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삿짐 정리 2차전과 공원 산책

제주 살이 4일차

by 도도쌤

눈을 뜨니 새벽 3시, 어제 딸 재우다 나도 잠이 들어버렸다. 일어나자마자 제일 먼저 컴퓨터를 켜고 4일 차 기록을 적는다. 작년 한 해 교단일기 적는 것이 그새 습관이 되었다.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몸이 일어나 손이 타이핑을 하고 있다. 습관이 나고 내가 습관인 걸 깨우치는 이 순간이다.



제주 1년 살이 4일 차, 이삿짐과의 전쟁이 다시 시작되었다. 창고와 내 방에 쌓여있던 정체모를 짐들을 싹 다 거실에 모았더니 거대한 산이 되어 버렸다. 게다가 거실 책장과 아이들 책장에 아무렇게나 꽂힌 책들도 문제였다. 아내 고민 고민하다 꺼낸 카드가 창고에 있는 4단 철제 선반을 내 방 책장으로 사용하자는 아이디어였다. 어젠 책장을 새것으로 하나 사주고 싶어 나보고 책장 뭐 살까라고 하는데 임시로 1년 살 집이라 짐을 굳이 늘릴 필요가 없다는 결론으로 아내와 나 못을 박았다.


창고에 있는 4단 철제 선반 하나 꺼내는 것도 힘이 든다. 둘이서 끙끙거리며 겨우 내 방으로 옮겼다. 2년 동안 덥고 추운 날씨 속에 무거운 짐을 올려놓았더니 결합한 다리가 많이 휘어졌다. 잡고 살짝 움직였는데 위태위태하다. 짐을 올리면 괜찮겠지 했는데 이건 뭐.... 앨범을 넣으니 사이즈도 맞지 않는다. 선반 높이 칸도 너무 고정이 되어 있어 잘 빼지 지도 않는다. 아내 갑자기 공구함으로 가더니 망치 하나를 가져온다. 망치를 든 우리 아내 최근에 같이 재미있게 본 어벤저스 여자 토르 느낌이 물씬 풍긴다. 뭐든지 만지기만 하면 부러지는 나에 비해 뭐든지 뚝딱 겁 없이 해결해 내는 아내다. 이사하고 나서 컴퓨터 수리에다 공유기 설치 보통 남자가 하는 일을 혼자서 다 해결해린 우리 아내다.


혹시 모를 층간 소음 방지를 위해 매트를 하나 가져와 그 위에 철제 선반을 거꾸로 뒤집었다. "쿵 쾅쾅" 거리는 소리가 방안을 사정없이 울린다. 아내의 망치가 요술방망이다. 뚝딱뚝딱 몇 번 치더니 이음새 철 부분이 저절로 분리되고 저절로 결합되는 마술 같은 장면을 목격한다. 책 사이즈랑 앨범 사이즈에 맞게 재탄생한 철제 4단 선반이 만들어졌다. 처음보다 백배나 멋진데 뭔가 높고 불안한 느낌은 지울 수가 없다. 순간 아무렇지도 않게 말한 내 말에 우리 아내 눈빛이 달라진다.


"아내, 이거 2단 두 개로 분리해서 사용하면 안 될까?"


그냥 꺼낸 내 말에 우리 아내 너무 좋다고 한다. 난 늘 별생각 없이 말하는데 나의 그런 상상력을 좋아하는 아내다. 다시 토르가 된 아내 이음새를 분리하고 "쿵쾅쿵쾅" 망치질이 다시 시작된다. 2단 맞춤 사이즈 선반이 하나 완성되었다. 우리 아내 엄청 좋아하는 눈치다. 만들고 보니 어디 멋진 예술 작품이 하나 탄생한 기분이다. 나머지 하나도 힘들게 이음새 부분을 빼내고 테니스 공까지 맨 아래에 고정시켰더니 근사한 '2단 철제 선반'이 두 개나 완성되었다.


이제는 그 공간을 채우는 일만 남았다. 거실 책장에 있는 내 책들과 아이들 방에 가 있는 내 책과 앨범을 가져와 차곡차곡 옆으로 쌓는데 넘어지기 시작한다. 우리 아내 순간 기지를 발휘한다. 옆으로 넘어지는 책들이 안 넘어지게 책을 10권 쌓아 책벽을 만든다. 대단한 아내다. 그렇게 내 책으로 새롭게 탄생한 예술 작품을 수놓았더니 정말 근사한 책장이 되었다. 창고에 처박혀 각종 짐들을 이고 있느라 고생한 4단 선반이 2단 책장으로 변신하였다. 이제는 나와 함께 떨어질 수 없는 소중한 친구가 된 기분이다.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도 뒤를 몇 번이나 돌아보는지 모르겠다. 볼 때마다 뿌듯한 이 맘 감출 수가 없다.


"내 사서 일 할까? 책 정리하는 거 재미있네!" 하면서 거실에서 책 정리를 열심히 하는 아내, 쉬지도 않고 일을 한다. 난 머리가 핑 돌고 어질어질하며 힘이 하나도 없다. 안방에 누워 충전을 한다. 폰은 충전기를 연결하면 되지만 나와 아내의 충전 장소는 어디 누울 데만 있으면 그 장소가 바로 충전 장소다. 그렇게 충전을 하니 힘이 솟아난다. 산처럼 쌓여있던 물건이 제 장소를 찾아가고, 정신없이 배치되었던 책들도 제자리로 찾아갔다. 세 번째 이산데 이렇게 깔끔하게 제대로 이삿짐 정리를 하기는 처음이다. 확실이 제주 새집이 제일 크니 정리하기도 수월하긴 하다.


내 방이 완성되었다. 거실 책장과 책상이 새롭게 탄생하였다. 3시간 가까이 일한 보람이 눈으로 보인다. 정리된 마음으로 새롭게 1년 재미있게 의미 있게 재미있게 잘 살아보자!




배가 고파 쓰러질 지경이다. 갓 만든 밥과 된장국 그리고 갈치구이가 구세주다. 내가 연신 맛있다고 그러니 "아빠, 그렇게 맛있어요? 전 그냥 밥인데!" 한다. 3시간 내내 영상만 본 너희들이 밥맛이 있을 리가 있겠냐?


제주도에 왔는데 제주도 안 왔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는 아내다. 오전엔 열심히 일 했으니 오후엔 '천지연폭포' 가자고 아내에게 말하니 좋다고 한다. 아내와 나 갈 준비가 끝났는데 아들딸은 함흥차사다. 새로 찾은 간이 폰 게임에 푹 빠졌다. 갈 생각이 없다. 30분이 그냥 날아가 버린다.


각자 방에 옷을 정리해 놓아서 알아서 옷을 입으라고 했더니 우리 아들 짧은 무지개 옷을 속옷으로 입는다. 춥다고 긴 거 입으라고 했더니 "아빤 내가 하고 싶은 건 왜 못하게 해요? 이건 내 소중한 무지개 옷이라고요. 한 번 입고 싶었어요."라며 울고 난리가 났다. 아들의 떼를 이길 수 없는 나, 무지개 잠옷을 입고 그 위에 겉옷을 입었다. 우리 딸 날씨가 9도라고 하니 잠바도 안 입고 얇은 운동복 상의만 입었다. 잠바 입자고 아들한테 그러니 "저도 누나처럼 누나처럼 얇은 옷 입을래요." 한다. 누나처럼 입겠다고 또 오만 떼를 쓰는 아들이다. 출입문을 나서니 얼추 한 시간이 지나가 버렸다. 혹시나 몰라 두꺼운 아들딸 잠바를 주섬주섬 챙겨 나오는 나다.


역시 나오니 좋다. 제주도 맞긴 맞는 모양이다. '걸매 생태 공원'을 치니 6분이면 도착한다. 천지연 폭포 보러 10분이면 갈 수 있다니 내가 말해도 스스로 놀란다. '걸매 생태 공원'과 '서귀포 칠십리 시 공원' 사이에 있는 천지연 폭포. 공원도 산책하고 폭포도 보고 일석이조다. 날씨도 따뜻하니 산책하기에 딱 좋다.


"아빠, 하나도 안 추운데요!"

"하나도 안 추운데요!"


연신 안 춥다고 하는 아들내미. 끝이 길다. 근데 아들 말처럼 날씨가 따뜻하니 하나도 안 춥다. 아들 말이 맞다. 아들 말 들었으면 됐을 걸 왜 또 굳이 고집을 피웠을까 스스로 반성이 되는 시간이다.


도착하니 물소리가 어디서 들린다. 여긴 동홍천과 달리 천에 물이 제법 많다. 지도를 보니 '연외천'이다. 하나 배운다. 이 천이 흘러 천지연 폭포가 되는 모양이다. 햇빛을 받은 물소리에 봄이 잔뜩 고여 있고, 노란 유채꽃에도 봄이 녹아있다. 무엇보다 신나게 뛰어다니는 아이들 발걸음과 웃음소리에 봄은 이미 찾아와 있었다. 연신 그 봄을 나의 사진기에 담아 본다. 이렇게 아름다운 자연과 함께 할 수 있는 이 순간 자체가 봄인걸 그제야 깨닫는다. '걸매 생태 공원' 너 참 멋지다.


우연히 발견한 '칠십리 시 공원'에 있는 아이들 놀이터가 또 예술이다. 하얀 설산을 배경으로 놀고 있는 아이들 모습에 '아 여기 진짜 제주도 맞네' 싶다. 아들딸은 여기 놀이터가 하늘땅 크기보다 더 좋단다. 무서워서 내 손을 잡고 겨우겨우 한 걸음 떼던 아들, 1시간 넘게 넘어지고 도전하더니 이제는 손 잡지 말란다. 혼자서 처음부터 끝까지 장애물 위에 발을 올려 떨어지지 않고 한 바퀴 성공한 아들이다. 혼자서 해냈다고 엄지를 몇 번이나 아들한테 날려줬는지 모르겠다.


놀이터가 중요하지 아이들한테 폭포가 중요하겠냐? 천지연폭포는 놀이터 때문에 다음으로 미뤘다. 아이들이 잘 놀면 제일이다. 하하하하. 그렇게 4일 차가 이삿짐 정리와 공원 산책으로 마무리되었다.




아침(계란 토스트 생략), 점심, 저녁

점심, 저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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