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은 멀지만
아빠를 향한 내 마음은 오랫동안 애증이었다. 하지만 그 애증 속에는 애는 사라지고, 증오만이 남아 있었다. 아빠라는 존재는 늘 불편했고, 차갑게 거리를 두고 싶은 대상이었다.
그러던 내가 변하기 시작한 건, 대학 시절 아빠가 쓰러졌을 때였다. 그 순간, 나는 알았다. 아빠는 단순히 미워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었음을. 그 빈자리에서 느껴지는 공허함과 두려움이 내게 속삭였다. 내 삶에서 아빠라는 존재는 생각보다 크고 깊었다는 것을.
그렇다고 해서 내 마음이 갑자기 따뜻해진 것은 아니다. 여전히 나는 아빠를 싫어하고, 그 마음을 숨기지 않는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아빠가 아프다는 말에는 반응하게 되고, 괜히 한 번 더 말을 걸게 된다. 작은 균열처럼, 나도 모르게 스며드는 연민이 있다.
오늘도 우울증에 힘겨워하는 아빠와 짧은 대화를 나누었다. 잠을 잘 이루지 못한다는 말 앞에서, 나는 여전히 곁에 앉아 등을 두드리거나 손을 잡아줄 용기를 내지 못한다. 그러나 그 대신 아빠의 고민을 들어주었다. 그 시간이 소중하게 느껴졌다. 동시에 내 마음을 아빠가 알아주었으면 하는 이기심이 고개를 들었다.
그래도 아빠이기에, 나는 여전히 아빠의 흔적을 찾고 싶다. 괜스레 아빠에게 “ 일없이 무료한 날이면 자서전이라도 써봐. 내가 책 내줄게..” 하고 농담처럼 한마디 던지기도 했다. 그 말 속에는 사실, 아빠라는 사람을 조금 더 알고 싶고, 나만의 방식으로 붙잡고 싶다는 마음이 숨어 있었다.
나는 아직도 아빠를 온전히 품지 못한다. 하지만 이제는 무심히 외면하지도 않는다. 애증의 무게 속에서 조금씩 균형을 찾아가고 있다. 아빠와의 대화 속 짧은 순간들이, 내 마음을 천천히 바꾸어가고 있음을 나는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