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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도쌤 Jan 04. 2022

부끄럽지만 정직해라!

<빈 화분> 그림책을 읽어주고

사서 선생님이 그림책 한 권을 소개해줬다. 책 제목은 <빈 화분>이다. 별 기대를 안 하고 한 장 한 장 넘겼는데 울림이 크다. 책을 덮었는데 나도 그림책 주인공 '핑'처럼 내 삶을 정직하게 살고 있기는 한가라는 의문이 밀려왔다. 부끄러움을 숨기기 위해 다른 사람의 눈치를 안 보는 듯 하지만 실제는 나도 모르게 너무 신경을 쓰는 삶을 살고 있는 건 아닌지, 보기 좋은 결과를 얻기 위해  얄팍한 거짓말로 나 자신을 포장하고는 있지 않은지,  나만 못 이뤘다는 자괴감에 스스로를 너무 자학하지는 않았는지,  이 그림책을 통해 '나라는 실체'를 마주할 수 있게 되어 참 고마운 시간이 되었다. 


내용은 이렇다. 중국 어느 마을에 꽃을 많이 사랑한 임금님이 나이가 많이 드셔서 왕위를 물려줄 후계자를 찾아야 했다. 골똘히 고민한 임금님이 내린 결단은 특별한 꽃씨를 1년 동안 가장 정성을 다 해 키운 아이에게 왕위를 물려주겠다는 것이었다. 방을 내리자마자 전국 방방곡곡에서 아이들이 궁궐로 몰려들어 꽃씨를 받아갔다. 꽃을 사랑한 주인공 '핑'도 임금님에게 꽃씨를 받으며 가장 예쁜 꽃을 피울 자신감에 기분이 붕 떠 있었다.


그런데 핑의 기대와는 달리 화분에 기름진 흙 넣고 씨앗을 조심스럽게 심고 물을 줬는데도 화분엔 아무 기미가 없었다. 몹시 걱정이 된 핑은 더 큰 화분에 새 흙을 담아 씨앗을 옮겨 심었는데도 두 달이 가고 1년이 지나도 싹은 트지 않았다. 그런데 임금님에게 똑같은 꽃씨를 받은 다른 모든 아이들은 예쁜 꽃이 핀 화분을 안고 후계자가 될 꿈에 부풀어 궁궐로 몰려 갔던 것이다. 꽃이 없는 빈 화분 때문에 자신이 못난이처럼 느낀 핑은 다른 아이들에게 놀림까지 받으며 스스로에게 실망한다. 그러나 "정성을 다했으니 됐다. 네가 쏟은 정성을 임금님께 바쳐라."라는 아버지의 말비로소 힘을 얻고 빈 화분을 안고 궁궐로 가게 되는 주인공 핑이다.


결과는 어떻게 됐을까? 너무 궁금했다. 임금님은 모든 아이들이 들고 온 각자 예쁜 꽃들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임금님의 표정은 좋지가 않았다. 드디어 핑의 차례가 왔을 때 혼자만 빈 화분을 들고 온 핑은 부끄러워 고개를 들지 못했다. "왜 빈 화분을 들고 왔냐?"는 임금님의 말에 핑은 아래와 같이 솔직하게 대답한다.


임금님께서 주신 씨앗을 심고 날마다 물을 주었지만, 싹이 나지 않았사옵니다. 더 좋은 화분에 더 좋은 흙을 담아 심어도 싹이 나지 않았습니다. 꼬박 한 해를 돌보았지만 아무것도 자리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오늘 꽃이 없는 빈 화분을 들고 온 것입니다. 이 빈 화분이 제 정성이옵니다.


핑의 말에 임금님은 그제야 빙그레 웃으며 이렇게 말한다.


"내가 찾던 아이가 바로 이 아이다! 왕위를 물려줄 사람을 찾았노라! 너희들이 어디서 씨앗을 구했는지 나는 모를 일이로다. 내가 너희들에게 나누어 준 씨앗은 모두 익힌 씨앗이니라. 그러니 싹이 틀 리가 있겠느냐. 빈 화분에 진실을 담아 내 앞에 나나탄 핑의 용기는 높이 살 만하다. 그 보답으로 이 아이에게 나라를 물려주고, 이 아이를 왕으로 삼으리라."


대충 결과는 어느 정도 예상을 했었지만 임금님의 혜안에 어안이 벙벙했다. 한 나라의 임금님이 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덕목이 바로 '정직'임을 임금님은 충분히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 정직함을 실천하기 위한 도전 과제가 바로 '익힌 씨앗'이었던 것이다.


꽃이 필리가 없는 '익힌 씨앗'을 받아간 다른 모든 아이들도 분명 주인공 '핑'처럼 새싹이 자라지 않아 속상하고 실망했을 것이다. 그러나 보기 좋은 자리, 멋진 타이틀을 얻기 위해 꽃씨를 바꾼 것이었다. 남이 모를 거라 생각하고 몰래 스스로에게 거짓말을 한 것이다. 아이 스스로가 다른 꽃씨로 바꿨을 수도 있고, 부모님의 기대로 부모님이 꽃씨를 바꾸어 심어줬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어찌 되었건 빈 화분이라는 부끄러움을 숨기기 위해, 보기 좋은 결과를 위해 다른 이들은 모두 '보기 좋은 화려한 꽃'을 선택하게 된다. 임금님의 후계자가 되기 위한 꽃이라는 결과에 다들 눈이 멀었던 것이다.


내가 만일 그림책 속 꽃씨를 받은 아이들이고 그 부모였다면 어떻게 했을까? 생각할 필요도 없이 '보기 좋은', '화려한', '부끄러움을 숨긴', '거짓말로 가장한' 꽃을 들고 임금님 앞으로 달려갔을 것이다. 그냥 결과에만 집착한 화려하게 핀 꽃을 보여주는 데 급급했을 것이다.


어째 보면 우리 내 삶이 주인공 '핑'과 나머지 아이들의 삶과 다른 게 하나도 없는 것 같다. 어느 쪽을 선택해서 살지는 본인의 몫이다. 정직하게 살지 정직한 척 살지는 본인이 정하는 것이다. 적어도 스스로에게 뿌듯한 삶을 살고 싶으면 어느 쪽을 택할진 명확 것 같다.


막대사탕을 다 먹은 우리 딸, 놀이터에서 순간 고민을 하다 내가 안 보니 스윽 하얀 막대를 놀이터 바닥에 떨어 뜨린다. 그걸 보니 핑이 생각다. 이 짧은 순간에도 말이다. 평소 우리 아들이 하는 말  "지구가 더러워질 건데."라고 슬쩍 얘기하니 우리 딸 얼른 버린 양심을 줍는다.


사탕이 묻은, 끈적끈적한, 찝찝한, 하얀 사탕 막대 그 부끄러움을 자기 주머니에 넣는다. 내 딸도 나도 그림책 주인공 '핑'처럼 정직한 길을 걸어가길 바라고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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