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거리를 울면서 뛰는 어린애

그날 밤, 불면의 기원

by 온돌향
"밤거리를 울면서 뛰는 어린애에게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대온실 수리 보고서"(김금희, 창비, 2024)를 읽다가 그예 이 문장에 이르러 왈칵 눈물을 쏟고 말았다.

전쟁 통에 지하 온실에 숨어 아버지가 오기만을 기다리는 두 아이가 있다. 누이의 이름은 시미즈 마리코, 동생은 유진. 그 둘은 이부동모의 남매이다. 하룻밤 자면 돌아오겠다 약속한 아버지는 여러 날이 지나도록 나타나지 않고, 유진은 추위와 주림에 시달리다 기운이 다해 목숨이 위태롭다. 마리코는 숨이 잦아드는 동생을 구하기 위해 약방을 찾아, 약탈과 강간이 일어나는 전장의 거리를 한밤중에 달린다. 그러나 누구 하나, 밤거리를 울면서 뛰는 어린 마리코에게 도움이나 위로의 손길을 건네지 않는다.

이 장면을 읽으면서 이제까지 오랜 세월 동안 불면에 시달려 온 한 사람이 떠올랐다.


그의 어머니는 병이 있었고, 그 병을 앓는 이들이 항용 그러하듯 매사에 극도로 예민하여 병을 더 키웠다. 가진 거라곤 몸뚱어리뿐인 그니의 남편은 돈 벌러 중동의 건설 현장에 가 있었다. 그래서 집에 남자는 이제 열 살이 된 그뿐이었다.

그날 밤은 유독 잠이 오지 않았다고 한다. 밤늦게까지 미싱 시다 일을 하고 돌아와서 이내 잠이 든 엄마의 숨소리가 여느 때와 달랐기 때문이다.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그의 신경은 온통 엄마의 기척에 쏠려 있었다. 자정을 넘겼을 즈음 갑자기 엄마가 물에 잠긴 사람처럼 거칠게 숨을 몰아쉬더니 입에 거품을 물고 격렬히 몸을 떨었다. 엄마를 살려야 한다는 생각에 그는 이웃 마을의 외삼촌 집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찻길을 따라 한참을 달려야 했던 그는 빤스에 난닝구 바람이었고 발은 맨발이었다. 맨발로 빤스만 입고 눈물을 훔치며 오르막길을 달리는 어린애 옆으로 차도 몇 대 지나가고, 야밤에 귀가하는 사람들도 몇은 있었지만 '밤거리를 울면서 뛰는 어린애에게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엄마는 병원에서 살아났고, 그 후 한동안 외가의 친척 어른들은 어린 아들이 제 어미를 살렸다고, 딱히 할 말이 없을 때마다 그날 밤의 갸륵한 일을 떠올렸다. 그러나 그날 이후 그는 행여 엄마의 발작이 다시 일어날까 봐 잠들기가 어려웠고, 잠이 들었다가도 엄마의 숨소리가 고르지 않으면 번쩍 눈이 떠졌다. 그의 고질인 불면은 그날 밤으로부터 시작되었던 것이다.

지금도 꺼칠한 낯빛의 그를 만나면, 오래 전 한밤중에 엄마를 살리려 땀과 눈물이 범벅이 된 채로 달리던 어린애의 가련한 모습이 머릿속에 선연히 그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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