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재 스물아홉 번째 이야기
어른이의 그림일기
방학이 끝날 즘에
한 달 치 그림일기를 썼다.
그 자그마한 머리에서
기억도 안나는 일들을
하지도 않은 일들을
쥐어짜고 그려 넣고
한 달 치 그림일기를 한꺼번에
쓰고 나면
난 늘 내가 빨강머리 앤처럼
발칙한 소설가가 된 기분이었다.
앞뒤 맥락 없는
엉뚱한 상상들
지금생각해 보면
두 팔을 접어 머리를 괘고는
풀숲이며
베어둔 볏단 위를
풀썩 들어 누워
누구도 끼어들지 못하는 상상 속으로
뛰어들었었다.
바래는 일들의 주인공이 되기를
힘센 괴물로 변신해 누군가를 힘껏 패주고 싶기도
이쁜 캔디가 되어 앤서니를 만나는 사랑도
보이지 않는 망토를 입고
사람의 마음을 훔쳐보는 상상을 하며
자주 하늘을 올려다보곤 했었다.
그런 상상들은
현실에서 이루지 못한 내게
아이스케키 보다 더 시원하고 달달했다.
엉뚱하다고
꾸중도 욕도 많이 먹었다.
누구도 듣지 않던
내 어릴 적 소설은
언젠가부터는 더 이상 쓰지도
그리지도 않게 된다.
막 내린 상상을
어른이가 되어
살짝 들추니
한 페이지 한 페이지
벌써 백 페이지를 넘기는 소설이 되고
그림책이 되었다.
나의 엉뚱한 날개 없던 새가
날고 있다.
조금씩
활짝 날개를 펼쳐
하늘 위에 구름 그림을 그린다
그리고
꿈이라고 쓴다.
차라리
그때처럼 자유로왔다면
제대로 된
공상가가 되었으려나~
어른이 되어서
하루를 살아낸다는 게
나의 하루를
그려낸다는 게
진실되고
진심이지 않은 것은
그릴 수도
쓸 수도 없지만
어릴 적
하늘 위에
그려대던
나의 공상들은 헛되지 않음을 알았다.
글을 쓰다
가끔 그 상상들과 마주 할 때
또 한 번 나는 다시 빨강머리 앤이 된 것 같다.
브런치 예명을 정할 때도
빨강머리 앤을 쓰려고 했는데
이미 나처럼
어른의 공상가인 작가들이
또 있었나 보다.
자라는 어른이들이여
그대들의 엉뚱한 상상을 추앙하라
오늘 브런치에도
저리 많은 그대들의 꿈이 날고 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