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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일의 제주도는 평화로운 가요?

제주살이 9일 차

by 도도쌤


"행님, 3월 2일의 제주도는 평화로운 가요?"라며 첫 운을 띄우며 전화 거는 동생.

동생의 말에 오늘 하루의 숨겨진 모든 의미가 다 담겨 있다.


'3월 2일'

말만 들어도 심장이 두근거리고 식은땀이 절로 나는 하루.

설렘과 두려움, 긴장감과 새로움이 뒤섞여 교실 공기가 무거운 하루.

종일 뭔가를 했는데 아무것도 기억이 나지 않는 분주했던 하루.

그런 하루가 바로 3월 2일이다.


그런 3월 2일의 교실에서 멀어져 제주도에서 맞이하는 3월 2일.

동생의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제주도의 3월 2일은 비유티플(beautiful)해."


내가 너무 잔인한가?

너무 정직하게 말해도 실례다.

그래도 사실인걸 어쩌나..

나도 모르게 그 말이 나왔는걸...


"행님, 내일 전 죽으러 갑니다."

"행님, 입에서 단내가 납니다."

"행님이라도 살아야죠, "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말한 동생들이지만 정말 잘 안다.

오늘 하루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내가 다 하루 종일 마음이 쓰였으니 말이다.


극과 극, 또 다른 세상에서 산 하루

딴 세상에서 산 하루를 이야기하고자 한다.

미안하지만 너무 미안하지만

난 남겨야 한다.

그래야 다음에 보면 생각이 나고

내 기록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천국이 있다면 제주도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구름, 나무, 하나까지 다 아름다운 제주도다. 하루 거르고 매일 아침 똑같은 곳을 산책하는데 어떻게 그렇게 매일 아침이 다를 수 있는지 모르겠다. 눈 모자를 쓴 한라산은 매일 오라고 나에게 손짓을 하고, 동홍천에 둥지를 튼 원앙 친구는 내 인기척을 느꼈는지 부리나케 줄행랑을 친다.


아침 산책을 하고 아이들 유치원에 보내주고 모처럼 아내와 둘이서 걸었다. 너무 좋은데 뭔가 허전하다. 저 앞에 아이들이 뛰어가서 "아빠!" "엄마!" 싸우고 웃고 떠들고 해야 하는데 너무 조용하다. 그 조용함에 감사한 하루다.


연외천을 따라 걷는 길, 오른편으로 물이 흘러간다.

물을 좋아하는 나 그냥 지나칠 수 없다.

물이 맑다. 손으로 물을 만져 본다.

나의 인기척에 물고기 몇 마리가 쏜살같이 도망간다.

뭐가 있나 싶어 돌을 뒤집으니 수생 곤충들이 나 살려라 하고 모래 속으로 머리를 파묻는다. 아이처럼 물장난 치다 잠깐 고개를 들어 앞을 보았는데 그 풍경에 압도된다.

'어떻게 이렇게 아름다울 수가 있지...'


잠시 휴식을 취하고 맞은편으로 간 '솜반천'

이 솜반천은 땅 아래에서 물이 솟아나서 생기는 용천수라고 한다. 그래서 그렇나? 물이 투명할 정도로 맑다. 이 물들이 만나 천지연폭포를 만든다고 생각하니 '본질'을 찾은 느낌이라 뿌듯하다.

좀 걸었더니 배가 고프다. 아내 말로 살짝 기분이 나빠질 것 같은 기분이다. 횡단보도를 건너니 가게가 몇 개 보인다. 우거지 해장국에 비빔밥이 8천 원 이라니 가성비 최고다. 아내와 나 배가 고팠는지 아무 말도 안 하고 허겁지겁 정말 맛있게 점심을 해결했다.

배가 든든하다. 아이들과 이미 다녀간 '걸매 생태공원'으로 길이 이어진다. 세 번 정도 오니 이젠 다 외웠다. 제주 주민처럼 자유롭게 이 길을 걷는다. 저번에 안 가 본 매실나무가 가득 펼쳐지는 오른쪽으로 발길을 옮겨본다.

하영 올레길 '추억의 숲길 구간'이라는데 한 사람 겨우 갈 좁은 숲 길이다.


나만의 비밀 아지트를 찾는 느낌.

'올레'다.

짧았지만 보물을 찾은 듯 너무 기뻤다.


또다시 이어진 길은 '칠십리 시 공원'

저 번에 못 가본 천지연폭포도 멀리서 바라본다.

하영 올레 디자인에 너를 한 번 넣어본다.

사진 잘 찍었다고 아내에게 자랑을 하는데

우리 아내 별 반응이 없다. 하하하하


저 멀리 새섬 전망대까지 보고 내려왔더니 다리가 너무 아프다. 버스를 타고 집으로 향하는 길. 제주 버스 안도 참 정겹다. 직접 제주에 사는 사람들의 일상에 나도 잠시 동행해 본다.



3월 2일.

분주함으로 가득 찼던 교실 하루가

이렇게 아름다운 세상도 있다는 걸 알려준 하루가 되었다.


아름다운 3월의 제주도에

내가 이렇게 몸 담고 있다는 자체에

그저 고맙고 고맙고 감사하다.


3월의 제주도 솜반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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