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를 떠올리는 시간

삶의 고독한 순간마다 그분을 생각하네

by 온돌향
데이비드 라샤펠(1).png American Jesus: Hold me, Carry Me Boldly(David LaChapelle)



도올 선생이 쓴 예수의 전기, "나는 예수입니다"(통나무, 2020)에 나오는 구절이다.


나(= 예수)의 생애 전체를 통하여 나의 아이덴티티를 정확히 인지한 것은 이 더러운 귀신과 내가 십자가에 못박혀 죽은 직후에 나의 수난을 묵묵히 지켜보았던 로마 군대의 백부장, 단 두 존재였습니다.
(중략)
나의 진정한 아이덴티티를 알아본 것은, 나의 제자도, 가족도, 군중도, 재판관도 아니었습니다. 더러운 귀신과 낯선 이방인 백부장이었습니다. 그렇게 나는 고독한 운명의 사나이었습니다.


예수가 처음 제자 넷(시몬 베드로, 안드레, 야고보, 요한)을 거둔 후 공생활을 시작하면서

대중 앞에서 최초로 행한 일은 '악령'을 쫓아내는 일이었다.

예수를 본 악령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 왜 우리를 멸하려 하는가? 나는 당신이 누군인 줄 안다. 당신은 하느님의 거룩한 자(The Holy one of God)이다."


이후 대중들은 예수의 이적을 보며 자신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예수를 바라보고, 이름 붙이고 존재 규정을 한다. 누구도 예수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보려 하지 않았다. 심지어 가족들조차

"우리 예수가 미쳤다."

라고 말하며 그를 붙잡으려 했고, 제자 베드로도

"나는 그 사람을 모른다."

라고 말하며 예수의 존재를 세 차례나 부인했다.


예수가 공생활의 시작에 만났던 악령 다음으로 예수의 존재를 알아보았던 두 번째 인물은 예수의 죽음을 지켜 보았던 로마 군대의 백부장이었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이 사람이야말로 진실로 하느님의 아들이었군."


예수가 누구인지를 알아본 것은 그의 가족도 제자도 아니었으며 그를 추종하는 팬(대중)도 아니었다. 부활 이전에 예수의 진면목을 알아본 것은 그를 미워하는 악령과 그를 적대하는 자리에 있었던 로마 군인, 단 둘뿐. 예수는 얼마나 고독했을까. 그의 고독을 생각하면 그가 살았던 그 옛날로 건너가 꼭 안아 주고 싶다.


까닭 모를 적의는 아니지만 까닭보다 큰 적의로,

호랑가시나무가 되어 날 세우는 사람들을 피하기 힘든 생활에서

고독은 피로만큼이나 습관적으로 찾아오고, 그럴 때면 마음속에 떠올라 내게 손 내밀어 주는 이가 있으니

그가 바로 예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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