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와 나 바다 저 편에 있는 특이한 모양의 섬들을 보고는 한동안 정신을 못 차렸다. 그동안 올레길을 걸으며 수없이 많은 멋진 풍경을 봐 왔지만 이런 이국적인 풍경은 생전 처음이다. 제주도인데 제주도 같지 않은 정말 외국 같은 풍경이 눈앞에 떡하니 펼쳐 있다. 어안이 벙벙하다. 나를 홀리게 만든 그 풍경, 그 중심에 차귀도가 두둥 서 있다.
왼쪽이 차귀도의 본 섬 오늘 여행할 '죽도'다. 그리고 오른쪽이 '와도'다. 두 섬을 합쳐 차귀도라 한다.(물론 중간 중간 이름 모를 섬들도 많다.) by도도쌤
어느 날 이웃 블로그님 '차귀도' 포스팅을 우연히 보게 되었다. '이 무인도를 배 타고 가서 구경할 수 있다고?' 가슴이 두근두근거렸다. 블로그 속 사진도 몇 장 봤는데 경치가 끝내줬다. 아내도 좋다며 바로 예매를 했다. (1년간 티켓이며 가고 싶은 날 며칠 전쯤에 꼭 전화를 해서 날짜와 시간을 확정 지어야 한다.)
1시간 걸려 '한경면 노을 해안로 1163'에 도착했다. 발권을 하니 20분 정도 시간이 남는다. 차귀도 배 타고 구경할 생각에 가슴이 벅찬다. 오징어 냄새가 어디서 솔솔 나는데 그냥 지나칠 수 없다. 5,000원 주고 한 마리 사서는 길게 찢어 마요네즈 듬뿍 한입 찍어 먹었는데 맛이 기가 막히다. 야들야들 고소 고소한 게 손이 손이 계속 간다. 아내 가격이비싸다고 놀라더니 한입 맛보고는 계속 먹는다. 벤치에 앉아 맥주랑 오징어 먹는 아줌마를 그렇게 부러워하며 쳐다보는 아내다. 하하하하.
반건조오징어 맛이 촉촉하니 부드럽다. 여행 맛이 더 살아난다. by도도쌤
드디어 10시 30분. 배에 올라탄다. 조금 늦게 타서 그런지 2층으로 올라갔는데 딱 내 앞에서 앉을자리가 사라졌다. 하하하하하. 괜찮다. 우리 커플이 여기에서 제일 젊으니 서도 괜찮다. 출발도 안 했는데 차가운 바람 때문에 춥다. 가방 안에 있는 잠바를 꺼내 입으니 한결 낫다. 배가 출발하는데 여기 파도가 세 위아래로 엄청 흔들린다. 멋진 사진 좀 찍으려다 바닷물에 빠지는 줄 알았다.
"저기 돌고래다! 돌고래다!"
돌고래를 찍는 다고 찍었는데 아쉽다 돌고래가 안 보인다. by도도쌤
누군가의 순간 외침에 바라본 바다. 회색빛 매끈한 피부를 가진 돌고래 두 마리가 파도를 가로지르며 주둥이와 등지러니 그리고 꼬리 순으로 반원을 보이며 파도를 고개 넘듯이 지나쳐간다. 아내 신나서 펄쩍펄쩍 뛰며 돌고래를 쳐다본다. 세상에나 살아있는 돌고래를 바다 한가운데서 만날 줄이야 꿈에도 생각 못했다. 아직도 못 찾은 사람들이 "어디 어디"하며 돌고래 찾는다고 난리다. 바로 눈앞에서 두 번, 저 멀리서 두 번 돌고래가 바다 위로 헤엄치는 걸 총 4번 봤다. 세상에 이런 행운이 다 어디 있는가? 아무튼 깜짝 돌고래쇼에 여기 있는 사람들 다들 한껏 기분이 좋아졌다.
사람들이 내리는 장면. 물이 물이 그렇게 맑을 수가 없다. by도도쌤
출발한 지 10분도 채 안 되어 여기 차귀도 메인 섬인 '죽도'에 접안을 했다. 1시간 정도 섬을 둘러볼 시간을 준다. 다들 엄청 설레는 표정이다. 발걸음도 아주 가볍다. 계단을 오르자마자 오래전 집터가 하나 보이고 곧 저 멀리 하얀 등대가 하나 보인다. 사람의 손떼가 하나도 안 묻은 이곳, 자연 그 자체가 주는 아름다움 속에 풍덩 빠져들기 시작한다. 보석들이 곳곳에 박혀있다. 그 보석들을 마주할 때마다 사람들의 손과 사진이 바빠지기 시작한다. 하나 둘 셋! 모두들 보석들과 한없이 기쁜 표정으로 인생의 최고 기쁜 순간을 담는다.
차귀도 본 섬에 올라서자마자 풍경에 반해 사진을 찍는 사람들 by도도쌤
해안길에 접어들었는데 여기서 보는 풍경이 압권이다. 여러 바위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모습이 꼭 독도에서 본 풍경이랑 흡사하다. 아니 독도 풍경보다 훨씬 더 아기자기하고 더 멋지다. 여기서 봐도 멋지고, 또 조금 더 가다 뒤돌아 봐도 멋지고, 찍고 또 봐도 멋지고, 뭐 지루할 틈이 하나도 없다. 우리 아내는 내가 사진 찍는다고 정신없으니 시간 없다며 늦는다고 빨리 가자고 그런다. 지금 생각해보니 정말 진짜 10분 동안 이 풍경에 취해 정신을 살짝 잃었던 것 같다.
특이하게 생긴 섬들의 조합에 여기가 제주도인지 외국인지 구분이 안 되었다. by도도쌤
등대에 오르니 바람이 바람이 내 몸을 날려버릴 기세다. 모자 끈을 턱밑으로 바짝 쫀다. 20분밖에 안 남았다. 풍경에 취해 초반에 너무 시간을 보냈다. 겨우 정상을 찍고 사진을 부랴부랴 찍고 배로 돌아왔다. 배를 타고 항구로 가는 길, 세상에서 제일 부러운 여행을 하고 온 사람처럼 마음 한편이 부자가 된 듯하다. 차귀도야 다음에 꼭 한 번 더 만나자꾸나!
정상에서의 풍경과 배를 타고 가면서. by도도쌤
내리자마자 배가 고픈 아내와 나, 미리 알아본 '아리아 해물라면, 김밥'집으로 바로 향한다. 내가 화장실 잠시 다녀온 사이 아내 15,000원짜리 해물라면 하나와 6,000원짜리 아리아 김밥 2개를 시켰다. 속으로 '헉'했다. 가격이 장난 아니다. 부산에 살 때 시장 김밥이 달랑 1,000원이었는데 6배가 비싼 김밥이다. 부산 살았다면 절대 절대 먹지 않았을 가격이다. 물론 라면도 마찬가지다. 5,000원도 비싼데 15,000원이라니 제주도니까 여행 왔으니까 하며 먹어본다.
김밥부터 나왔는데 비주얼이 장난 아니다. 형형색색 보기만 해도 색이 화려하다. 맛을 봤는데 진짜 '상큼하다.' 파프리카가 이렇게 김밥이랑 잘 어울릴지 상상도 못 했다. 깔끔하고 상큼한 맛에 계속 젓가락이 간다. 고추냉이 간장에 한 번씩 찍어먹는 김밥 맛이 일품이다. 6,000원 아깝다고 생각했는데 하나도 안 아까운 순간이었다. 그리고, 드디어 나온 해물라면. 가파도에서 한 번, 올레길 걷다 문개 항아리에서 한 번 먹어봤는데 여기가 해물이 제일 많다. 가리비, 오징어, 새우, 게, 소라가 다 들어있다. 하나씩 꺼내 먹는 맛이 재밌다. 해물보다 국물 맛이 제일 좋다. 국물 두 번, 김밥 하나 이렇게 먹으니 금방 다 없어졌다. 평점은 5점 만점에 4.5점 준다.
아리아김밥과 해물라면 by도도쌤
배가 한없이 부르다. 그냥 집으로 가기에 아쉽다. 당산봉과 수월봉을 사이에 두고 고민하다 걷기에 수월한 수월봉으로 향한다. 여기 안 왔으면 어찌할 뻔했는지 모르겠다. 날씨가 안 좋아 이 정도지 날씨가 좋았다면 제주도에서 원탑 풍경이었을 거다. 차귀도와 당산봉 그리고 해안도로와 바다가 예술이다. 진짜 그림이다. 눈으로 보면 그렇게 풍덩 빠지고 싶은데 사진을 찍으니 천만분의 1도 마음에 안 든다. 여긴 무조건 와야 한다.
수월봉 정상에서의 풍경 by도도쌤
그리고 수월봉 아래에 깎아지른 절벽인 엉앙길. 여기도 세상에 입이 안 다물어질 정도였다. 아내 너무 좋아서 엄마한테 영상통화까지 하며 이곳의 아름다움을 소개한다.
자연 그대로가 만든 아름다움에 그저 보고만 있어도 배가 부를 지경이었다. 오늘 못 간 길은 다음에 올레길 12코스 걸을 때 걷자고 고이고이 남겨 놓고 아내와 나 뒤돌아 왔다.
지질 트레일 코스 by도도쌤
제주도 두 달 동안 있으면서 개인적으로 오늘이 최고로 좋았던 날이다. 제주도에 이런 이색적인 외국 풍경이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차귀도'는 반드시 제주에 왔을 때 1순위로 꼭 가 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