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폭포의 여운이 가시지 않는다. 그 세찬 비속에서 그 무지막지하게 떨어지는 물줄기들을. 아무리 사진을 찍어서 보고 영상을 찍어서 봐도 직접 두 눈으로 두 귀로 듣는 것엔 십 분의 일도 못 미친다. "여보 그냥 폭포 가만히 좀 보자!" 아내가 그런다. 그 말에 아내랑 나 1분 정도 아무 생각 없이 폭포 멍을 때렸다. 우렁차게 떨어지는 물줄기를 보고 또 보고 눈에 넣었다. 이렇게 비가 세차게 내리는 날엔 '엉또폭포'가 저절로 떠오를 것 같다. 그것 하나만으로 오늘 좋은 추억이 되었다.
영화를 보고 나오니 비가 비가 끝도 없이 내린다.
'투두두드득 투두드드득...'
잠시 올레길 산책하고 가려다 세찬 비 때문에 바로 집으로 가기로 변경한다. 갈수록 빗방울이 더 세게 앞유리를 강타한다. 와이퍼가 힘차게 빗방울을 닦아내 보지만 힘에 부친다. 그렇게 집에 도착하기 5분 전, 갑자기 아내가 이런다.
"엉또폭포 보러 안 갈래?"
'엉또폭포라? 생각도 못했는데' 아내 말에 살짝 혹했다. 이 정도 비에 폭포가 보일지 말지 한동안 이야기를 나눴다. 집에서 10분이면 되는 거리라 일단 가 보고 이번에도 실패하면 진짜 여름에 폭우가 내릴 때 가보면 되지 않겠느냐고 아내와 합의를 봤다. 아내가 네비에 '엉또폭포'를 찍자마자 "지금 17대 가고 있네!" 그런다. 이 비에 그렇게 많은 차가 간다고, 그래 한 번 가보자, 며 액셀을 세게 밟았다. 도로 위 고인 비들이 양갈래로 세차게 흩어지고 흩어졌다.
도착 5분 전, 길이 산길로 안내한다. 비는 더 세게 내리붓는다. 이러다 진짜 산사태가 나지 않을까 살짝 걱정이 된다. 순식간에 내린 비 때문에 도로는 물바다다. 맞은편에서 오는 차를 보니 차가 삼분의 1 정도는 진흙탕 물속에 잠겨서 물살을 쏴 가르며 온다. '내 차야 미안하다!'며 나도 그 흙탕 물속으로 들어간다. 이겨냈다. 안 빠지고 살아남았다. 그런데 진흙탕 고인 물이 또 나온다. 이번엔 좀 전보다 더 깊다.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천천히 가 본다. 생각보다 잘 이겨냈다. 내 차가 고맙고 또 고맙다.
그렇게 두 번의 험난한 흙탕물을 지나 '엉또폭포' 주차장에 도착했다. 비가 비가 좀 전보다 더 세게 퍼붓는다. 트렁크에서 왕산을 펼친다. 이 왕산이 이렇게 고마울 수가 또 없다. 비바람을 다 막아준다. 그런데 미친 듯이 쏟아지는 빗물에는 장사가 없다. 신발이 금세 젖었다. 아내의 장화가 또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다리를 건너가니 여긴 뭐 자동차 주자장을 방불케 한다. 차가 차가 도로 양옆에 줄을 서 있다. 게다가 여기 몇 날 며칠을 벼르고 온 사람처럼 다들 우비 착용에 만발의 준비를 다했다. 이 폭우에 간이 상점을 내서 우비와 우산과 번데기를 파는 사람들을 보고 혀를 내둘렀다. 우리 한국인 대단하다. 대단해!!!
차들과 간이상점 by도도쌤
멀리서 폭포가 보인다. 물 한 방울 떨어지는 것도 못 보고 아쉬워하며 되돌아선 게 엊그제 같은데 저 멀리서 폭포가 그림처럼 내 눈에 들어온다. 이번에는 진짜 폭포다. 저 멀리서 굉음을 내며 사정없이 떨어지고 있다. 발길이 바빠진다. 아내와 나 아무 말 없이 폭포로 질주한다. 아래서 보는 것도 대단해 사정없이 찰칵찰칵 거린다. 그렇게 높은 계단도 하나도 안 높다. 무릎도 하나도 안 아프다. 성큼성큼 빠르게 계단을 올라가는 나 지금까지 무릎 아파 못 걷는다는 건 다 거짓말이었다.
아래에서 본 엉또폭포 by도도쌤
계단은 총 2층 3층 두 코스로 나뉘어 폭포를 볼 수 있게 되어있다. 2층엔 이미 사람들로 북새통이다. 사진을 찍는 사람, 영상을 촬영하는 사람들이 한데 뒤섞여 이 순간의 장엄함을 카메라로 담고 있다. 너무 사람들이 많아 한 층 더 올라 3층으로 올라왔다. 아내 이미 올라가서 영상을 찍고 있다. 다행히 이곳은 2층보다 사람들이 덜 하다. 세차게 쏟아지는 빗줄기 속에 사정없이 떨어지는 폭포의 물줄기가 두 눈과 두 귀를 사정없이 매료시킨다. 사진을 찍고 또 찍고 또 찍는다. 영상도 찍도 또 찍고 또 찍는다. 그리고 아내와 나 한동안 아무 생각 없이 폭포 멍을 때린다.
엉또폭포1 by도도쌤
엉또폭포2 by도도쌤
한 5분이 지났나 사람들이 이곳 3층도 점령해버렸다. 핑크색 노란색 우비를 입은 사람들이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모습으로 브이 하며 엉또폭포와의 추억을 남긴다. 그들을 보고 폭포도 보며 흐뭇한 미소를 보내며 엉또폭포와 이별을 맞이한다.
폭포를 본 감흥을 잊지 못한 채 주차장으로 내려왔는데 이건 뭐 아까보다 차들이 더 많다. 흙탕물 있는 곳으로 안 가고 그냥 앞으로 가려다 오고 가는 차들에 막혀 나도 차 속에서 아무것도 못했다. 뒤로 겨우겨우 백을 해서 뒤돌아서다 다른 차를 몇 센티 남겨두고 멈췄다. 자칫 잘못했다면 차사고가 났을지도 모른다. 그 생각을 하니 사고가 났으면 이 폭우 속에 뒤섞인 차량 속에서 얼마나 힘들었을까, 싶었다. 사고가 안 나서 천만다행이었다.
돌아가는 길, 그 흙탕물을 두 번이나 무사히 건너자 아내와 나 둘이서 하이파이브를 날렸다. 정말 이 퍼붓는 날씨 속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엉또폭포를 찾는다니 상상도 못 했다. 아무튼 폭포를 보고 왔다. 두 번 다시는 이 빗속을 뚫고 안 가련다. 딱 한 번이면 족하다. 이 빗속에서 너를 만나 너무 반가웠고, 흙탕물을 4번이나 이겨내 준 내 차가 너무 고마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