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맛있었던 음식이 무어냐고 물으신다면
금요일 저녁, 국립극장 하늘극장에서 아내와 연극 '우정만리'를 관람했다. 조-부-손 삼대에 걸쳐 집배원의 삶을 살아 온, 한 집안의 가족사를 통해 일제강점기부터 현재까지 굴곡 많은 우리 민족사를 그려 보인 작품이었다. 근래에는 정극도 오늘날 대중의 미감과 취향에 맞춰 무대 미술이나 연출이 화려한 경우가 많은데 이 연극은 그저 질박하고 우직했다. 그래서 극의 서사와 배우분들의 연기에 오롯이 집중할 수 있어 좋았다.
극에 등장하는 할아버지와 아버지 그리고 손녀는 순박하고 선한 사람들이다. 남의 것을 넘보는 삿된 욕심에 전혀 물들지 않고, 거창한 이념에 마음을 빼앗겨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 소홀한 법도 없는, 평범하지만 비범한 삶을 살아간 이들이다.
무대 위에 펼쳐진 착하고 따뜻한 집배원 가족의 모습을 보면서 아주 오래 전 마음 깊은 곳에서 피어나 긴 세월 간직해 온 작은 불빛 하나가 모처럼 환하게 밝혀졌다. 그 불빛은 내 인생에서 가장 맛있었던 음식에 관한 기억이면서 한 집배원 아저씨에게 받은 사랑과 온정의 추억이기도 하다.
국민학교(지금의 초등학교) 1학년 때 일이다. 내가 살던 마을은 한가운데 작은 언덕산이 솟아 있어, 산 위에서 내려다 보면 납작한 모자 모양을 하고 있었다. 다니던 학교는 언덕산 저편에, 집은 언덕산 이편에 있어 등하교를 하는 큰길은 학교와 집을 잇는 반원의 호를 그렸다. 담임 선생님께선 산길은 위험하니 반드시 큰길로 다녀야 한다고 신신당부를 하셨지만, 그 길로 다니면 20분 넘게 걸릴 것을 산길 따라 언덕산을 넘으면 10분이면 충분하니 마을 아이들은 점점 선생님 말씀을 듣지 않는 '나쁜 어린이'가 되어 갔다.
봄이고, 토요일이었다. 정오 무렵 학교가 파해 마을 친구 둘과 함께 하교를 했다. 평소에도 으레 접어드는 길이었지만 그날은 따뜻한 봄날이라 더욱 산길에 마음이 끌렸다. 산자락엔 장다리꽃이 환하게 피어 푸른 바다의 윤슬처럼 배추흰나비가 무수히 날았고, 신갈나무 우거진 그늘에선 운 좋으면 이르게 나온 사슴벌레도 만날 수 있겠기에 역부러 나무 그늘을 톺아가며 길을 걸었다.
작은 언덕산에 산마루라는 표현이 가당한지 모르겠으나, 마을 언덕산의 산마루에는 어린애 대여섯은 앉을 만한 낮고 기다란 너럭바위 하나가 있었다. 그 위에 올라 아래를 내려다보면 따개비처럼 오볼조볼 모여 앉은 낮은 집들과 그 사이로 실핏줄처럼 이어진 골목길이 한눈에 들어왔다. 마을 풍경을 바라보는 것은 산길로 하교하는 일의 재미 가운데 하나였으므로 나 혼자건, 친구와 함께건 산길로 하교할 때면 꼭 너럭바위에서 잠시 쉬었다 갔다.
그런데 그날은 너럭바위에 먼저 온 사람이 있었다. 연한 갈색 옷을 입은, 아직 앳된 얼굴의 집배원 아저씨였다. 집배원 아저씨는 볕바른 너럭바위에 앉아 도시락을 꺼내 먹고 있었고, 노란 양은 도시락 안에 가지런히 놓여 있는 건 김밥이었다.
세 아이가 입을 모아 '안녕하세요.'하고 인사를 드리고 (어른을 보면 인사하라는 선생님 말씀에 잘 따르던 어린 시절이었으므로) 너럭바위를 지나쳐 마을로 난 길로 향하려는데 집배원 아저씨가 '얘들아, 잠깐.'하고 우리를 불러 세웠다. 걸음을 멈추고 바라보니 아저씨가,
"이리 와서 김밥 하나씩 먹고 가라. 김밥 먹고 싶지?"
어째서 사양하겠는가. 그 당시 김밥은 일년에 한 번, 소풍갈 때나 먹을 수 있는 귀한 음식이었으니까. 세 아이가 곁으로 가니 집배원 아저씨는 '자, 아- 해라.'하더니 젓가락으로 크게 만 김밥 한 조각씩을 집어 우리 입 안에 넣어 주셨다. 볼 가득 김밥을 우물거리는 우리의 머리 위로 묻을 듯 하늘은 파랗고, 만져질 듯 구름은 양감 짙었으며 웅웅 벌이 나는 소리가 들렸다.
40년도 더 지난 일이지만 그날의 느낌은 지금도 생생하다. 빛의 온기, 숲속 작은 생명들의 수선거림, 김밥의 맛 그리고 무엇보다 아이들을 바라보시던 집배원 아저씨의 환한 미소.
누군가 '이제까지 먹어 본 음식 중에 무엇이 제일 맛있었냐'고 물을 때면 나는 늘 그날의 김밥을 이야기한다. 집배원 아저씨가 아기 새처럼 아- 하고 벌린 꼬마들의 입에 하나씩 넣어 주었던 그 김밥. 그 김밥은 마음 안에 간직되어, 삶이 고단할 때마다 꺼내어 들여다 보는 작은 불빛이 되어 주었다. 작가 김연수가 그의 소설 '뉴욕제과점'에서 말했던 그 '불빛'처럼 말이다. '뉴욕제과점'의 마지막 문장은 이렇게 씌어 있다.
"세상을 살아가는 데 그렇게 많은 불빛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그저 조금만 있으면 된다. 어차피 인생이란 그런 게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