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서 계집아이들의 놀이란
꾸미기 놀이가 대부분이다.
아카시아 잎을 떼고 줄기를 접어
머리를 돌돌 말던 파마놀이
시계꽃밭에 둘러앉아
몇 캐럿 다이아만 한 꽃으로
목걸이 팔찌 반지 왕관까지
만들어 걸치는 일
그리고 한여름 밤의
손톱에 봉숭아 물들이기.
여름이 가고 있는 거다.
죽을힘을 다해 토해내고 있는 거를 보면
사그라질 때
가장 뜨겁게 피는 꽃
봉선화
여름꽃 마냥 뜨겁게
물든다.
꽃밭에
봉숭아를 딴다.
처음들인 봉숭아물은 실패
꼼꼼하신
낭군이
인터넷을 찾아보며
정성스레 봉숭아물을 들여준다.
하룻밤 자고 나니
붉게 물들고
쭈글쭈글 해진 손가락 열개를
펼쳐 보이니
봉숭아물 끝에
문득 친구하나가
떠올랐다.
참 멋지고 밝았던 친구
그 친구에게는 아픈 손가락이 하나 있었다.
다른 놀이는 다 괜찮다가도
여름방학 때 같이 밤을 새워
들이는 봉숭아 꽃물들이기를 할 때면
친구의 아픈 손가락 하나가
맘에 걸린다.
성격 좋고 밝은 그녀는
오른손 엄지 위에
또 하나의 손가락이 있었다.
움직이지 쓰지도 못하는
아픈 손가락
그녀는 용감하게
아픈 손가락도
들이밀며
"얘도 내 손가락인데 "
망설이는 내게 말한다.
그 말 한마디가 불편한 내 마음을
조금은 편하게 했다.
가끔 공기 놀이 할 때
여섯 번째 손가락에 걸쳐있는 공깃돌이
그녀를 공기대장으로 만들기도 했었다.
그때마다
그녀의 아픈 손가락에도
봉숭아 물을 들여주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졸업 후
우연히 우린 만났다.
너무 반가워
깍지 끼며
방방 뛰다 보니
공기대장으로 만들어주던
여섯 번째 손가락은 보이지 않았다.
아무 말 없이
손만 만지고 있던 내게
웃으며
좀 허전하긴 해~
말끝에
나도 한마디 받아친다
이제 공기 대장은 나다!!!
오늘 붉게 물든
열 송이의 꽃을 보다
그녀의 아픈 손가락이
문득 떠올라
써본다.
멋진 년!
아픈 손가락을 당당히 내 것이라
말하는 용기 있는 년!
넌 정말 잘 살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