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 또한 추억이 되겠지

by 피그말리온

어쩌면 우리 집에서 나는 아직도 ‘아기’로 취급받고 있는지도 모른다.

교통편 하나를 선택하는 것조차 나에겐 자유지만, 부모님에게는 걱정의 이유가 된다. 내가 “버스 타고 갈게요”라고 말하면, 그 순간부터 부모님의 일정표는 무용지물이 되어버린다. 마치 오랜 습관처럼, 그들은 내 답을 듣기도 전에 “아냐, 데려다줄게”라고 먼저 말한다. 설령 그들을 위한 중요한 약속이 있어도, 설령 하루 계획이 뒤엉키게 되어도, 그 모든 것보다 우선되는 건 언제나 나다.


왜 그런지 묻고 싶다가도, 마음 한쪽 어딘가에서는 이미 답을 알고 있다. 부모님은 내가 스스로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을 모르는 게 아니다. 단지, 나를 태우고 이동하는 그 짧은 시간 동안만큼은 여전히 나를 보호할 수 있다는 사실이 그들에게 안도감을 주는 것이다. 그들이 나를 “아가” 라고 부르고, 나를 중심으로 하루를 재편하는 이유는 아마도 그 안에 오랫동안 쌓인 사랑과 걱정, 그리고 놓지 못한 익숙함이 함께 섞여 있기 때문일 거다.


가끔은 그 사랑이 답답해서 숨이 막힐 때도 있다.

독립적인 성인이 되어가는 나에게, 그들의 과보호는 족쇄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하지만 그 마음을 조금만 비틀어 바라보면, 그것은 내 편을 가장 오래, 가장 꾸준히 자처해준 사람들의 방식이기도 하다.


나는 이제 조금씩 배우는 중이다.

사랑은 때때로 과할 수 있고, 과한 사랑도 누군가에게는 평생을 거쳐 만들어진 습관일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나는 그 사랑을 부정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내 자리를 새롭게 만들고 싶을 뿐이라는 것을.


부모님의 차 문이 열리는 소리를 들으면 가끔 생각한다.

언젠가 내가 완전히 독립해서, 그들이 더이상 나를 데려다주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고.

그때가 되면 어쩌면… 내가 지금 불편하게 여겼던 그 과한 사랑이 조금은 그리워질 수도 있겠지.


그래서 오늘은 이렇게 적어본다.

나는 이제 아기처럼만 대우받고 싶지는 않지만, 그래도 나를 그렇게 불러주던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중이라고.

그리고 언젠가는 그 사랑을 부담이 아니라 감사로만 받아들일 수 있을 거라고.


이게 그리워질 날이 오면 나는 얼만큼 슬퍼하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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