작한다.
피아노 선율이 잔잔하게 흐르는 화면으로 어둑한 노인 요양원의 실내가 비춰지고
이내 총을 든 청년 하나가 나타나더니 세면대로 터덜터덜 걸어가 꿈꾸는 듯한 표정으로 손과 팔에 낭자하게 번진 핏물을 씻는다. 바닥에는 지팡이며 슬리퍼, 타월 등이 어지러이 흩어져 있고, 복도 끝에는 쓰러진 휠체어 바퀴가 아직도 돌고 있다.
자신의 머리에 총을 겨누어 스스로 목숨을 끊기 전, 청년은 떨리는 목소리로 하지만 결연한 어조로 미리 써 온 유서를 읽어 내려간다. 그 유서가 바로 위에 적은 문장이다.
노인을 대상으로 마구잡이식 살육을 저지르고도 그는 자신의 행위가 나라의 미래를 위한 '진심'이라고 말한다.
"제가 너무 미약합니다. 제가 너무 작습니다.
제게 조금만 더 힘이 있었더라면, 조금만 더 큰 성전이 있었더라면......
여러분, 미안합니다. 제가 너무 작고 미력한 존재라 미안합니다. 황 목사는 가슴을 쾅쾅 두드리며
진심을 담아 사과했다.
사과받는 신도들이 진저리를 칠 때까지, 더 이상 사과받지 않기 위해 무언가를 실행하고 말 때까지
집요하게 반복되는 사과였다."
소설가 안보윤의 단편 '어떤 진심'의 한 부분이다. '어떤 진심'에 등장하는 황 목사는 신도들을 현혹하여 교회를 키우고 교세를 확장해 온 능활한 인물이다. 하느님을 섬긴다는 구실로 신도들에게 헌납받은 재산은 황 목사 개인의 재산으로 축적되어 아들에게 상속된다. 교회의 사회적 기여를 명목으로 위탁 운영하는 청소년 장기 쉼터는 힘든 처지에 놓여 있는 청소년을 꼬드겨 황 목사를 신처럼 떠받드는 광신도로 양성할 목적으로 사용된다.
주님의 이름을 팔아 자신의 욕망을 채우는 황 목사의 모습은 옛날에 예수를 십자가에 매달았던 이들의 그것과 다르지 않지만, 그에게 자신의 살천스런 행동은 언제나 진심에서 비롯한 것이었다.
윤석열은 대선 후보 시절, '먹고 죽는 게 아니라면 부정식품(불량식품)을 가난한 사람들이 싸게 사서 먹을 수 있는 자유도 자유로 인정해야 한다'라는 내용의 발언을 한 바 있다. 그가 자신의 말의 근거로 삼은 밀턴 프리드먼은 '빈곤한 사람들이 안전 장치가 없는 자동차를 싸게 사서 사용할 수 있는 자유도 존중받아야 할 선택의 자유다'라는 내용의 주장을 한 바 있다.
하야카와 치에의 영화 '플랜 75'에서 정부는 75세 이상의 노인들에게 '안락사를 선택할 자유를 허용'하는 정책을 시행하면서 안락사를 선택한 노인들에게 100만 원도 안 되는 위로금을 지급한다.
안보윤의 소설 '어떤 진심'에서 황 목사는 신도들에게 재산 헌납을 강요하지 않는다. 다만 신도들에게 주어진 선택의 자유는 세상의 타락을 방관하는 악한 영혼이 되거나 재산을 헌납하여 세상을 구원하는 선한 영혼이 되거나의 두 선택지 사이에 존재한다.
그러나 윤석열의 자유, 밀턴 프리드먼의 자유, '플랜 75'에서 정부가 주장하는 자유, '어떤 진심'에서 황 목사가 말하는 자유는 어떤 인간에겐 혐오를 부추기고, 어떤 인간에겐 수치심을 심어 주는 거짓 자유이다. 그럼에도 거짓 자유를 주장하는 이들은 사심이 없어 언제나 진심이다.
영화 '플랜 75'에서 정부가 미래 세대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노인에게 안락사 선택의 자유를 허용하자 이전까지 자신의 노동을 통해 씩씩하게 살아 왔던 주인공 미치(78세)는 이제 건강 검진을 받는 것도 일자리를 구하러 다니는 것도 어딘가 불편하고 눈치가 보인다. 주위의 시선이 '저 일하는 노인, 불쌍도 해라. 저 나이면 안락사를 선택해도 되는데 얼마나 더 살겠다고 저리도 기를 쓰나.'라고 자신에게 말하는 것 같기 때문이다. 윤석열의 저 말도 싸구려 음식이 '선택'이 아니라 '불가피'인 수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모멸감을 주지 않았던가.
진심은 선(善)이 아니다.
어떤 진심은 지친 이의 마음을 일으키고 세상에 희망을 주지만, 어떤 진심은 반성하지 않는 맹목의 폭력이 된다. 이웃의 삶을 나의 삶처럼 근심하고, 타자에 대한 상상력을 지닌 사람에게 진심은 우리 모두의 구원이 되리라. 하지만 상대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자기 안에 갇힌 이에게 진심은 타인을 베는 칼날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