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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와 놀고 가족 영화까지 본 하루

제주살이 20일 차

by 도도쌤


확진 후 6일 차, 몸이 거의 정상 범위로 돌아왔다. 띵하던 두통은 거의 사라지고 밥맛도 거의 90프로 이상 돌아왔다. 아이들 열도 37도 초반으로 떨어져 아이들이 놀고먹는 데는 전혀 지장이 없다. 며칠 전만 해도 정말 집안 꼴이 폐허 수준이었는데 아이들 웃음소리에 즐겁고 유쾌한 집으로 다시 탈바꿈했다. 역시 아이들은 놀아야 하고 어른들은 쉬어야 한다. 하하하하하!

(아이들 놀아준다고 제대로 푹 쉴 순 없다 ㅡ.ㅡ)


확진 6일 동안 집에만 꽁꽁 틀어 박혀 있으니 주말과 주중이 구분이 없고, 육지 삶과 제주도 삶도 전혀 구분이 없다. 그냥 아내와 아이들과 같이 먹고 같이 자고 같이 놀고 있다. 그나마 위로가 되는 건 거실에서 바라보는 밖의 모습이다. 이전 집에서는 거실 뷰가 그냥 아파트 뷰였다. 한 마디로 삭막했다. 왼쪽으로 고개를 겨우 돌려야 겨우 저 멀리 트인 운동장과 하늘이 보였다.


하지만, 지금은 언제 어디서든 거실에서 밖을 보면 자연이 보인다. 저렇게 커다란 동백나무는 처음이고 하늘의 구름은 매일매일 시시각각 새로운 그림을 그리며 나를 설레게 한다. 물론 비닐하우스도 보이지만 트인 뷰 때문에 이 모든 게 감사할 뿐이다. 문을 활짝 열고 깊게 제주도 맑은 공기를 들이마신다. 마음이 신선한 공기로 꽉 찬다. 풀 숲에서 먹이를 찾아 요리조리 종종걸음 치는 까치를 보면 갇혀있지만 이 모든 게 감사할 뿐이다. 자연이 주는 신비로움에 갇힌 마음도 여유롭게 자정작용이 되어 치유가 될 정도다.


약 기운에 나도 모르게 오전에 잠이 스르르 들었는데 그게 또 꿀맛 같은 단잠이다. 봄비 소리가 쏴하며 세차게 창을 퍼부은 것 같고, "아빠 비 오는 거 보고 싶다고 했는데.." 하며 아쉬움을 잔뜩 토로하는 딸 소리도 들렸던 것 같다. 봄비와 함께 오전 내내 정말 달콤한 잠을 잔 것 같아 종일 마음이 편했는지도 모른다. 그 기운으로 하루 종일 아이들과 즐겁게 놀아줬는지도 모르겠다.


아빠가 집에 있으니 아이들은 살판났고 나는 어디든 숨고 싶은 심정이다. 아빠만 레이더에 포착되면 서로 데려가려고 안달이다. "아빠, 놀아줘!" 하며 아들방에 끌려가서 레고로 로봇 만들어 싸움을 같이 해야 하고, 좀 쉬려고 거실로 나왔는데 딸에게 발칵 되어 원반 던지기를 열심히 해 줘야 한다. 가만히 있으면 그게 뭐가 그렇게 싫은지 충분히 놀아줬다고 생각하는데도 요 녀석들 누워 있는 내게로 몸을 덮쳐 몸놀이도 한참을 같이 한다.


딸내미 갑자기 "돼지씨름"을 하자고 한다. 엉덩이를 땅에 붙이고 두 발을 모아 양손을 허벅지 안으로 감아 깍지를 끼어야 한단다. 그 자세로 앞으로 엉금엉금 기어가서 상대방을 발로 넘어뜨리면 되는 거다. 별 것 아닌 것 같은데 이 돼지씨름이 뭐라고 재미가 있다. 딸내미 기술이 보통이 아니다. 발로 나를 쉽게 넘어뜨린다. 내 몸이 뒤로 굴러 넘어지는데 아이들은 좋다고 깔깔깔 거린다. 딸보고 왜 이렇게 돼지씨름 잘하냐고 하니까 어린이집에서 거의 1등을 독차지했단다. 아들딸 둘이서 나를 공격하는데 몇 번이나 뒤로 내동댕이쳐져 넘어졌다. '돼지씨름' 그게 뭐라고 아이들과 이불 위에서 신나게 놀았다.


오늘은 특별히 아내가 <금쪽같은 내 새끼>를 보고서는 '가족영화'를 보자고 제안을 했다. '어! 속으로 괜찮은데!' 생각이 들었다. 아내와 아들딸 그리고 나 넷이서 소파에 앉아 아이들을 끌어안고 '드래건 길들이기' 1편을 보았다. 영화 자체가 재미있었지만 아들 딸 손도 만지고 같이 감싸 안은 그 체온이 더 좋았다. 이렇게 아이들을 안고 있다는 자체가 평화롭고 커다란 위안이 되었다. 2시간 가까이 집중해서 보는 아이들을 보니 나중에 뭘 해도 잘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의 말공부>에서 엄마가 아이에게 감사한 일을 찾아주고, 아이가 잘 한 점을 찾아주고, 사랑스러운 이유를 자주 말해 주라고 한다. 딸 재우는데 갑자기 그게 생각이 난다. 그래서 오늘 하루 우리 딸이 잘 한 점을 3가지 알려주었다. "음.. 우리 딸 오늘 영화 보는데 집중력이 대단하더라 그리고 바다 김밥 아이디어도 너무 좋고 책도 집중해서 한 권 뚝딱 읽어 내는데 역시 우리 딸 최고야!" 하며 칭찬을 해 주는데 딸 기분이 너무 좋다. 덩달아 내 칭찬과 아내 그리고 동생 칭찬도 3가지씩 해 주는데 기분이 좋다. 자주자주 자기 전에 해 줘야겠다. 좋은 기분으로 잠이 들 것 같다.


(아이) 오늘 하나도 못 놀았잖아.
(부모) 네가 몇 번이나 놀았는데 그런 말을 해?


<엄마의 말공부>에서 휴식과 놀이를 정확하게 구분하라고 한다. TV 보며 잠시 쉰 것 가지고 놀았다고 아이에게 억울하게 누명 씌우지 말라고 한다. 아이가 제대로 놀지 못한 것이 맞다고 한다. 휴식은 휴식일뿐 놀이가 아니다고 한다. 쉬는 것과 노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고 한다. 따라서 진짜 제대로 놀아 줘야 한다고 한다. 아이들이 까르르 보석처럼 터져 나오는 웃음소리가 있어야 하고 얼굴이 볼그스레 져서 마음껏 노는 자유와 즐거움이 있어야 한다고 한다. 책을 읽으면서 '아 그래도 내가 아이들 제대로 잘 놀아주고 있구나!' 하는 안도가 들었다. 평소에 자주 하는 '퀴즈', '끝말잇기', 놀이 활동, 보드게임(달무티, 고 피시, 체스)이 아이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동시에 자연스럽게 숫자 공부와 국어 어휘 공부를 하게 하는 구나를 느낀 시간이었다.


뭐라고 길게 오늘 하루를 정리했는데 요지는 역시 아이들과 제대로 놀아줘야 한다는 거고, 자연이 주는 경이로움과 신비로움은 그 자체가 마음의 치유가 됨을 느낀 하루였다는 거다. 아 맞다! 아이와 함께 하루를 계획하라고 해서 아이들과 계획도 세워 하루를 보냈다. 한 것도 있고 못 한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아이가 직접 하고 싶은 걸 적고 실천했다는 자체가 중요한 거라 생각이 든다.


제주도에 있지만 밖엔 전혀 못 나간 하루 그래도 창밖의 자연을 보며 위로를 한다. 아이와 함께 계획도 세우고 같이 놀고 같이 영화도 보면서 아이들과 함께 더 소통하고 있다고 든 소중한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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