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를 가장한 배제에 관하여
S#1. 어느 봄날의 오후, 직장 사무실
S는 민감한 일을 처리하느라 잔뜩 집중하고 있다가 난데없이 터져 나온 소음에 질겁을 했다.
소음의 진원지는 사무실 한 켠에 있는 회의실.
놀란 사람은 S만은 아니어서 여럿의 시선이 회의실을 향하고 있었다. 그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은 투명한 벽면을 통해 사람들의 시선에 적나라하게 노출되었다.
유리벽 안의 그들은 생일을 축하하고 있었다. J의 생일인 모양이었다. 그러고 보니 사무실 안에 J의 자리를 비롯해 빈자리가 몇 군데 보였고 그 자리의 주인들이 유리벽 안에서 손뼉을 치며 환호를 하고 있었다. 평소 J와 무리 지어 다니는, 다른 사무실의 사람들도 그 안에서 큰 소리로 웃으며 무어라 떠들어 대고 있었다.
소란이 이어지는 한동안에 J의 생일을 축하하는 마음은, 그의 생일 케이크처럼 유리벽 바깥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나누어지지 않았다. 적잖은 이들이 눈살을 찌푸리며 어처구니없다는 낯빛을 띠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부르는 생일 축하 노래와 자신들의 박수 치는 모습이 유리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사무실에 있는 '나머지 사람들'에게 들리지도 보이지도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일까. 그리 생각했다면 어리석은 것이고, 알면서도 그랬다면 무례한 것이다.
S#2. 4월 1일, 서울대 교정
언제부턴가 옷장 속 고등학교 교복을 꺼내 입고 하루를 보내는 것이 만우절 대학교의 풍속이 되었다.
그러나 이 풍속은 희한하게도 풍속이되 일부에게만 누릴 자격이 주어지는 풍속이니 아무리 귀엽게 봐 주려 해도 미풍양속이 되기는 애저녁에 글렀다.
내가 일하는 학교는 비강남권의 일반고여서 우리 학교 졸업생이 만우절에 교복을 입고 대학 교정을 쏘다닐 일은 없다. 이날 대학 교정에서 맘껏 옛 교복을 입고 다니려면 영재고나 과학고 또는 특목고나 전국 단위 자사고는 되어야 하고, 못해도 강남에 있는 입시 명문 고교 정도는 되어야 한다.
옆지기가 서울대에 출강하던 시기, 그니를 제일 속 시끄럽게 했던 일 중 하나도 만우절 풍경이었다. 그날이 되면 민사고, 대원외고 교복이 서로 무리 지어 불온한 삐라처럼 서울대 교정 여기저기를 생기 있게 돌아다닌다는 것이다.
동문들끼리의 유대를 보여 주는 것이겠으나 유대는 남 앞에서 전시(展示)하는 것이 아니다.
S#3. 어느 가을, 직장 소강당
P가 다니는 직장에서는 한달에 한 번, 때론 두어 달의 한 차례, 소강당에서 전체 회의가 열린다. 일하는 사무실이 달라 평소에는 얼굴 마주치기 힘든 선후배, 동료들을 이날 잠시 동안 만날 수 있다.
어느 가을날, 회사에 모두가 함께 의논해야 할 중요한 안건이 생겨 전체 회의가 열렸다. 회의 시작 전 사람들이 소강당으로 속속들이 모여들기 시작했고, 그날의 안건에 대해 미리부터 심각하게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도 여기저기에 보였다.
다들 조용히 회의가 시작하기를 기다리거나, 작은 목소리로 대화를 나누고 있는데 갑자기 누군가 높은 톤의 목소리로 소리를 질렀고, 뒤이어 몇몇의 환호와 박수 소리가 강당을 울렸다. 강당을 들어선 Y를 향해 평소 Y와의 친목을 과시해 온 여남은 명이 일으킨 소리였다. 그날이 Y의 생일이었다고 한다. 강당에 있던 사람들 중 일부는 '뭐, 좋은 일로 축하하는 건데...'하면서 함께 박수를 쳐 주었지만, 다른 일부는 고개를 돌려 외면하거나 가만히 미간을 찡그렸다.
그날 Y 그리고 Y와 친한 사람들은 회사의 모든 사람들 앞에서 자기들의 유대를 널리 전시했다. 이러한 '전시된 유대'는 동료를 위한 선의로 포장되어 있지만 본질적으로 유대의 원 바깥에 있는 사람들, 즉 '우리 편'이 아닌 사람들을 향한 것이다. 그래서 보기에 좋지 않고, 음험하기까지 하다.
S#4. 젊음의 향연?, 2023 연고전 / 고연전
2023년 9월 8일과 9일, 이틀 동안 연고전(또는 고연전)이 열렸다. 이 행사는 '100여 년의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두 학교(연세대, 고려대)의 교류와 화합을 도모하는 행사', '두 학교 구성원들에게 애교심과 일체감을 길러 주는 축제'라는 명목으로 오랫동안 이어져 온 젊음의 향연이다. 이와 유사한 두 대학 간 행사에 카이스트와 포스텍의 '포카전'이라는 것도 있지만, 그 외의 대학에서 연고전과 같은 축제가 있다는 말은 들어 보지 못했다. 가령 전북에서 전주대와 우석대 사이의 '전우전', 경북에서 영남대와 계명대 사이의 '영계전'과 같은 건 이 나라에 존재하지 않는다. 왜일까? 이상한 일이다.
2023년의 연고전에서 연세대 신촌캠 학생들 중 일부가 같은 대학 미래캠 학생들을 향해 '너넨 그냥 짝퉁'이라는 차별의 언어를 커뮤니티를 통해 마구 쏟아냈다. 같은 시기, 고려대 서울캠 총학생회는 연고전의 자리 배정을 의논하는 과정에서 같은 대학 세종캠 학생들을 차별하여 논란을 일으켰다. 이 사태의 근원적 원인을 헤아리다 보면, 연고전의 본질, 연세대와 고려대가 아닌 다른 대학에서 연고전과 같은 유서 깊은 '유대의 행사'가 펼쳐지지 않는 까닭, '전시된 유대(displayed Bond)'의 목적이 결국 무엇인지를 이해하게 된다.
뜻을 함께하는 사람들 사이의 유대감은 서로를 향한 것이어야 한다. 서로를 향한 신뢰와 존중의 시선에서 사람은 자신의 존엄을 획득하며 이것이 바로 사람 사이의 유대와 연대가 필요한 이유이다. 유대가 유대감으로 연결된 서로를 향하지 않고, 타자를 향해 전시된다면 그 유대는 '참 유대'가 아니다.
배움과 삶의 경험을 통해 얻은 지식 중 하나가, 유대의 전시는 전체주의로 이어진다는 사실이다. 내가 이해하는 전체주의는 '우리 편이 아닌 존재는 적대시하여 배제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폭력적 사고 구조'이다. 같은 제복을 입고, 같은 구호를 외치며 민족의 유대를 전시하고 과시하던 나치 독일이 불러왔던 역사의 재앙을 떠올려 보자. '전시된 유대'가 끝내 유대의 울타리 안에 들지 못한 타자를 향한 폭력으로 이어졌다는 점을 생각하다 보면, 자연스레 나의 의식 안에선 나치의 폭력과 연고전의 분란이 하나로 겹쳐진다.
S#5. 전시된 유대, 선의의 가면에 감춰진 차별과 배제
인간의 존엄은 신이 부여한 것도, 법과 제도가 만들어 내는 것도 아니다. 인간의 존엄은 인간이 서로를 존엄한 존재로 대할 때 생겨나는 것이다. 김원영 작가의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사계절, 2018)"은 이러한 인간 존엄의 진실을 감동적으로 잘 설명해 준다.
인간의 존엄은 인간 사이에서 꽃 피우고 열매를 맺는다. 인간 존엄이라는 아름다운 꽃과 알찬 열매를 맺는 토양이 바로 참된 유대로 연결된 인간 관계인 것이다. 유대는 인간의 존엄을 싹 틔우고 인간을 존엄한 존재로 존중하기 위한 실천적인 노력이다. 하지만 '전시된 유대'는 인간을 존엄한 존재로 존중하기 위함이 아니라 이쪽과 저쪽을 구분해 이쪽 즉 '우리 편'이 아닌 타자를 차별하고 배제하기 위한 폭력적 행위에 불과하다.
오래 전부터 나는 유대를 과시하고 전시하는 이들을 볼 때면 절로 고개를 돌리게 되는데 그것이 수치심인지 연민인지는 잘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