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재 서른다섯 번째 이야기
잠시 멈춤을 아는 용기
5년짜리 적금 하나가 끝났다.
정확히 5년 전
제주 한 달 살이를 하고 와서는
아들의 서른 살 생일 선물로
한 달 여행을 보내줘야겠다고
다짐했었다.
그리고
난 다시 구례 한 달 살기를 했다.
잠시 가던 길을 멈춘다는 건
쉽지 않다.
젊어서는 돈이 없어서도
사는 게 두려워서도
해보지 않아서도
다시 시작한다는 게 쉽지 않다는 걸
어렴풋이 아는 나이라서
준비된 게 없어서
어떻게 돌아갈지 몰라서도
난 늘 불안하고 채우지 못해
일을 놓으면 죽는 거나 마찬가지다며
억척을 떨며 살던 사람이었다.
첫 번째 제주행은
모든 걸 잃고 떠난 삶이었고
두 번째 구례행은
모든 걸 잃기 전에 선택한 삶이다.
좋던 나쁘던
돈을 주고 산 경험들은
통장 잔고보다
더 많은 지혜를 채웠기에
다시 한번 떠날 수 있는 용기를 가질 수 있었다.
잠시의 멈춤에
비어져만 가는 통장이지만
낮은 개울물에라도
두려움 없이 나를 던져버리고
물을 베고 누워 하늘 위
자유로운 구름과 마주해 보는 일은
돈을 들이고라도 해 보아야
알 수 있는 일이다.
모든 걸 스스로 해 나간다면
우리 인생은 더할 나위 없겠지만
먼저 해본
인생선배가
잠시
그 길에 들어서는
입문과정만 열어주어도
다음세대들이
잠시 쉬어 간다는 일에 대해
두려움 따위는 던질 수 있지
않을까?
나는
다시 돌아갈 줄도 알았다
처음엔 떠날 때도
돌아올 때도
두려웠지만
두 번째는
다시 돌아간다는 것도
용기라는 걸 배워간다.
돌아가면
적금 통장 하나를
또
만들어야겠다.
40의 생일날에
아들이 무거움을
던져버릴 수 있는
잠시의 용기를 위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