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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갈 곳 하나 정하기

by 도도쌤


일요일 아침. 가야 할 한 곳을 정해야 한다. 그런데 딸이 가고 싶은 곳, 아들이 가고 싶은 곳, 아내가 가고 싶은 곳, 그리고 내가 가고 싶은 곳이 다 다르다. 달랑 네 명이지만 의견을 하나로 맞추는 과정이 쉽지가 않다.


딸과 아내와는 '미로 파크'와 '색달해수욕장' 가기로 합의를 보았다. 근데 문제는 여섯 살 아들이다. 아들이 떼를 쓰기 시작한다.


"난 미로공원 싫다 말이야! 난 비행기 있는 곳이 더 재미있단 말이야! 싫어! 싫어!"


아들내미 저번 주에 간 '항공우주박물관'에 다시 가자고 한다. 길 찾는 건 재미없고, 해수욕장도 마냥 싫다고 드러눕는다. 아들을 빨리 설득하고 싶었던 내 맘이 너무 앞섰다.


"아들, 자꾸 그렇게 아기처럼 떼쓰면 안 되지. 말로 해야지. 자꾸 그러면 저녁에 영화도 안 보고 아빠가 아침에 안 놀아주고 아무것도 안 해 준다."


'앗! 나의 실수!'

조건 달기. 아무것도 안 해 준다 말하기, 마음에 상처 주는 말 하기.


이 세 가지 안 해야지 안 해야지 했는데 또 말하고 말았다. 이렇게 급한 상황이 되면 나도 모르게 나온다. 다섯 살 땐 "네 알겠어요." 하면서 고개를 푹 숙이며 자기 의견을 굽히곤 했는데 이젠 자신의 생각이 뚜렷하다. 한 살 차이가 이렇게 크다.


"그럼, 아빠도 아무것도 하지 마. 내한테 말도 하지 말고 밥도 먹지 말고. 잉잉잉 노는 데 가잔 말이야. 잉잉잉. 아빠 싫어!"


아들 말이 맞다. 조건을 달면 다시 조건을 단다. 부정적으로 말하면 부정적으로 응대한다. 상처를 받으면 상처를 다시 준다. 내가 한 말이 급 후회가 된다. 안 좋은 걸 배우면 안 되는데 안 좋을 걸 가르친 결과가 되었다.


육아서를 많이 보고 이런 상황에 오면 이렇게 대처해야지 공부를 많이 했는데도 막상 현실이 되면 안 되는 게 그놈의 '말'이다. 좀 더 부드럽게 다가간다. 이번엔 실수를 만회하려고 노력한다.


"아들, 아들이 가고 싶은 곳만 갈 수는 없잖아. 저번에 거긴 가 봤으니 새로운 곳으로 한 번 가 보자! 놀이터 있는 곳도 한 번 찾아보고 응?"

나의 말에 이번에는 가만히 있다. 뭔가 생각을 하는 모양이다. 기세를 이어간다.


"음. 거기서 숨바꼭질도 하고 아빠랑 놀면 되잖아. 또 더우면 슈퍼마켓 가서 맛있는 거도 사 먹고 응? 다음 주엔 아들 가고 싶은 곳으로 꼭 가자. 흑돼지 보러 꼭 가자 응?"


효과가 있다. 숨바꼭질에 혹한 아들이다. 슈퍼마켓에서 뭔가 또 사 먹을 여지도 생겼으니 가고 싶음 마음이 든 게다.


"아빠 못 찾으면 무서운데. 음...."

이때다. 못을 박는다.


"그럼, 아빠가 아들 찾기 쉬운 곳에 숨을 게. 그리고 무서우면 아빠랑 같이 손 잡고 미로 찾아보자! 알겠지?"


아들내미 마음이 조금씩 열린다. 자기 방에 가서 일단 놀아달라고 한다. 얼른 가서 블록으로 로봇을 만들고 싸우고 논다. 놀고 나니 그제야 옷을 갈아입는다. 아들 마음 알아주기가 이렇게 힘들다.


조건 달지 않기. 아무것도 안 해 준다 말하지 않기, 마음에 상처 주는 말 하지 않기


오늘 또 이 세 가지를 배운다. 다음에 아들이 떼쓸 땐 아들 곁에 다가가서 다정하게 말을 하련다. 아들 의견의 좋은 점을 먼저 말하면서 다른 사람의 의견의 좋은 점도 말해보련다. 그렇게 소통하리라 마음먹는다. 이렇게 다짐을 하지만 막상 닥치면 힘든 걸 안다. 그래도 다짐을 한다. 좋지 않은 말을 적어도 하지 않기 위해서 말이다.


"아들, 아빠가 조건 달고, 아무것도 안 해 준다 하고, 상처 주는 말 해서 너무 미안해. 다음엔 좋게 이야기할 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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