텍스트 힙 시대, 읽기의 고뇌(2)

후회의 예감을 안고 읽어 나가야 하는 책들

by 온돌향

3. 후회의 예감을 안고 읽어 나가야 하는 책들


순전히 밥벌이 때문이다. 좋아하는 책만 읽으며 살 수 없는 것은.

거룩하고 지겨운 밥벌이를 하느라 자는 시간을 줄여 보아도 시간은 늘 목련꽃이 벙글어 있는 순간만큼이나 부족한데, 책은 읽고 싶은 책, 학교 강학을 위해 읽어야 할 책, 시류에 뒤쳐지지 않으려면 읽어야 하는 책 들이 줄을 서서 기다린다.

읽고 싶은 책은 언제나 가장 나중 순위로 밀린다. 좋은 책보다는 수업을 설계하는 데 유리한 책, 교과서나 입시 교재의 제재로 쓰기에 적절한 글을 먼저 읽는 건 그것이 밥벌이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시류를 붙좇기 위해 책을 읽는 건 우선은 체면 때문이다. 하는 일이 말과 글에 관계된 일이다 보니 학생도 어른도 '이 책, 어떠셨어요?'하고 물어올 때가 많다. 대개 이런 책들은 이동진 평론가 같은 분들이 '올해 최고의 책' 운운하며 상찬하는 바람에 그해의 필독서처럼 되어 버린 책들이어서 상대방도 으레 읽었거니 넘겨짚고 쉽게 말을 걸어온다. 그럴 때 '나, 그 책 안 읽었는데'하고 대꾸할 만큼 나는 남의 시선과 판단에 대범한 위인이 못 된다.

그래서 읽는다. 메이저출판사와 스타 평론가가 손잡고 추켜세우는 '올해의 책'들을. 독서 문화를 선도하는 힙한 독서가들이 예찬하는 '내 인생의 책'들을.

하지만 빼어난 평론가들과 수많은 독서 대중들을 감동케 했다는 책들을 읽을 때면 대체로 생각이 복잡해지고, 심사가 혼란스러워진다.

세상이 이상해진 건가, 내가 고루해진 건가.

게중에는 크리스티앙 보뱅의 산문처럼 많은 이들이 좋아하고, 나 또한 읽어 보니 멋진 글이어서 심복하게 되는 작품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읽는 내내 '제길, 시간도 없는데 이걸 계속 읽어 말아.'하는 갈등에서 자유롭지 못한 책들이다. 이미 초반부터 '이걸 끝까지 읽으면 후회하게 될 텐데.'라는 후회의 예감을 안고 읽어 나가다가, 마지막 장을 덮었을 때 몸속 어딘가에서 증기처럼 한숨이 새어 나오고 마는 책들.



4. 부박한 '고백'의 글쓰기, 제3의 거짓말 - 통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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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 들어 독자 대중들에게 사랑받는 책들 가운데에는 자기 고백의 글쓰기가 많은 것 같다. "물의 연대기"(리디아 유크나비치, 문학사상, 2025)와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룰루 밀러, 곰출판, 2021)는 고백적 글쓰기를 보여 주는 책으로, 최근 가장 힙한 책들 중 두 권이다.

둘 다 후회의 예감을 안고 읽어 나가야 했던 책이고, 늘 그렇듯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음'을 증명한 책이었다. "물의 연대기"와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를 읽고 나서 자연스럽게 마음속에 떠오른 형상은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 할머님들이었다. 할머님들은 당신들의 치유와 구원뿐만 아니라 전쟁으로 고통받는 이들과 세상의 평화를 위해 용감히 '고백'을 하셨고, '고백'을 통해 역사의 피해자에서 역사의 스승으로 거듭나신 분들이다. 그분들이 당신들의 삶을 통해 보여 주신 것처럼 어떤 '고백'은 타자의 행복, 세상의 평화를 지향함으로써 치유와 구원의 '고백'이 된다.

하지만 어떤 '고백'은 그 마음이 타자로 향하지 않고, 자기에게 매몰되어 '전시된 고통'으로 격하되고 만다. '전시된 고통'에 머무는 '고백'은 근원적으로 포르노의 성격을 띤다. 이러한 경우 '고백'하였다고 치유되거나, 심지어 구원을 받는 건 아니다. "물의 연대기"와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의 고백은 어떤 경우에 해당하는가. 적어도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 할머님들의 정신 세계와는 멀어도 한참 먼 세계라고 하겠다.

"물의 연대기"의 글쓴이는 부적응자로서 자신의 삶을 적나라하게 서술한다. 그럴 수 있다. 마약에 취해 섹스하고, 흠모하던 작가와 섹스하고 제자와 섹스하고 그러한 자신에게 마침내 너그러워져 마약과 섹스와 범죄의 이력을 솔직히 '고백'할 수 있게 되고, '고백'의 글쓰기가 나를 치유하고 구원해 주어 나는 이제 롤랑 바르뜨와 라깡도 알고, 푸꼬와 줄리아 크리스테바도 알고... 운운 하는 것 또한 그럴 수 있다. 글쓰기가 적어도 그를 마약과 섹스 중독과 무책임한 범죄의 유혹에서 벗어나게 해 주었다면 그 얼마나 다행인가. 글쓴이가 전시하는 고통은 철저히 자기에게 갇혀 있으나, 모두가 정의기억연대의 할머님들처럼 되기를 기대할 수는 없으니 그것도 괜찮다. 그럴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내용은 견디기 힘들다. 글쓴이는 바람난 남편에 대한 분풀이로 음주 운전을 하고, 그예 영어도 못하는 만삭의 이주배경 여성 노동자의 차를 박살내어(가련한 그 여성은 태중의 아기가 잘못되었을까 봐 길가에서 흐느껴 울고 있었다.) 감옥에 간다. 그 순간 글쓴이는 사고당한 여성과 태중의 아기에 대한 죄책감에 대해 언급하지 않으며, 감옥에 갇힌 자신의 모습에서 영화 '폭력 탈옥'의 주인공을 떠올린다. '폭력 탈옥'의 주인공은 감옥의 부조리한 제도에 맞서 싸우는 정의로운 인물. 그러면서 '내 차는 완전히 박살난 참이었다. 내 인생처럼'이라고 한마디를 뇌까린다. 글쓴이는 타자에게 '참회'하지도 '용서'를 구하지도 않는다. 자신의 고통을 글쓰기를 통해 고백한 후 글쓰기로 자신은 치유되고 구원받았다고 말할 뿐.

하지만 '고백'했다고 치유되거나 구원을 받는 건 아니다. '고백'이 참된 치유와 고백으로 이어지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알고 싶다면, 앞서 언급한 정의기억연대의 할머님들에 대해 알아 보거나 시몬 비젠탈의 "해바라기"(뜨인돌, 2005, "모든 용서는 아름다운가"로 개정판이 나옴.)를 읽어 보길 권한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미국 저널리스트들의 전형적인 글쓰기를 보여 주는 책이다. 세련된 교양 지식에 관한 내용과 글쓴이의 사적인 이야기가 서로 교직되면서, 추상적이고 난해한 지식이 현학성에서 벗어나 구체성을 지니게 하고 글쓴이의 사적 경험은 성찰적 깊이를 갖게 만드는, 미국 저널리스트들의 저술들.

이 책의 글쓴이 룰루 밀러도 내 곁의 친구였으면 퍽 안쓰럽고 좀 심란했을 인물이다. 어려서는 수차례 자살을 시도하고, 어른이 되어서는 분방한 성 생활로 연인에게 상처입혀 주위 사람들에게 빈축을 사기도 했던 부적응의 인물. 한 줄 한 줄이 비명 같은 고통스런 삶의 이력을 적나라하게 '고백'한 후, 글쓴이는 생물분류학이 오류인 것처럼 사람을 분류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그러니 누군가에겐 너절해 보일 자신의 삶을 함부로 재단하지 말아 달라고 말한다. 결국 이 마지막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이다.

내 주위에는 성 소수자 또는 소위 '사회부적응자'로 살아가는 친우, 제자들이 드물지 않게 있다. 그들의 삶에 대해 함부로 입을 놀리는 이들에겐 기꺼이 주먹을 날려 줄 용의가 있다. 그만큼 그들을 아끼고 사랑한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의 삶을 주장하고 지키기 위해 룰루 밀러처럼 생명과학의 방대한 역사와 세련된 지식을 장황하게 늘어 놓지 않는다. 솔직하고 당당하며, 자신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책임 있는 삶을 살려고 끊임없이 노력할 따름이다. 그거면 충분하다. 룰루 밀러의 자기 현시적 지식의 나열은 그의 애처로운 삶에 반성적 깊이를 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초라하게 만든다. 안타깝다.

부적응자 또는 경계인으로 살아가는 이가 자신의 삶, 그리고 자신과 연결된 세상에 책임감 있는 모습을 보이며 존엄을 지켜 나가는 이야기를 듣고 싶다면, 내가 아끼고 존경하는 제자인 베튤 준불 군의 "여기 이렇게 존재하고 있어"(안온북스, 2025)의 일독을 권한다.

베튤 준불은 터키 사람(튀르키예라고 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이 책에 나와 있다.)으로 이주배경 청년이다. 말과 글을 배우기도 전인 아기 때 이맘(터키 이슬람교의 사제)인 부친을 따라 한국에 와서 한국에서 초등학교부터 대학교(대학원)까지 마쳤다. 그래서 터키어에 서툴고, 한국어가 실질적인 모국어다. 벽안의 금발이며 여성이다. 연세대학교에서 사회과학을 석사까지 마쳤고, 지금은 연극 배우로 무대에 선다. '이주배경 외국인 / 금발과 벽안 / (그러나) 외국어 못함 & (그러나) 한국어 엄청 잘함 / 여성 / 젊은이' 베튤 군이 속한 사회적 집단을 설명할 때 사용하게 될 어휘이며, 이 어휘만으로도 베튤 군에게 주어진 중층적 경계인의 지위를 짐작할 수 있다. 아무것도 안 했으나 베튤 군은 또래의 청년들이 누리는 수많은 권리들의 상당수를 박탈당했고, 또래 청년들이 아무것도 안 해도 당연히 누리는 무언가를 얻기 위해 베튤 군은 참으로 많은 것을 해야만 한다. 그럼에도 부지런히 돈 안 되는 생태주의 연극을 무대에 올리고, 빈곤한 삶을 살면서 이웃에게 작지만 소중한 선물을 나누어 주는 데 참으로 열심이다. 모름지기 '존재감'이란 '고백'의 외피를 두룬 '전시된 고통'이 아니라 나와 이웃을 아끼고 세상을 향한 희망을 잃지 않는 생활을 실천하는 데에서 비롯한다는 진리를, 베튤 군은 "여기 이렇게 존재하고 있어"라는 책의 글쓰기를 통해 보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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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학년부터 새로 적용된 고등학교 국어 교과 성취기준에 '상호문화주의 교육'이 새로 들어 왔다. 교과서를 집필하면서 이와 관련한 글을 찾기 어려웠는데 마침 베튤 군이 이 책을 써 주어, 그니의 글을 교과서에 실었다. 덕분에 교과서 점유율이 매우 높아졌다.


베튤.png "공통국어(1)"(김수학 외, 천재교육, 2025)에 실린 베튤 군의 글 '우리는 의외가 아니야'. "여기 이렇게 존재하고 있어"에 수록되어 있다.


"팩트풀니스"(한스 로슬링, 김영사, 2024)는 "이 책, 어떠셨나요?"라는 질문을 가장 많이 받았던 책이고, 근 몇 년 사이 읽었던 책 중 가장 황당했던 책이다. 저자는 소득과 아동 대상 예방 접종 비율, 여성 교육, 전기 수급 비율 등의 객관 지표를 근거로 통계 분석을 한다. 이를 바탕으로 세상을 네 단계로 구분하여 1단계를 저소득 국가, 2-3단계를 중간 소득 국가, 4단계를 고소득 국가라고 명명한 다음, 세계 인구의 91%가 중간 소득 이상의 국가에서 살고 있으니 세계의 수많은 인구가 빈곤에 시달리고 있다는 생각은 착시 내지 허구라고 주장한다.

이 책을 읽고, '그렇군, 아! 다행이야. 장 지글러 아저씨는 허풍쟁이였군.'이라고 말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러나 한스 로슬링의 주장은 흡사 트럼프와 어용 학자들이 '지구의 기온 상승은 지구의 오랜 역사에서 반복되어 온 주기적 현상이며, 지구온난화와 기후 위기는 허구'라고 떠들어 대는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내가 일하는 학교에선 해마다 겨울방학에 몇몇 교사와 학생들이 네팔로 자원 활동을 다녀온다. 그곳에 계신 가톨릭 선교사분들과 함께 네팔의 아이들을 지원하는데 자원 활동 기간이 끝나고 헤어져야 할 때면 네팔의 아이들 모두가 절실하게 한국에서 살 수 있게 도와 달라고 한다. 그 아이들에게 "얘들아, 한스 로슬링의 설명에 따르면 너희 나라는 2-3단계에 해당하는 중간 소득 국가란다. 가난하지 않은 거지. 얼마나 잘됐니?"라고 말했을 때 과연 아이들이 "그렇군요. 우리는 가난하지 않군요."라고 대답할까. 어림없는 소리다.

"팩트풀니스"는 '빈곤'의 심리적 속성을 너무 가볍게 건너뛰어 버린다. 통계의 함정인 것이다. 그래서 '거짓말은 3가지 종류가 있으니 첫째 선의의 거짓말, 둘째 새빨간 거짓말, 셋째 통계'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빈곤'의 근원적 원인과 조건은 '물적 요소'보다 '심리적 요소'에 놓여 있다. '빈곤'이 무엇이며, 지구상의 빈곤 문제가 얼마나 심각하며 문제 해결을 위한 지구인의 실천적 과제가 무엇인지 고민하고 싶다면, "팩트풀니스"보다 더글러스 러미스의 "경제 성장이 안 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김종철 뒤침, 녹색평론사, 2011)를 읽어 보시길 바란다.


갭마인더.png (왼쪽) 한스 로슬링이 근거 자료로 삼는 Gapminder의 자료 중 네팔의 월간 소득. 3단계에 해당한다! (오른쪽) 위대한 스승 고 김종철 선생님이 번역하신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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