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1년 살이하러 온 나에겐 제주도는 모든 곳이 다 구경거리고 관광지다. 집 앞 골목골목도 신기하고 심지어 영화관까지 다 나에겐 여행 장소가 된다. 제주도에 호우 주위보가 내린 오늘, 아내와 나 모처럼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기로 했다. 제주시까지 갈 필요 없이 서귀포에도 '롯데시네마 서귀포'점이 제주 월드컵경기장 안에 있어 쉽게 영화를 보러 갈 수 있다.
영화관 입구 주차장 by 도도쌤
차를 주차하는데 주차장이 한산해 참 좋다. 비 오는 날 별다방에서 커피 먹을 생각에 우리 아내 마냥 기분이 좋다. 좀 걸어가다 횡단보도를 건너 왼쪽 코너를 돌려는 찰나, 아내와 나 동시에 "빵 냄새 진짜 좋다!"며 빵 냄새나는 쪽으로 눈길을 획 돌렸다. 빵을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데 희한하게 빵 냄새가 여기 오라며 사정없이 손짓을 하고 있었다. 진짜 거짓말 하나도 안 보태고 솔솔 나는 구수한 빵 냄새를 따라갔더니 이미 아내와 나 가게 안에 들어가 있었다.
SISTER FIELD BAKERY 빵집 안에 빵들 by도도쌤
빵 살 생각이 하나도 없었는데 아내 벌써 '버터 스콘' 하나 달라며 주문을 마쳤다. 나도 뭘 고르지, 하며 찾아보는데 아내가 하나 추천해준다. 처음 보는 빵인데 이름이 '고메 버터 치아바타'라고 한다. 뭣이 빵 이름이 이렇게 길고 어렵냐? 난 그냥 크림단팥빵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다. 하하하하하. 맛있을 거란 기대로 룰루랄라 거리며 별다방 2층에 올라왔다.
비 오는 평일 오전인데 사람이 꽤 있다. 아내 말로는 이 정도는 없는 편에 속하는 거란다. 아무튼 별다방 이곳은 한국 어디를 가도 사람이 꾸준히 많다. 커피를 안 먹는 나에겐 인류 최대의 미스터리가 아닐 수 없다. 하하하하. 아내는 커피 한잔을 시키고 내겐 제주에서만 먹을 수 있는 음료 몇 개를 추천한다. 쑥머시기 차를 먹으려다 아내가 추천하는 '제주 한라봉 모히또 블랜디드'라는 걸 시켰다. 이것도 뭣이 이렇게 이름이 긴지. '모히또'라고 하니 영화 '내부자들'에서 이병헌이 말한 모히또가 생각났다. 하하하
고메버터 치아바타와 버터 스콘 by도도쌤
차가 오기 전에 빵가게에서 산 '고메 버터 치아바타'를 살짝 떼서 아내와 나 한 입 먹었는데 달콤하니 쫀득하니 부드럽다. '오!' 맛있다. 혹시나 몰라 찍어뒀던 상호명을 그제야 확인하니 빵 가게 이름도 어렵다. 심지어 영어다. 'SISTER FIELD BAKERY'다. '자매들판빵집?' '언니지역빵집?' 한글로 무슨 뜻일까 한참을 생각해봐도 제대로 된 해석을 못 하겠다. 빵이 맛있으면 됐지 하며 너무 맛있어서 아내 검색을 해보니 유명한 빵집이란다. 이건 뭐 빵 냄새 맡아 들어간 곳이 또 핫한 곳이란다. 심지어 줄 서서 먹는 곳이란다. 아내랑 나 제대로 빵집 하나 알았다.
한라봉 모히또랑 커피 by 도도쌤
음료도 도착했다. 그 긴 이름 한라봉 머시기 머시기(=한라봉 모히또). 한 입 살짝 마셨는데 한라봉 맛에 상쾌한 느낌, 박하향이 입안에 싹 퍼진다. 아내도 맛보더니 "음 맛있네" 그런다. 한라봉 모히또랑 고메 버터 치아바타 조합 정말 최강 조합이었다.
아내가 산 '버터 스콘'도 한 입 떼어먹었는데 음 고소하고 부드러우니 맛있다. 스콘 먹을 때 쫌 텁텁하여 보통 딸기잼이 살짝 생각나는데 고소하니 하나도 안 텁텁하다. 손이 자꾸 가는 깔끔한 맛이다. 모히또 한잔에 빵 한 조각, 항상 국밥과 밥 파인 나에게 어울리지는 않지만, 오 이렇게 먹는 것도 입이 꽤 즐겁네, 하고 느낀 뜻밖의 시간이었다. 달콤한 차와 빵을 한 입 먹으니 교단일기 수정도 기분 좋게 진도가 술술 나간다.
금세 영화할 시간이 다 되어 얼른 정리하고 영화관으로 다시 돌아왔다. 오늘 볼 영화는 '공기 살인'이다. 가습기 살균제 실화를 바탕으로 어떻게 영화를 만들었을지 기대가 된다. 6관 영화관 안으로 들어왔는데 완전 아담 사이즈다. 아내가 고른 두 칸짜리 맨 뒤 자석이 너무 마음에 든다.
롯데시네마 서귀포 영화관 by도도쌤
윤경호의 악역이 그렇게 싫어 '우쉬 우쉬'하고 봤더니 반전이 있었다. 스포는 금지다. 하하하하. 아무튼 가습기 살균제로 인해 약 2만 명의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니 그것도 아이들과 여성들이. 열이 받고 열이 받고 열이 또 받았다. 그걸 만든 회사와 그걸 승인해준 당국들. 정말 어처구니가 없고 또 없었다. 아내 정말 오랜만에 팝콘을 먹고 너무 기분이 좋았다고 한다. 대신 치즈 팝콘과 어니언 팝콘이 없어 충격이었다고 그런다. 하하하하.
비 오는 날 커피숍에서 차와 빵도 맛있게 먹고, 영화관에서 모처럼 영화도 봤더니 여기 서귀포가 더 좋아지기 시작한다. 마트에 영화관에 그리고 조금만 벗어나면 아름다운 오름과 바다에 모자랄 게 하나도 없는 서귀포 제주다. 물론 물가가 비싸긴 하지만 말이다.
"우리 빵 좀 더 사갈까? 너무 맛있지 않더나?"
집으로 가는 차 안, 빵을 안 좋아하는 내 입에서 나온 말이다. 영화도 좋았고 차도 좋았지만 오늘은 빵이 제일 맛있었다. sister field bakery 이 집은 외워야겠다. 5점 만점에 5점이다. 하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