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부신.

눈물샘의 단추를 누르는 아이들의 무구함

by 온돌향

아이들을 보면 그저 사랑스럽고 어여뻤는데 나이가 들면서 언제부턴가 티 없는 아이들의 모습을 볼 때면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더워지고 눈가가 젖어든다.


엊그제 소설 모음 한 권을 읽다가 눈물이 와락 쏟아졌다.

"음악소설집"

다섯 분의 소설가가 쓴 단편이 묶여 있는데 이들을 관류하는 주제가 '음악'이다.

작품 하나하나가 다사로와 평안히 읽을 만했으나 더 좋은 건 책 말미에 붙은 작가와의 인터뷰였다.

그 가운데 윤성희 작가와의 인터뷰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나온다.


저는 학교 수업을 하러 가는 날이면 안산터미널 근처에서부터 안산천을 따라 학교까지 걸어요.

그때 본 장면이에요. 손주와 할아버지가 같이 걷고 있었는데 아이는 킥보드를 끌고 있었어요.

그러다 아이가 갑자기 할아버지에게 말하는 거예요. 저 갈게요, 하고.

아이는 그동안 천천히 걸었던 게 답답하기라도 한 듯 있는 힘껏 다리를 밀어 속도를 냈어요.

어찌나 빨리 달리던지 금방 시야에서 사라졌어요. 그리고 잠시 후,

저 멀리서 아이가 다시 달려왔어요. 역시 아주 빠른 속도로. 그리고 할아버지 앞에 멈추더니

숨을 헐떡이며 말했어요.

"봤어요? 씽씽 날아왔어요."

씽씽 날아왔다니요. 그 말이 너무나 아름다워서 눈물이 날 뻔했어요.


'봤어요? 씽씽 날아왔어요.' 아이의 말에서 그만 주책없이 눈물이 주륵 흘렀다.


대학에 다닐 때 일이다. 집에서 지하철역까지 가는 길에 굿을 하는 당집이 있었는데

그날도 수업을 마치고 돌아오다가 당집을 지나게 되었다.

늦은 오후, 지는 해는 발갛게 부풀어 북한산 능선 너머로 뉘엿뉘엿 기울고

골목에는 아이들의 긴 그림자가 떼를 지어 나와 마을 안이 왁자했다.

그때 골목 안을 메운 아이들의 와글다글 위로 높고 가쁜 소리 하나가 빠끔이 솟아 올랐다.

"언니야, 나 제법이지? 제법이지?"

당집에 사는 꼬마 애가 줄넘기를 하면서 내는 소리였다.

오가는 길에 종종 만나는 그 아이는 예닐곱 살쯤 되어 보였는데

미간이 넓고 코가 낮았으며, 말과 행동이 늦되어 노상 마을 언니들을 쭐레쭐레 따라다녔다.

그 아이가 지금 작은 공처럼 뜀을 뛰며 뿌듯한 마음에서 피어난 세상 환한 웃음을 지으며

곁에 있는 언니들을 향해 외치는 것이었다.

"언니야, 나 제법이지? 제법이지?"


윤성희 작가의 인터뷰를 읽으면서 문득 떠오른 오래전 기억이다.

그때도 꼬마 애의 사랑스런 모습에 마음이 깨질 듯 뻐근했는데

지금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니 그 무구한 모습에 눈이 부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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