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 온 지 일주일이 지났지만 아이들 육아에 지쳐 집에만 있으면 여기가 제주도인지 모를 때가 많다. 하지만 마음만 먹으면 차로 1시간 내로 제주 어디든 갈 수 있다는 게 제주 살이의 가장 큰 매력이다. 오늘은 아침부터 아들내미 저번에 못 간 폭포가 가고 싶다고 그런다.
"아빠! 폭포 가고 싶어요!"
그런데 딸은 폭포는 시시하다며 도서관이 가고 싶단다. 둘이서 한참 실랑이를 벌인다. "폭포", "(기적의) 도서관"을 연이어 소리 내더니 이젠 귀찮으니 아예 앞 한 글자만 낸다.
"폭"
"기"
"폭"
"기"
.....
끝이 없다.
"우리나라에서 엄청 큰 폭포고 여기 제주도 아니면 정말 보기 힘들어. 가면 딸 '우와!'하고 소리 지를 멋진 곳인데 한 번 안 가 볼래?"
멋진 폭포니 폭포에 대한 자랑을 마음껏 했더니 딸내미 마음을 바로 바꾼다.
"그래요. 폭포 먼저 가요, 대신 폭포 갔다 도서관 가는 거예요."
집에서 차로 '천지연폭포'를 찍으니 10분이 뜬다. 제주도 온 걸 온몸으로 느끼는 순간이다. 부산이면 비행기 타고 차 타고 오면 최소 2시간 거리를 10분 만에 올 수 있다는 사실에 그저 놀랍다.
사실 천지연 폭포는 제주도를 상징하는 폭포라 많은 관광객이 찾는 곳이다. 나도 몇 번 와 본 곳이라 사실 많이 식상하다. 아내도 물어보니 결혼 전에 와 봤던 곳이라 한다. 한 번 가 본 곳은 그렇게 자연스럽게 기대감이 떨어지는 게 당연하다.
아들이 가고 싶다고 해서 아무 기대 없이 간 천지연폭포. 이건 웬걸? 3월의 첫날, 아침에 봄비가 살짝 내린 영향일까?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공기 자체가 싱그럼 그 자체다. 게다가 이 자연스러운 분주함은 뭘까? 새우깡 하나에 사람, 오리, 비둘기, 잉어가 하나가 되어 다들 신나게 웃는 모습이 정겨움 그 자체다. 자연의 경이로움이 주는 또 다른 초록 세상에 들어와 마음껏 감탄한다.
"아빠, 완전 밀림이에요."
"더워요, 옷 벗을래요."
"저도요."
왜 내복을 입고 왔을까 후회가 잔뜩 밀려온다.
단순히 폭포만 보러 왔던 예전에 비해 지금은 이곳 전체가 다 소중하게 느껴진다. 며칠 전 아이들과 산책한 연외천이 저 위에서 흘러 이곳까지 이어짐을 알기에 하천 전체가 보인다. 게다가 물이 말라 붙은 동홍천을 보다 여기 살아있는 흐르는 물을 보니 물의 소중함도 느껴진다. 단순한 물이 아니라 제주도 삶 속에서의 나무와 물이 느껴진다. 일주일 만에 제주 사람 다 된 기분이다.
"아빠 폭포다."
아이들이 달려간 곳을 바라보니 하늘에서 물살이 세차게 쏴쏴 쏴 쏟아진다. 숨이 턱 막힌다. 예전엔 '폭포 멋지네!' 그게 다였는데 이번엔 전혀 아니다. 이곳 전체가 한눈에 쏙 들어온다. 병풍처럼 폭포를 둘러싸고 있는 수백수천 년 우뚝 지켜온 나무와 바위들. 하늘빛과 물빛이 더해 주는 엄마품과 같은 이 아늑함. 그 포근함 가운데 초연하게 떨어지는 저 폭포. 천지연폭포. 할 말을 잊는다. 연신 폰을 꺼내 이 순간을 담아본다.
"결혼 전 때랑 정말 다르네! 진짜 좋다!"
마음이 여유로워서 이 공간도 포근하고 여유롭게 느껴지는 걸까? 관광객으로 관광지를 보고 가는 그 마음이 아니라 이 동네와 이 자연과 이 폭포 자체를 사랑하는 마음이 가득 솟아난다.
3월 1일만 되면 다음날 새로 맞을 아이들 걱정 때문에 하루 종일 마음이 쿵쾅쿵쾅 안전 부절했는데, 이런 3월 1일의 평온함은 교사가 된 이후 처음 갖는 기분이다. 오늘을 그동안 수고했다는 나에게 주는 선물로 생각하고 고생하는 동료 교사를 위해서라도 힐링이 되는 좋은 글과 사진을 올려야겠다고 마음먹는다.
천지연, 하늘과 땅이 만나 이루는 연못. 그곳을 마음껏 눈에 넣고 마음에 넣고 발길을 돌린다.10분 이면 올 수 있는 이곳 자주 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