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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도쌤 Apr 26. 2022

"엉또폭포야 안녕~"

제주살이 1년

아직도 폭포의 여운이 가시지 않는다. 그 세찬 비속에서 그 무지막지하게 떨어지는 물줄기들을. 아무리 사진을 찍어서 보고 영상을 찍어서 봐도 직접 두 눈으로 두 귀로 듣는 것엔 십 분의 일도 못 미친다. "여보 그냥 폭포 가만히 좀 보자!" 아내가 그런다. 그 말에 아내랑 나 1분 정도 아무 생각 없이 폭포 멍을 때렸다. 우렁차게 떨어지는 물줄기를 보고 또 보고 눈에 넣었다. 이렇게 비가 세차게 내리는 날엔 '엉또폭포'가 저절로 떠오를 것 같다. 그것 하나만으로 오늘 좋은 추억이 되었다.



영화를 보고 나오니 비가 비가 끝도 없이 내린다.

 '투두두드득 투두드드득...'

잠시 올레길 산책하고 가려다 세찬 비 때문에 바로 집으로 가기로 변경한다. 갈수록 빗방울이 더 세게 앞유리를 강타한다. 와이퍼가 힘차게 빗방울을 닦아내 보지만 힘에 부친다. 그렇게 집에 도착하기 5분 전, 갑자기 아내가 이런다.


"엉또폭포 보러 안 갈래?"


'엉또폭포라? 생각도 못했는데' 아내 말에 살짝 혹했다. 이 정도 비에 폭포가 보일지 말지 한동안 이야기를 나눴다. 집에서 10분이면 되는 거리라 일단 가 보고 이번에도 실패하면 진짜 여름에 폭우가 내릴 때 가보면 되지 않겠느냐고 아내와 합의를 봤다. 아내가 네비에 '엉또폭포'를 찍자마자 "지금 17대 가고 있네!" 그런다. 이 비에 그렇게 많은 차가 간다고, 그래 한 번 가보자, 며 액셀을 세게 밟았다. 도로 위 고인 비들이 양갈래로 세차게 흩어지고 흩어.



도착 5분 전, 길이 산길로 안내한다. 비는 더 세게 내리붓는다. 이러다 진짜 산사태가 나지 않을까 살짝 걱정이 된다. 순식간에 내린 비 때문에 도로는 물바다다. 맞은편에서 오는 차를 보니 차가 삼분의 1 정도는 진흙탕 물속에 잠겨서 물살을 쏴 가르며 온다. '내 차야 미안하다!'며 나도 그 흙탕 물속으로 들어간다. 이겨냈다. 안 빠지고 살아남았다. 그런데 진흙탕 고인 물이 또 나온다. 이번엔 좀 전보다 더 깊다.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천천히 가 본다. 생각보다 잘 이겨냈다. 내 차가 고맙고 또 고맙다.


그렇게 두 번의 험난한 흙탕물을 지나 '엉또폭포' 주차장에 도착했다. 비가 비가 좀 전보다 더 세게 퍼붓는다. 트렁크에서 왕산을 펼친다. 이 왕산이 이렇게 고마울 수가 또 없다. 비바람을 다 막아준다. 그런데 미친 듯이 쏟아지는 빗물에는 장사가 없다. 신발이 금세 젖었다. 아내의 장화가 또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다리를 건너가니 여긴 뭐 자동차 주자장을 방불케 한다. 차가 차가 도로 양옆에 줄을 서 있다. 게다가 여기 몇 날 며칠을 벼르고 온 사람처럼 다들 우비 착용에 만발의 준비를 다했다. 이 폭우에 간이 상점을 내서 우비와 우산과 번데기를 파는 사람들을 보고 혀를 내둘렀다. 우리 한국인 대단하다. 대단해!!!


차들과 간이상점 by도도쌤


멀리서 폭포가 보인다. 물 한 방울 떨어지는 것도 못 보고 아쉬워하며 되돌아선 게 엊그제 같은데 저 멀리서 폭포가 그림처럼 내 눈에 들어온다. 이번에는 진짜 폭포다. 저 멀서 굉음을 내며 사정없이 떨어지고 있다. 발길이 바빠진다. 아내와 나 아무 말 없이 폭포로 질주한다. 아래서 보는 것도 대단해 사정없이 찰칵찰칵 거린다. 그렇게 높은 계단도 하나도 안 높다. 무릎도 하나도 안 아프다. 성큼성큼 빠르게 계단을 올라가는 나 지금까지 무릎 아파 못 걷는다는 건 다 거짓말이었다.

아래에서 본 엉또폭포 by도도쌤


계단은 총 2층 3층 두 코스로 나뉘어 폭포를 볼 수 있게 되어있다. 2층엔 이미 사람들로 북새통이다. 사진을 찍는 사람, 영상을 촬영하는 사람들이 한데 뒤섞여 이 순간의 장엄함을 카메라로 담고 있다. 너무 사람들이 많아 한 층 더 올라 3층으로 올라왔다. 아내 이미 올라가서 영상을 찍고 있다. 다행히 이곳은 2층보다 사람들이 덜 하다.  세차게 쏟아지는 빗줄기 속에 사정없이 떨어지는 폭포의 물줄기가 두 눈과 두 귀를 사정없이 매료시킨다. 사진을 찍고 또 찍고 또 찍는다. 영상도 찍도 또 찍고 또 찍는다. 그리고 아내와 나 한동안 아무 생각 없이 폭포 멍을 때린다.

엉또폭포1 by도도쌤
엉또폭포2 by도도쌤


한 5분 지났사람들이 이곳 3층도 점령해버렸다. 핑크색 노란색 우비를 입은 사람들이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모습으로 브이 하며 엉또폭포와의 추억을 남긴다. 그들을 보고 폭포도 보며 흐뭇한 미소를 보내며 엉또폭포와 이별을 맞이한다.




폭포를 본 감흥을 잊지 못한 채 주차장으로 내려왔는데 이건 뭐 아까보다 차들이 더 많다. 흙탕물 있는 곳으로 안 가고 그냥 앞으로 가려다 오고 가는 차들에 막혀 나도 차 속에서 아무것도 못했다. 뒤로 겨우겨우 백을 해서 뒤돌아서다 다른 차를 몇 센티 남겨두고 멈췄다. 자칫 잘못했다면  차사고가 났을지도 모른다. 그 생각을 하니 사고가 났으면 이 폭우 속에 뒤섞인 차량 속에서 얼마나 힘들었을까, 었다. 사고가 안 나서 천만다행이었다.


돌아가는 길, 그 흙탕물을 두 번이나 무사히 건너자 아내와 나 둘이서 하이파이브를 날렸다. 정말 이 퍼붓는 날씨 속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엉또폭포를 찾는다니 상상도 못 했다. 아무튼 폭포를 보고 왔다. 두 번 다시는 이 빗속을 뚫고 안 가련다. 딱 한 번이면 족하다. 이 빗속에서 너를 만나 너무 반가웠고, 흙탕물을 4번이나 이겨내 준 내 차가 너무 고마웠다.


엉또폭포야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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