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전, 아내와 올레길 1코스를 완주하면서 '성산일출봉은 아이들과 같이 한 번 와서 한라봉 아이스크림에 고등어 쌈밥을 같이 먹으면 참 좋겠다.'라고 말을 했었다. 그리고 드디어 아이들과 성산에 다녀왔다. 성산일출봉 가는 아침이 분주하다.
"아들딸, 제주에서 아주 유명한 곳에 안 가 볼래? 아아아아 아주 오래전에 화산이 폭발한 곳 이래."
"진짜요? 그럼 지금도 화산이 폭발해요?"
"음... 그건 아니고, 올라가면 폭발했던 장소를 볼 수 있어."
"그럼, 아빠, 땅 파면 공룡뼈들도 볼 수 있어요?"
"볼 수도 있지. 아이스크림도 사 먹고 공룡뼈도 보러 갈까?"
"네~~~~"
높은 산에 올라간다면 힘들다고 절대 안 가겠다는 아들딸인데, 아이들이 좋아하는 화산과 공룡 그리고 아이스크림으로 나름 꼬셔서 쉽게 데리고 갈 수 있었다. 네비를 찍으니 '헉' 1시간 15분이 걸리는 꽤나 먼 거리다. 저번에 급행버스 101을 탔을때보다 체감상 훨씬 더 멀다. '성산이 이렇게 멀었었나?' 싶다.
성산일출봉에 도착했다. 많은 관광객들이 보인다. 올라가기 전에 미리 화장실에서 볼일도 보고, 스틱도 2개 꺼낸다. 총각 때 두 번 정도 올라갔는데 엄청 높았던 게 어렴풋이 기억이 났기 때문이다. 아들딸 또래 아이들도 제법 많이 보인다. 가족들과 주말 의미 있는 곳으로 출발하는 모습들이 참 보기 좋다.
스틱을 각각 챙긴 아들딸. by도도쌤
그런데 시작부터 난관이다.
"아빠, 다리 아파, 난 내려가는 길로 갈래." 하며 하산하는 길로 빠지는 딸이다. 글자 잘 읽을 줄 아는 건 이럴 땐 하나도 도움이 안 된다. 하하하하하. 여기 성산일출봉 총각 때보다 훨씬 더 경사가 높아진 거 확실하다. 오르고 올라도 숨이 목까지 찬다.
"헉"
"헉"
"헉"
"이건 고문이야!"
내가 하는 말이 아니다. 내 주위에 함께 올랐던 젊은 여자분들과 어르신들이 하시는 말씀이다. 우리 딸은 한 수 더 뜬다. "난 오늘 운동 안 해도 되겠다. 나 살 빠지겠는데. 크크크크 크"그런다. "하하하하하"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오르고 올라도 끝이 없는 계단길이다. by도도쌤
"아! 힘들어서 못 가!"라고 딸이 그러는데 "..... 즐거운 관람되시기 바랍니다."라고 방송이 들린다. 아이러니한 상황에 웃음이 픽 나온다. 올라가는 주위 사람들 겉옷들이 하나둘 허리와 손으로 간다. 내 쓸라고 가져온 스틱은 딸과 아들이 하나씩 들고 가고, 목마르면 먹을 거라며 가져온 생수 두 통과 딸 재킷은 내 손에 들린 채 오르막을 훨씬 더 힘들게 하고 있다.
"헉, 헉, 헉"
"아휴, 아휴, 아휴. 한 칸 올라가고 꼭 쉬어야 해!"
사람들의 힘든 소리가 귓가에 생생하게 들린다. 여기 진짜 높아진 거 확실하다. '아! 힘들어....'
삼분의 이쯤 올라갔나 그렇게 힘들다던 사람들이 "우와! 우와" 거린다. 뒤를 돌아보니 성산 주위가 한눈에 쫙 그림처럼 펼쳐진다.
날씨와 경치 모두 끝내준다. by도도쌤
여기 성산 마을과 광치기 해변에서부터 성산항까지 그리고 뒤로는 말미오름과 알오름 그리고 각종 오름들이 바다와 함께 하늘과 함께 예술이다. 바로 하산하자고 다리 아파 못 걷겠다고 한 딸도 "우와 경치 예쁘다. 스트레스가 다 풀리는 것 같아. 우와 장난 아니다. 저기 사람이 콩알이다."며 자연의 아름다움에 감탄을 한다.
딸과 나보다 먼저 도착한 아내와 아들, 영상통화까지 하며 자기들은 이미 도착했다고 자랑을 한다. 힘을 내어 도착한 성산일출봉, 초록초록빛을 띠고 있는 분화구가 나를 반갑게 맞이한다. 힘겹게 올라온 사람들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환한 웃음을 지으며 사진 촬영을 한다. 아들딸 정상 곳곳을 돌아다니더니 분화구 내려가는 길이 막혀있자 내려가고 싶다고 아쉬움을 토로한다. 한참을 왜 못 내려가냐고 나한테 원망을 했다. 하하하하하. 모처럼 우리 가족도 가족사진을 남기고 하산한다.
내려가는 길도 만만치 않다. 끝없는 계단의 연속이다. 딸아이에게 스틱을 받아 그나마 무릎을 보호하면서 내려왔다. 아들 내민 "언제 다 와? 다리 아파 힘들어 못 내려가겠어!"라고 아예 계단에 몇 번이나 퍼질러 앉는다. 겨우겨우 아이스크림 먹자며 꼬시고 내려왔다. 내가 천천히 가니 이런다. "아빠, 늦게 가면 아이스크림 다 팔릴지 모르니까 빨리 가요."하는데 어이가 없다. 하하하하하.
힘겹게 산을 오르고 내려와서 먹는 아이스크림 맛이 꿀맛이다. 한 입 달라고 하니 숟가락 끝에 살짝 떠서 준다. 하하하하하. 내려오다가 돌담위를 걷다 넘어진 아들내미 무릎에 피가 나서 한참이나 엉엉 울었다.
힘들어서 그런지 잠이 와서 그런지 엄청 떼를 쓴다. 이 분위기에 식당을 가면 큰일 나겠다 싶어 바로 차를 타고 집으로 간다. 결국은 3시간 차로 왕복한 성산보다 집 근처 '칠십리 시공원'에서 더 재미있게 놀았다. 아내와 난 점심도 제대로 못 먹고 배를 쫄쫄 굶어 가면서 말이다.
"결국, 예정대로 점심을 먹었어야 했는데!" 아내가 저녁에 한마디 한다. 맞다. 배 고픈 게 컸다. 아이들도 짜파게티에 미니 탕수육 그리고 김치만 있는데 밥 더 달라고 그런다. 이번 여행의 교훈은 '배가 좀 덜 고프더라도 예정대로 밥 먹고 여행하자! 아이들 놀 수 있는 집 근처로 가자'다. 하하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