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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려니숲길 여기 맞아? 왜 이렇게 길어?

제주살이 24일차

by 도도쌤

코로나 확진 일주일 후, 한라산 눈이 거의 다 녹아서 깜짝 놀랐는데 또 놀란 게 하나 더 있다. 그건 바로 휘발유 가격이다. 분명 10일 전에 1870원에 싸게 넣었다고 좋아했는데 이건 뭐 휘발유 가격이 2100원이다. 말이 안 나온다. 당분간 차로 움직이는 건 아이들 유치원 등 하원 빼고는 일절 없다. 휘발유 가격을 아끼기 위해 아내와 당분간 버스로 이동하기로 결정했다.


오늘의 목적지는 '사려니숲길'이다. 하도 유명해서 한 번은 꼭 가야지 가야지 했는데 이제야 가 보게 되었다. 날씨를 보니 내일부터 3일 동안 비가 내려 오늘 가기로 결정했다. 281번 버스를 타고 가는 길, 길이 꼬불꼬불하다. 한라산 성판악을 거쳐 '교래입구'란 곳에 내린다. 아내 속도 안 좋고 머리도 어지럽다고 한다. 시작부터 뭔가 불길한 조짐이 든다.


차로 제주도 곳곳을 이동하다 보니 '사려니숲길'이 두 곳이 있는 건 알고 있었다. 한 곳은 차들이 양쪽에 가득 있고 커피와 핫도그 차들이 가득 들어서 있는 곳,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찾는 '남조로 사려니숲길'이다. 그리고 우리가 내린 장소는 비자림로 입구에 있는 '사려니숲길 들머리' 입구, 빨간색 현 위치다. 그곳과 달리 이곳은 사람이 하나도 없다. 아래 지도를 보면 이해하기에 도움이 될 것이다.


나는 현 위치 주변에서 천천히 걸으며 자연을 감상하려고 했었는데 우리 아내 생각은 나와 달랐다. 현 위치에서 붉은오름까지 한 마디로 '남조로 사려니 숲길' 입구까지 걸을 생각이었던 것이다. 거의 10킬로 거린데 3시간이 걸리는 길이었다. 아내가 가고 싶어 하니 간다고 했는데 다리가 너무 아프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길, 날은 흐리고 비는 한 방울씩 뚝뚝 떨어지고 사람은 우리 둘 말고는 거의 없다. 한 번씩 휴게 장소에 앉아있는 사람들 말고는 전혀 없다. 길은 너무 아름답고 중간중간 계곡 같은 곳도 만났지만 갈길이 머니 눈에 제대로 들어오지가 않는다. 아내는 추워서 빨리 걸어야 한다고 그러고 난 마라톤 선수처럼 저절로 다리가 움직일 정도다.

아내에게 뭐 챙겨 온 거 있냐고 하니 물 밖에 없단다. 아내 왈 짱구 과자 챙겨 오려고 했는데 내가 어디 치워서 안 보여 못 가져왔다고 한다. 다 내 탓이다. 아이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과자를 하도 찾아서 드레스룸에 과자를 숨겨 놓았던 것이다. 짱구 과자를 통째로 입에 넣고 와작 와작 씹으며 그 달콤한 맛을 상상하며 걷는데 입안에 침이 고인다.

'아! 짱구 과자!'


한 2시간 걸으니 안 보이던 사람들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다. '붉은오름'과 '남조로 사려니 숲길'이 근처 인가 보다. 길이 붉은색을 띠는 걸 보니 대번에 여기가 붉은오름 근처임을 알 수 있다. 다리는 풀리고 날은 춥지만 힘내서 걸어본다. 주변 풍경이 너무 멋진데 희한하게 하나도 눈에 들어오지가 않는다. 배가 고프고 다리가 아프니 경치는 그저 경치일 뿐이다.


갈수록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우리 아내는 화장실이 급하다고 혼자서 먼저 가 버렸다. 혼자 털털 걷는 길 뭐라도 입에 넣고 싶다. 배가 너무 고프다. 3시간 동안 물만 먹었더니 나도 화장실이 급하다.


사람들이 많이 찾는 '남조로 사려니숲길' 초입이다. 삼나무들이 빼곡하게 들어서 있고, 데크길이 설치되어 있어 사람들이 쉽게 사려니숲을 감상하게 해 놓았다. 그제야 왜 여기가 차들이 많이 길 옆으로 주차되어 있고 관광버스까지 있는지 쉽게 이해가 갔다. 흔히 사려니숲길 하면 사람들이 여기를 가는 가 보다. 다음에 올 때는 아이들 데리고 여기 삼나무 숲 데크길 주변만 걸어도 충분히 산림욕을 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3시간 사려니숲길 산책 너무 힘들었다. 직접 체험하고 나니 사려니숲길이 주변 여러 오름으로 이어지고 길이 이렇게 길고 복잡한지 알게 되었다. 다음에 올 땐 정확히 갈 길을 정하고 '짱구 과자'는 꼭 챙겨 와야겠다. 하하하하.

사려니숲길을 걷는 아내. 걸어도 걸어도 끝이 없다. by 도도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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