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동료 선생님이 오는 정 김밥이 너무 먹고 싶어 갔는데 다음 날 찾아오라고 해서 여행하다 못 가서 못 먹었다는 말을 들었다. 뭐 세상에 김밥 하나 달랑 먹는데 예약도 해야 하고 사람이 많아서 다음 날 찾아오라고... 이건 뭐 안 먹으면 안 먹었지 절대 안 가야지 라는 생각과 동시에 얼마나 맛있길래 하루를 기다리면서까지 먹어야 하나 싶어 한 편으론 궁금하긴 했었다.
그런데 제주도 이사 온 집이 서귀포다. 그리고 하필이면 '오는 정 김밥'집이 걸어서 10분이면 간다.이건 뭐 운명의 장난도 아니고 김밥을 한 번 먹어보라는 하늘의 계시다.
정방폭포 산책하러 가는 길. 차들이 도로 한 편에 줄지어 서 있고 가게 앞에 사람이 줄을 지어 서 있다. 느낌이 온다. 바로 그 유명하다던 오는 정 김밥 집이다.
'평일 11시 오전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김밥 하나 달랑 먹으로 이렇게 줄을 선다고?'
내 상식으론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모습이 바로 내 눈앞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여보, 여기 무슨 줄이야? 한 번 알아봐 줄래?"
"어, 여기 이게 예약 줄이래."
"어?? 예약 줄? 예약하려고 줄을 이렇게 선다고?"
김밥 먹는 것도 아니고 예약하려고 이렇게 줄까지 서야 한다니 귀가 막히고 코가 막힌다. 아내와 나 기다리는 게 싫어 다음에 먹을까 생각하다 기다린 게 아까워 기다리기로 마음먹는다.
'얼마나 맛있나 한 번 두고 보자!'라는 심정으로 꿋꿋이 기다리고 또 기다린다. 예약 줄만 있으면 금방 사람들이 예약하고 줄이 줄어들 건데 줄어들 기색이 전혀 없다. 알고 봤더니 김밥을 찾아오는 사람들이 가게 안을 점령했다. 그 조그만 가게 안에 예약 줄과 김밥 찾아가는 줄로 북새통을 이룬다.
기다림의 끝을 이겨내고 김밥이 든 검은 봉지 하나 들고 가는 사람들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다.주인은 계산하느라김밥 주느라 기다리고 있는 아내와 나는 눈도 안 마주친다.
"예약하러 오셨어요?"란 주인의 말에 얼른 이때다 싶어 오는 정 김밥 2줄과 멸치 김밥을 주문한다.
"2시 40분에 찾으러 오세요."란 주인의 말을 듣고 조금은 가볍게 문을 등지고 나선다. 밖엔 예약하러 온 사람들의 줄이 조금 전보다 훨씬 더 길어졌다.
시계를 봤더니 예약만 20분 넘게 기다렸다. 좀 있다 만나자~김밥아~얼마나 맛있나 두고 보자~
김밥을 맛볼 수 있다는 생각에 그리고 정방폭포를 볼 수 있다는 생각에 발걸음이 날아간다. 보통은 여행 오면 정방폭포 주차장에 주차하고 계단 내려가고 폭포 금방 보고 사진 찍고 오는 게 여기 코스다.그런데 시간에 구속받지 않고 마음이 너그러우니 폭포가 그냥 폭포가 아니다. 길도 서복전시관 쪽으로 오니 너무 여유롭다.여기 서복 전시관 주차장에 주차하고 경치 구경하며 오는 길을 강력 추천한다.
둥그런 바위에 앉아서 세월아 네월아 하며 하염없이 폭포만 쳐다본다. <여덟 단어>의 '견'을 실천해 본다. 내가 폭포가 되고, 폭포가 내가 되는 물아일체의 순간이다. 그 순간을 기록해 본다.
내가 떨어지는 물이 된다.
바이킹을 타고 내려간다.
가슴이 울렁, 가슴이 철렁
찌릿찌릿 전율이 온몸을 휘감는다.
떨어지는 물 하나하나를 본다.
화살표와 화살표가 만난다.
그 긴 화살이 바위에 부서져
새하얀 거품을 남긴다.
"저기 서 봐!"
세상에서 가장 예쁜 미소를 짓는 사람들
보는 내가 저절로 미소를 짓게 된다.
정방폭포에서 폭포와 사람들을 바라보며
by도도쌤
정방폭포에 올레시장도 만나고 이중섭 생가도 구경하고 그렇게 드디어 '김밥'을 영접하러 가는 시간. 너의 모습이 너무 궁금하다. 2시 35분에 도착한 우리. 번호 끝자리 4자리를 알려주니 드디어 김밥을 만난다.
아내 너무 궁금해서 검은 봉지를 연다.길가에 서서 은색 쿠킹포일 속에 있는 그분을 영접한다. 예약 20분, 총 3시간 기다림의 끝에 만난 그분이다.
우리 아내 맛을 보더니 이런다.
"근데 맛있다. 또 오겠다. 하하하하하. 안 글나?"
입맛 까다로운 아내를 사로잡은 그분의 맛 나도 먹어본다.
"쫀득쫀득"
"꾹꾹 꼭꼭"
입에서 나는 소리다.
밥에 물기가 하나도 없어 꼬들꼬들하다. 고소하면서 자꾸 꼭꼭 씹게 하는 마력이 있는 맛이다.평범한 것 같은데 비범한 맛. 단순하면서도 뭔가 깊이가 있는 맛이다. 이 집 김밥의 매력인 모양이다
한 번은 더 먹고 싶은 맛인데 예약을 하려니 너무 귀찮다. 먹으면서 드는 생각인데 바로 말아서 더 따뜻할 때 먹으면 더 맛있겠다. 아무튼 드디어 오는 정 김밥 너를 만나고 너를 입 속에 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