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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만에 가져보는 집에서의 평화로움인가..(돈내코)

제주 살이 10일 차

by 도도쌤

'제주에 1년 살러 왔으니까 당연히 매일매일 밖에 나가 예쁜 경치 봐야지!' 이런 마음이 드는 게 어쩜 당연한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어제 딱 하루 하영 올레길을 많지도 않고 한 2시간 걸었는데 온몸이 다 쑤셨다. 매일매일 욕심내서 무리하다간 한 달도 제대로 못 살겠단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아내도 힘들었던지 오늘은 그냥 가볍게 주변 산책하고 집에서 좀 쉬고 남은 집 정리를 하자고 한다. 같이 살면서 이렇게 마음 통하기가 쉽지 않은데 아내와 나 '체력'이 너무~~ 약해 이 부분에서는 너무 잘 통한다. 하하하하


유치원에 아이들 데려다주며 가며 오며 봤던 '돈내코'를 가 보기로 한다. 거리는 차로 딱 10분이다. '돈내코' 말이 참 특이하다. 유래가 너무 궁금해서 살펴보니 '돗드르'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돗'은 돼지고 '드르'는 들판이니 돼지 들판이라는 뜻이다. 멧돼지들이 물을 마시는 계속이라고 하며 여름에 피서지로 유명하다고 한다.


멧돼지가 나타날 정도로 숲이 아주아주 울창하다. 아침 일찍 오는 사람들이 거의 없어 마스크를 내려 심호흡을 하는데 공기가 예술이다. 숲에서 갓 나온 천연 산소 맛이 일품이다. 마시면 마실수록 몸과 마음이 깨끗해지는 돈내코산 산소는 팔아도 못해도 1.5리터당 만원은 넘게 받을 것 같다. 하하하하.


표지판을 보니 '원앙폭포'가 보인다. 유명한 것 같아 가 보기로 하는데 이건 뭐 거의 절벽 수준이다. 계단이 거의 수직으로 끝없이 아래로 이어진다. 연골이 아픈 나 포기해야 하나 싶지만 처음이자 마지막이라는 마음으로 난간을 잡고 한 칸씩 한 칸씩 무릎에 충격을 주지 않고 내려간다.


에메랄드빛 제법 큰 연못이 보이고 폭포 소리가 샤샤샤 들린다. 다른 건 모르겠고 물빛의 영롱함에 하염없이 물만 한동안 쳐다봤다. 꼭 한 번은 올만한 원앙폭포 다음엔 계단 경사에 숨이 막혀 도전은 못하겠다. 하하하하하


30분 산책으로 오늘의 바깥 외출은 끝이다.

아내도 며칠 전부터 두통이 있다고 그러고 컨디션이 별로다. 자가 키트로 혹시나 몰라 검사를 해 보니 한 줄이다. 그제야 안심하는 아내다.


거실 창으로 따스한 햇볕이 쏟아진다.

독서대에 <여덟 단어> 책을 올려놓고 작가의 이야기에 흠뻑 빠져가며 줄 쳐가며 기록해가며 공부하듯이 책을 읽는 나다. 뭔가 허전했던 마음이 꽉 찬다. 햇살 속에 아내가 튼 노래들이 춤을 추며 봄의 따스함을 속삭인다. 영화의 한 장면인 것처럼 느껴지는 이 순간. 제주 밖 아름다움이 하나도 부럽지 않다. 독서를 하며 느낀 지금의 순간을 책에 남겨본다.

나가서 보는 것만 필요했던 게 아니다.
집에 조용히 앉아 책을 읽고, 생각을 정리하고
해야지 했던 미룬 집안일이 필요했던 거다.

밖의 아름다움도 중요하지만
정리되지 않은 내 안의 마음 정리와
사소하게 불편을 줬던 집 정리가 필요했던 거다.
내 안의 집 안의 안정감이 필요했던 거다.

노래와 오후 따사로운 햇살과 책
그리고 아내의 집안 정리 소리
이 공간이 아름다움으로 꽉 찼다.

-제주집에서의 평일 하루에서 느끼는 아름다움과 감동-


배울 것들이 너무나 많은 책,

곁에 두고두고 다시 읽고 내 것으로 만들기에 하나도 아깝지 않은 이 책 속의 책들과 시와 노래들.

내 삶이 '전인미답'인 삶. 아무도 가지 않는 그 삶 속으로 절대 내 선택에 후회하지 않고 정답으로 만들어내는 삶을 살겠노라 다짐을 한다.


'생각의 증류'

복잡한 세상 속에서 단순한 본질을 뽑아내기 위해 내 생각의 증류 과정이 필요함을 절실하게 또 느낀다.

제주도 1년 살이, 그 삶 속에서 내게 다가온 책, 다시 읽고 내 것으로 만들어 순간순간에 흠뻑 빠지는 삶으로 승화시키도록 그렇게 살리라 마음먹는다.


산책 후에 하루 종일 집에 있었지만 마음이 풍요로웠던 하루였다.

돈내코 원앙폭포 ㅡby 도도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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