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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살이의 이색 단어와 이색 풍경

제주살이 18일 차

by 도도쌤

1. 육지


제20대 대통령 사전투표 첫날, 아내와 함께 투표장으로 갔는데 투표종사원이 우리한테 뭐라고 하신다. 기억은 잘 안 나는데 이런 식으로 물어본 것 같다.

"여기 사세요? 육지에서 왔어요?"

'엉? 육지?'

순간 "네.. 육지에서 왔어요."라고 하니 다른 줄로 안내하신다. 줄 서 있는데 참 기분이 묘하다. 그냥 다 한국에서 사는 것 같은데 이렇게 육지랑 섬이랑 구분하는 게 적응이 안 된다. 내가 제주도라는 섬에 살고 있음을 몸소 실감하는 순간이다.


2. 신호등


제주도 이사하고 집 주변이 궁금해 아내랑 뽈뽈거리며 많이 돌아다녔다. 그러다 우리 아내 특이한 점을 발견하며 내게 묻는다.

"여긴 신호등이 없네?"

그렇다. 횡단보도는 분명 있는데 신호등이 없는 곳이 많다. 뭐 내가 살던 부산에서도 조그만 도로엔 횡단보도만 있는 곳이 많았지만 여긴 조그만 도로뿐만 아니라 넓은 4차선 도로에도 신호등이 없는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차는 쌩쌩 달려오고 있고 뭐 알아서 조심해서 가라는 소린 것 같은데 너무 위험하다. 어른들도 이렇게 위험한데 아들딸 생각하니 아이들은 얼마나 위험할지 걱정이 앞선다. 사고 표시 난 플래카드도 보이고 큰 도로 횡단보도엔 신호등 설치를 의무적으로 해 줬으면 좋겠다.


3. 하귤


길거리를 지나다 보면 제일 이색적인 풍경이 바로 귤이 길가에 열려있다는 거다. 먹을 수 있나 궁금해 아내에게 물어보니 못 먹는 '하귤'이란다. 못 먹는 귤이라 이내 낙심했지만 내 눈엔 그저 신기할 뿐이다. 아파트 단지 안을 걸어도, 길거리를 걸어도 하귤 나무가 가로수로 심겨 있어 언제 어디서든 커다란 주황색 하귤을 볼 수 있다는 게 내가 제주도 왔음을 실감하는 순간이다.


이제야 '하귤'의 정체가 궁금해 검색을 해 보니, 추위에 강하고 관상용으로 심는다고 한다. 그리고 하귤을 먹을 수도 있고 하귤청으로 만들어 먹기까지 한다고 한다. 나중에 진짜 나중에 마당 있는 집에 산다면 하귤나무 한 그루는 꼭 심고 살고 싶다. 하귤 보는 것 만으로 제주도 생활 전체가 기억날 것 같기 때문이다.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주황색 너 참 귀엽다.

아이들이 오전에는 열나고 기운이 없었는데 드디어 오후부터 괜찮아졌다. 열이 더 이상 안 오르니 놀아달라고 난리다. 심심하다고 난리다. 열나는 것보다 날 힘들게 하는 게 백배 천배 낫다. 군말 없이 아들딸 방에 가서 놀아준다. 하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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