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학교의 비극
1.
D군의 어머니가 그예 일을 일으키셨다. 금요일에 당신 아들이 학폭 피해자라고 신고를 하셨다고 한다. 대상이 되는 시기는 2학년인 올해 1학기도 포함되는 모양인데 발단은 작년 1학년 때로 말을 하고 있으니, 작년 담임이었던 나도 이 일에 엮여 들어가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D군은 입학 직후부터 학교 생활에 어려움이 있어 가장 많이 안아 주고, 이야기 나누고 편지를 써 주었던 아이다. 내가 가장 아끼는 아이가 나를 가장 괴롭게 만드는 아이가 되고, 특별히 존경스러운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학부모가 이처럼 불통(不通)의 맹목으로 나를 공격하는 이가 되다니, 언제나 삶의 어떤 부분은 불가해한 영역이다.
2.
선생으로서 나는, 아이가 스스로를 미워하거나 어른을 미워하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다른 하나를 피할 수 있는 상황이라면 어른인 나를 미워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학부모에게도 마찬가지이다. 당신이 알고 있는 것과 사뭇 다른 당신 아이의 못난 모습을 알아 버려 아이에게 실망하고 스스로 불행을 느끼는 것과 선생을 탓함으로써 당신 아이를 ‘작은 신(神)’으로 여기는 마음을 지킬 수 있는 것, 둘 중 하나를 택할 수밖에 없다면 나는 기꺼이 선생인 나를 탓하라고 하겠다. 나 또한 부모로서 아이의 초라한 모습을 보게 되는 것이 부모에게 얼마나 절망적인 일인지 잘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학급을 운영하면서 내가 제일 마음을 쓰는 일은 아이는 자신의 존엄에 대한 감각을 잃지 않게 하는 것, 그리고 부모는 여전히 당신 아이들이 당신들에게 작은 신이 되게 하는 것이다. 한 아이가 다른 아이의 존엄을 공격하고 해친다면 그때는 가차 없이 꾸짖고 나쁜 행동에 대해 반성하고 책임지게 해야겠지만, 그 선을 넘지만 않으면 선생이 크고 작은 상처를 입는다 해도 그것은 선생의 삶에 수반되는 불가피한 일이므로, 내가 다치는 대신 아이와 부모의 마음을 지키려 한다.
3.
선생은 아이들의 선하고 어여쁜 모습만을 부모들에게 이야기할 수 있을 따름이다. 그렇게 하여 부모는 당신 아이들을 자랑스러워하고 극진히 사랑하며, 아이들은 부모의 신뢰와 애정 속에서 자신의 미숙한 점을 고쳐 나갈 힘을 얻는다. 선생이 아이들 탓을 하면 선생 자신은 쉽게 곤경에서 빠져나오겠지만, 부모는 마음 깊이 상처를 입고 상처 입은 마음으로 바라보는 부모의 시선에 아이들이 병든다.
4.
하지만 D군의 어머니는 당신이 모르는 사실을 밝히겠다며 당신 아들의 동료인 여러 아이들과 그 아이들의 부모들을 사나운 소용돌이 속으로 끌어들였다. 학교에서 아이들을 놓고 벌이는 부모들 간의 다툼은 자신에 대한 성찰과 타자에 대한 관용이 사라진 가장 사나운 맹목의 대결이어서 그 틈에 깨지고 다치는 건 언제나 아이들이다. 당신의 자식과 부모로서 자기 자신을 돌아보지 않고, 사실을 밝히겠다고 달려드는 부모들의 모습은 희랍 비극에 등장하는 외디푸스와 흡사하다. 외디푸스의 서사가 가르쳐 주는 것은 ‘죄인을 찾으려고 하는 자가 결국 찾는 것은 자신의 죄’라는 세상의 역설 아니던가. ‘진리’를 알아내겠다는 외디푸스의 단호하고 정의로운 시도는 단 한 번도 자신을 의혹의 대상으로 삼지 않았기에 자기 파괴의 길로 귀착되었다. 학교에서 학부모들이 서로 당신의 아이를 위한 마음으로, 하지만 당신의 아이들을 다치게 하는 방식으로 사생결단의 싸움을 벌이게 되면, 이 일은 어느 쪽이 되었던 아이와 부모의 마음에 깊은 상처를 남기는 일로 귀결되게 마련이다.
마음이 타들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