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림동에서 만난 오연했던 고양이
카메라에 찍힌 사진이라 하여 다 같은 사진은 아니니 그중에는 셀피라 불리는 자기 현시의 욕구가 강하게 투영된 이미지도 있고, 피사체를 마치 사냥감인 양 폭력적으로 대상화한 이미지도 있으며, 피사체에 대한 깊은 존중과 오랜 교감을 바탕으로 만들어 낸 사랑의 이미지도 있다.
고 김기찬 선생님이 남기고 간 사진들은 하나같이 사랑의 이미지여서 그 안에 담겨 있는 삶과 사람이 모두 제가끔의 생명과 존엄을 오롯이 간직하고 있다.
김기찬 선생님을 존경하고 추모하며, 그의 사진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선생님의 자취, 그리고 선생님이 아꼈던 골목 안 사람들의 흔적을 느끼고 싶어 다들 한 번쯤은 중림동과 만리동의 골목길을 어슬렁거려 본 경험이 있지 않을까 싶다. 나 또한 그러한 이들 중 한 사람이었다.
사진 속 고양이는 2008년 8월, 어느 날 중림동에서 만난 녀석이다.
당시 내가 일하는 학교는 명동에 있었고, 그날은 토요일이라 오전만 수업을 했다.
아이들을 하교시키고 난 뒤 가방에 선생님의 사진집 "골목 안 풍경(6)(눈빛, 2003)"을 챙겨 넣고 중림동으로 향했다.
팥죽땀을 흘리며 사진에 담긴 골목길을 하나하나 톺아 가는데 어느 집의 열린 대문으로 꿀빛 무늬를 한 끼끗한 고양이 한 마리가 눈에 들어왔다.
아! 고양이의 그 오연한 자태라니. 녀석은 이방인인 나의 존재를 의식하고 있는 게 분명했지만 너따위는 안중에 없다는 태도로 여유로움이 배인 단정한 자세에 한점 흐트러짐이 없었다. 가방에서 카메라를 꺼내 대문 앞까지 다가가 사진을 다 찍을 때까지 고양이는 마치 정물처럼 가만히 앉아 있었다. 그 모습은 위엄 있기도 했지만 순도 높은 의뭉스러움에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그렇게 골목 안에서 혼자 실성한 사람처럼 '오!'하고 감탄하다가 낄낄대기도 했던 (그때 지나다니는 사람이 없었던 것은 얼마나 다행이었던가.) 무더운 여름날의 오후였다.
※ 눈빛출판사가 없었다면 오늘날의 사진은 예술에서 멀어진, 부박한 이미지로 격하되었을 것이다. 눈빛출판사는 부부인 이규상 대표와 안미숙 편집장이 운영하는 작은 출판사로 88년에 탄생한 이래 '사진 예술' 하나에만 초점을 맞춰 이제껏 어느 대형 출판사도 해 내지 못한 독자적인 일가를 이루며, 한국 독서문화에 큰 자취를 남겨 왔다. 40년에 가까운 긴 세월 동안 돈 안 되는 사진집을 우직하게 만들어 독자 대중에게 사랑의 이미지로서 사진의 참된 의미를 알려 온 이규상 대표, 안미숙 편집장의 모습은 꼭 고귀한 존재에 당신들의 삶을 바친 수도자의 그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눈빛출판사가 펴내는 책들의 가치를 알아 주기를, 그래서 그곳에서 간행한 귀한 사진집이 널리 알려지고 많이 팔리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