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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도쌤 Jan 02. 2022

 우리 어른이 먼저 달라져야 한다.

아빠 육아일기

일주일에 월, 수, 토 3일 아이들에게 노트북으로 영상을 보여준다. 아이들이랑 같이 정한 규칙이다. 월요일 수요일은 주중이라 샤워시키고 밥 먹이고 하면 영상은 1시간 조금 넘게 봐서 이 정도는 괜찮다. 그런데 문제는 토요일이다. 아침부터 일어난 딸 "심심해요.", "노트북 봐요!"소리에 거의 6시간 이상 하루 종일 노트북을 본다. 나랑 아내도 주말에 좀 쉬려는 마음이 크고 아이들도 1주일 어린이집 다닌다고 수고해서 나름 해방의 기분으로 자유롭게 노트북을 보게  거다. 거기다 일요일까지 할머니 집에 가게 되면 토일 주말 내내 10시간 이상 영상을 보게 되는 셈이다.


이렇게 영상을 많이 접하다 보니 어느 날 우리 딸이 달라졌다. 보는 날이 아닌데 노트북을 보여 달라고 조르고, 노트북을 끄자고 하면 눈빛이랑 말투랑 행동이 너무 사나워졌다. 이유인즉 딸이 보는 게임채널 내용이 너무 폭력적이고 진행자의 언어도 아이들이 사용하기에 부적합한 단어들이 참 많기 때문이었다. 하는 수 없이 딸 아이랑 때리고, 죽이고, 폭력적인 영상은 보지 않기로 약속을 했는데 한 번 접한 영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타나 딸을 유혹하고 그 유혹의 손길에 이기지 못하고 딸은 계속 영상을 보게 되었다.


'더 이상 영상을 하루 종일 장시간 보여주면 안 되겠다!'라고 마음먹은 순간에 하늘이 도왔는지 <온종일 게임만 하는 쌍둥이 형제> 금쪽같은 내 새끼를 보게 되었다. 영상 속 아이들은 정말 한 순간도 폰을 손에 놓지 않았고, 게임 속 폭력적인 말과 행동이 고스란히 아이들의 입과 행동으로 나왔다. 누가 있건 상관없이 자기 욕구를 채워 주지 않으면 엄마에게 "닥쳐", "꺼져", "x발" 같은 단어는 기본이고 심지어 엄마를 때리기까지 했다. 영상을 보며 게임이 이렇게 아이들에게 나쁜 영향을 미치는구나란 걸 다시 한번 절감한 순간이었다.


제일 놀란 건 무엇보다 아이들 속마음이었는데 아이들도 스스로 게임 때문에 자신들이 폭력적으로 바뀌었다는 걸 인지하고 있었고 끝에는 자신들을 도와달라고 애원하고 있었다. 아이들도 다 알고 있었다. 게임 때문에 자신들이 나빠졌다는 걸. 그러나 어떻게 벗어나야 할지 몰라 더 그렇게 늪 속으로 계속해서 빠져들고 있었던 것이다. 그 늪에서 아이들을 구해줘야 할 임무가 바로 우리 어른들에게 있었다. 어른들이 먼저 감정을 줄이고 격한 말을 하지 않도록 단단한 마음을 가져야 함을 느꼈다. 아이들과 격한 말로 싸우는 장면을 직접 보며 감정을 빼고 연습하는 장면에서 엄마가 울음을 터트렸다. 그 순간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졌다.


영상을 보고 나도 모르게 쌍둥이 형제 아이들과 엄마를 응원했다. 게임에서 이겨 말이 통하고 대화가 통하는 화목한 가정이 되게 해 달라고. 그러면서 동시에 딸아이도 게임채널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는 방법을 아내와 모색하기로 했다. 제일 먼저, 영상 나이 등급을 낮췄다. 게임 채널을 아예 볼 수 없게 했다. 두 번째,  토요일 할머니 집에서 영상을 보는 시간을 2시간으로 고정했다. 딸아이가 수긍을 할지 모르겠지만 이유를 설명하면 잘 들을 수 있을 거란 희망으로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 날 아침, 어린이집에서 가져온 미니 김밥과 미니 유부초밥을 아이들이 스스로 만들어 먹는 시간을 가졌다. 밥에다 맛있는 가루와 소스를 넣고 비며 유부초밥 안에 직접 넣어 먹으니 우리 딸 기분이 아주 좋다. 다 먹고 딸아이에게 할 말이 있다며 어제 아내와 정한 두 가지 규칙을 딸에게 말했다. 밥을 먹고 기분이 좋은 지 2시간이란 말에 쿨하게 오케이 사인이 떨어졌다. 그리고 게임채널도 집에서는 안 본다고 직접 말을 하였다. 마음이 자주 바뀌는 딸이라 걱정을 했는데 우리 딸 아들 쿨하게 약속을 지켰다. 할머니 집에 갔는데 평소 같으면 6시간 넘게 보는데 딱 2시간만 보고 스스로 티브이를 껐다. "우리 딸 아들 약속 지켜줘서 너무 고마워!"라고 한참을 안아줬다.


2시간만 티브이 보는 덕분? 에 아내와 나 장모님 댁에서 자유롭게 티브이는 볼 수 없었지만 근처 운동장에서 아이들과 신나게 배드민턴도 하고 모래성 쌓기 놀이도 하였다. 어째 보면 모든 원인은 우리 어른에게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 어른이 편하려고 아이들에게 한없이 영상을 시청하게 하게 하는지 모른다. 우리 어른이 먼저 편하려고 아이들에게 폰을 주는지도 모른다. 그게 시작이다. 우리 어른이 조금 불편하지만 아이들과 함께 놀아야 하고 같이 이야기해 줘야 하고 뭔가를 같이 해야 한다. 우리 어른이 먼저 편하려고 하다가 아이들에게 폰과 노트북 티브를 주고 나중에 더 큰 고통을 받는 것이다. 우리 어른이 달라져야 한다. 그게 시작 거다.


딸아이가 약속을 잘 지키는 만큼 나도 아이들 앞에서 폰은 하지 않고 아이들 속으로 들어가야겠다고 마음 먹는다. 색종이로 팽이개구리도 접어주고, 물감 놀이도 하고, 클레이로 자동차도 만들어 주고, 글자 쓰기도 하고, 숨은 그림도 같이 찾고, 숨바꼭질도 같이 해야겠다. 아이들이 원하는 건 놀아주는 거다. 노트북도 폰도 티브이도 결국은 아이들도 할 게 없어서 심심해서 하는 거다. 우리 어른이 먼저 영상매체에서 멀어져 직접 놀아주는 방법밖에 없다. 아이들을 심심하지 않게 해 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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