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키우는 집은 다 그런가? 거실은 거의 폭탄을 맞은 격이다. 장난감과 책들이 뒤엉켜 도저히 손을 대기가 힘겨울 정도다. 딸내민 책 삼매경에 빠졌는데 문제는 책장에서 뺀 책들이 소파와 거실 바닥에 나뒹굴고 있다. 아들 내민 자기 방도 모자라 거실로 각종 장난감과 레고 블록을 가져와 놀더니 지레가 되어 발에 밟히고 터진다.
아~~~ 역시 제주 삶이라고 해서 뭐 특별한 것 없다. 아이들은 어디 가리지 않고 다 끄집어내고 마음 내키는 대로 하고 어지른다. 뭐 그게 아이 아니겠는가? 아이만의 특권 아니겠는가? 나도 저 나 이땐 딱 저러지 않았겠는가? 하하하하하!
어제 그 춥고 바람 불고 비 오는 날씨에 사려니 숲길을 3시간 넘게 걸었더니 역시나 바로 몸에 이상 신호가 온다. 나이는 그냥 먹는 게 아니다. 나이가 들면 체력은 숨길 수가 없다. 아내는 "아이고 허리야!"를 나는 "아! 무릎이야!"를 일어날 때마다 그게 뭐 자랑이라고 소리친다.
몸도 안 좋고 거실도 엉망이고 하루를 집 정리하기로 아내와 결정한다. 찬 밥에 '옅은 된장 김칫국'을 말아서 '옛날 소시지 볶음'과 아침을 먹었는데 그게 또 꿀맛이다. 아침 밥심으로 아내와 나 힘을 내어 거실을 정리한다.
굴러다니는 종이와 각종 비닐과 클레이 조각들, 소파 밑에서 잠을 자고 있는 종이팽이와 장난감들을 버리고 갖다 놓고 또 버리고 갖다 놓고를 몇 번이나 반복한다. 아내도 책 정리에 색연필 정리에 청소기로 바닥을 쓸고 닦느라 정신이 없다. 역시 하나보다 둘이 낫다. 생각보다 후딱 정리된다.
깨끗해진 거실을 보니 뒤숭숭한 마음이 정리가 된다. 아팠던 허리와 무릎도 움직였더니 한결 나아진 것 같다. 무엇보다 시커먼 먹구름으로 가득 찬 하늘에 표현하기 힘든 제주 특유의 천연 파란 하늘이 보이기 시작한다. 깨끗하게 정리된 거실에 하늘도 저렇게 아름다운 푸른빛을 보여주니 마음이 산뜻하다.
기분 좋은 마음에 진도가 안 나가던 <지킬박사와 하이드 씨> 책이 쑥 읽힌다. 9장 '라니언 박사의 편지'와 10장 '헨리 지킬의 최후 진술'에서 모든 궁금증이 사라진다. '쾌락을 추구하고 싶은 욕구', '사람들 몰래 하고 싶은 욕구'가 하이드 씨라는 '괴물'로 표현된 거다.
최근에 본 <소년심판>이 생각난다. 조현병과 같은 정신 분열증,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사건 사고도 어쩌면 다 우리 안에 있는 '하이드 씨' 때문일까란 생각이 든다. 누구나 그 '하이드 씨' 때문에 내적 방황을 하지만 대부분은 다시 자기 자신 '지킬'로 돌아오지 않는가? 하지만 왜 누군가는 그 악에 지배되어 영원히 '하이드 씨'로 살아가게 되는 건가?
정답이 없는 이 시대, 불신과 소통이 부족해지는 이 시대, 그럼에도 나를 믿고 사람을 믿고 소통을 하고 함께 살아가야 함을 이 책에서 배운다. '하이드 씨'로 영원히 살아가지 않기 위해서 말이다. 하늘도 지금 저렇게 짙은 먹구름으로 가득하지만 찬란하고 형용할 수 없는 푸른빛은 누구에게나 있지 않은가?
모처럼 거실이 깨끗하게 정리되었다. 마음도 정리가 되었다. 밖에 나가 제주도의 아름다운 자연 경치를 보는 것도 좋지만 이렇게 한 번씩은 집을, 내 안을 정리해야 함을 느낀다.
집을 싹 정리하고 따뜻한 햇살을 받으며 읽는 독서, 그리고 찬 한잔의 여유와 대화. 집에서 이렇게 있는 것도 참 좋은 하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