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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솔 Mar 19. 2023

007녀가 되고 싶다.

한방으로 빵.

분노와 상실감으로 썼다. 

아니 마음 하나 터 놓고 울부짖을 곳이 없어서 썼다. 

어쩜 그 분노와 상실들을 생생히 기록해서 증거 자료로 쓰려고 썼다.

늙어가는 그 사람한테 101가지 두고두고 퍼부어 구박할 말들을 그렇게

쓰기 시작했다.

사람은  시간이 지나면 본인의 방어기제로 퇴화되며 기억해 버린 채 잊힌다.

절대 잊지 않을 거란 표식이었다.

그렇게 내 글은 시작됐다.

그 우울한 상실감은 생각보다 오래갔다.

두고두고 생각나서 분노로 화로 날 뒤엉켜 놓았다.

잊기 위해서 책을 읽으며 어두운 시간을 보내본다.

어려서 부모님의 큰 다툼이 있을 땐 작은방 모퉁이에 기대어 책을 펴 

놓고 읽는 척을 했다. 마치 지금의 상황이 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듯

또 공부를 못하는 죄책감 때문이었는지 꼭 책을 펴고 조용히 저 전쟁이 끝나기를 

잠식했었다.

성인이 되고 결혼을 하고 어른이 된 지금 부부싸움을 하고 갈 데가 없고 휑한 마음이 

불어닥칠 때마다 몇 시간을 서점을 배회하고 있었음을 글로 쓸 때 알았다.

부모의 전쟁 속에서도 우리 부부의 전쟁 속에서도 회피와 죄책감과 두려움울 

잊는 도구로 책옆에 꼭 붙어있었다.

무엇을 얼마나 읽었을까?

읽었다 한들 글귀들이 눈에 마음에 담아지기나 했을까?

그런데 왜? 책이었을까?

이 어린아이는 말을 하고 싶었지 않았을까?

저 상처만 주는 부모라는 어른들에게 저 싸움을 종식시킬 말.

내게 상처를 주는 남편이란 사람에게 당신의 잘못을 한방에 인식시켜 주는

야무진 한방의 그 말.

가난을 핑계 삼아 힘없고 빽 없으면 조용히 사그라 져 버리는 사건과 사고들

보이지 않는 사회적 그 통념 속에 조용히 젖어든 이 시대의 약자들.

내 것을 당당히 표현하지 못하는 약자들의  소리 내지 못하고 집어삼킨 분노.

부모의 싸움을 지켜보던 그 아이도 남편의 비열한 거짓말을 지켜보던 어른 여자도

말! 말! 말.

말이 필요하다.

옳지 않음과 옳음을 내뱉을 줄 아는 말.

그 어린아이와 어른여자는 그게 필요했다.

그래서 그날 밤도 서로 보듬어줘 본 적 없는 저 둘이 격충해 져서 

이빨을 드러내며 곰처럼 사나워져 있었던 것이다.

풀리지 않은 분을 지 가슴팍이 터지도록 쳐대며 

추운 날씨와 격분한 심장의 온도 차이만큼의 입김을 토해냈다.

소리 내어 한바탕 울부짖고 나니 조금 잠잠해지다 뒤로 한 걸음 물러서는가 하더니

무언가 아쉬운 듯 어느 경계에 쳐 있는지 모를 철조망에 몸을 한번 더 부딪쳐

아직 남은 분노가 풀리지 않았음을 경고한다.

책을 읽으며 알게 된 사실

쓴다 치유법.

 읽고 쓰며 마치 초인적인 종교에서나 느껴봄직한 이상 야릇한 그 힘!

써본 사람만 해본 사람만 경험한 사람만 알 거 같은 그 힘!

문득 교회에 다니지는 않지만 단상 위에서 믿습니까를 외치는 목사님이 생각났다.

난 변해가고 있었다.

내 글은 분노에서 주위의 아름다움과 이웃들의 사는 모습과 내가 살아온 과거와 현재의

삶을 잘 믹스해서 차근차근 그리고 천천히 그 어린 여자애와 만나고 있었다.

사랑으로 빛이 나던 어린 소녀를 보며 부러워했던 어른여자.

헝클어지고 맨발에 털 슬리퍼만 신고 애를 들춰 업고 온 손님에서 비친 

23살 애기엄마였던 어른여자.

혼자 조용히 소주 두 병을 들이켜는 아주머니의 외로움 속에 같이 서있는 어른여자.

내가 쓰고 있는 이 마음속의 말들이 글로써 탈바꿈되어갈 때

어린 여자아이와 어른 여자가 만나 조금씩 사이좋아지는 경험을 하게 됐다.

응어리지고 꾸겨 넣었던 말들을 뱉어내지 못하고 삼켜버렸던 그 말을

이제야 글이라는 창자를 통해 제대로 토해낸다.

꺼억~

이제야 소화가 되는 느낌.

아니!

007 영화에서 미녀 배우가 가슴 훤히 드러나는 딱 달라붙은 미니 원피스를 입고

누군가를 향해 총 한방 시원하게 쏴 주고 뒤돌아서며 달구어진 총구에 입김한번

불어넣고 한쪽 입꼬리를 올리고 웃는 마지막 앤딩 같은 느낌.

이것이 내가 써온 글의 힘이다.

글은 분명 치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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