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의 제주, '영실 탐방로'를 완주하다.

제주살이 1년

by 도도쌤
탐방로 입구(10:00)- 영실기암(10:45)-병풍바위(10:50)-휴식(11:00)-구상나무숲길(11:25)-백록담, 철쭉 전망(11:40)-전망대(12:00)-노루샘(12:10)-윗세오름대피소(12:20)-점심(12:30)-하산(13:50)
-영실 탐방로, 시간대별 정리 by도도쌤-

영실탐방로 by도도쌤

한라산 꼭대기 백록담은 아직 체력이 못 되어 감히 도전을 못 하겠고 그나마 한라산 근처 쉬운 코스를 알아보니 영실코스가 나왔다. 별표가 두 개 밖에 안 되는 쉬운 코스라고 그런다. 아내 보고 영실코스 어떠냐고 그러니 내 걱정은 하지 말고 본인 무릎 걱정만 하면 된다고 한다. 하하하하.


<희망 서귀포> 글에서 읽었는데 4~5월 봄, 이 시기에 영실코스를 가면 철쭉에 멋진 풍경을 볼 수 있다 한다. 그 부푼 기대로 아이들 유치원 등원시키자마자 중앙로터리 근처인 '한라네 김밥'에서 김밥 두 줄을 사고 바로 영실매표소로 향했다.


차로 올라가는 길이 상당히 꼬불꼬불하다. 제법 높이 올라가니 귀도 멍하다. 1 주차장에 주차를 하려니 아내가 여기 주차하지 말고 차로 끝까지 올라가야 한다고 그런다. 여기 주차를 했다간 걸어서 엄청 올라갈 뻔했다. 드디어 차가 갈 수 없는 곳까지 올라왔다. 1 주차장에 차들이 없는 이유가 있었다. 여기 올라오니 여기 차들이 싹 다 있다. 하하하하.


주차장이 차로 가득하다. by도도쌤


스틱을 꺼내고 모자를 쓰고 올라갈 채비를 마쳤다. 영실 탐방로 입구에 '영실 해발 1280m'라는 비석이 보인다. 올라가지도 않았는데 힘겹게 걸어서 여기 왔다는 느낌으로 사진을 하나 찍는다. 하하하하.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미니 대나무 조릿대가 쫙 펼쳐져 있고 소나무와 여러 나무들이 눈을 시원하게 한다. 길도 너무 좋아서 아내에게 "여기 길 어때?"라고 물으니 아내 쿨하게 "동네 뒷산 같은데."라고 한다. 그만큼 여기 초입, 걷기에 참 좋다. 숨을 크게 들이 마시니 공기가 제법 차면서 상쾌하다. 물소리는 졸졸졸졸졸 흐르고, 제주휘파람새는 나를 따라다니며 휘이이익 휘이이이익 휘파람을 불어준다. 눈이 시원하고 귀까지 상쾌하지는 영실 탐방로 초입이다.

영실탐방로 입구 by도도쌤


그런데 우리 앞쪽으로 걷던 가족들의 대화가 너무 재미있다.

"이거 엄마가 대나무래!"

"이거 대나무 아닌 것 같은데!"

"....."

조릿대 가지고 무슨 나무인지 열심히 대화를 하고 계신다. 내가 조릿대라고 말해주고 싶었는데 타이밍을 놓쳤다. 나도 처음에 이 정체불명의 대나무같이 생긴 미니 대나무가 뭔지 정말 궁금하긴 했었다. 귀여운 조릿대 너 러 사람 궁금하게 만든다. 하하하하.

제주, 조릿대 by도도쌤


아주 편하게 걷던 길이 갑자기 수직 70도 경사 계단길로 바뀌었다. 헉! 방심했다.

"점점 가팔라지기 시작하는데... 헉헉헉.. 힘든데.. 약간 여기 성산 올라가는 것 같은데 여보!"

"다행히 스틱이 있어서 정말 좋네요. 의지할 데가 있네!"

스틱이 있어 의지가 된다는 아내의 말에 살면서 힘들면 서로 의지가 되는 그런 스틱 같은 존재가 부부가 아닌가 순간 생각이 들었다.


올라가는 급 경사길. 정말 힘들었다. by도도쌤


그 험난한 수직 계단을 올라오니 저 멀리 오른쪽으로 산등성이 위에 10센티 간격으로 암벽들이 쭉 늘어서 있다. 참 특이한 모습이었다. 이걸 '영실 기암'이라고 부르는 것 같았다. 그리고 영실기암 설명을 하는 안내판 글을 읽으니 너무 재미있다. 저 멀리 보이는 바위 하나하나가 설문대할망의 아들이라고 생각하니 보면 볼수록 신기했다. 그리고 이틀 전에 간 차귀도가 바로 막내가 변한 바위라니 차귀도와 오늘 영실코스가 자연스레 연결되는 것 같아 너무 신기했다.

병풍바위
영실기암
병풍바위와 영실기암 by도도쌤
설문대할망에게 오백 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이들에게 죽을 먹이기 위해 큰 가마솥에 죽을 끓이다가 실수로 설문대할망이 솥에 빠져 죽었다. 외출 후, 돌아온 아들들은 여느 때보다 맛있게 죽을 먹었다. 마지막으로 귀가한 막내가 죽을 뜨다가 뼈다귀를 발견하고 어머니의 고기를 먹은 형들과 같이 살 수 없다 하여 차귀도에 가서 바위가 되어버렸고, 나머지 499명의 형제가 한라산으로 올라가 돌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전한다. 그래서 영실기암을 '오백장군' 또는 '오백나한'이라 불리게 되었다.
-영실기암 표지판 안내글-
풍경이 너무 멋지다. by도도쌤

"진짜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더 멋있다. 굳이 아래에서 찍을 필요가 없다."

그렇다. 병풍바위와 철쭉이 그렇게 멋져 아래에서 찍었는데 조금 더 올라가니 더 멋있다. 그리고 거기서 또 찍는다. 다리는 수없는 계단을 걸어서 힘이 드는데 조금만 눈을 돌리니 이 멋진 풍경에 피곤이 싹 가신다. 저 멀리 온갖 종류의 오름이 다 보이고 산방산, 마라도, 가파도까지 다 보인다.


"여보 올라오니 너무 좋다!"

"우와! 절경이다. 날씨도 너무 좋다. 진짜 멋지다. 우와~우와~"

감탄이 끊이지 않는다. 병풍바위 근처 구급약품이 있는 곳에서 한라봉을 먹으며 쉬는데 풍경이 예술이다. 같이 올라온 6살짜리 아이가 정말 대견스럽다. 우리 아들딸은 다리 아프다고 안 올라온다고 그러니, 6살 아이 할머니가 "살살 먹을 거로 유인해서 가면 돼!"라고 하는데 빵 터져 하하하하 웃었다.

올해 65살이라는 할머닌 제주도 2년 찬데 "살아보니 꿈꾼 대로 살아진다"라고 말씀해주신다. 삶이 별것 없고 꿈꾸는 대로 살라고 하셨다. 그 말이 너무 마음에 와닿아 기록까지 해 놓았다. 그러면서 최근에 갔다 온 '궷물오름'에서 시작한 '큰녹고메오름'을 추천해주시는데 조만간 꼭 가보리라 마음먹었다.


병풍바위를 오르니 드디어 오르막이 사라졌다. 마음이 엄청 가볍다. 구상나무 숲길로 들어서는데 길이 정말 편하다. 아내 길이 좋아졌다고 팔짝팔짝 뛰어간다. 고사된 구상나무들도 이렇게 아름다운 풍경이 될 수 있구나, 하며 기분 좋게 평지길을 가볍게 걸었다.

구상나무 숲길을 걷다. by도도쌤


그러다 어느 순간, 아내와 나 얼어붙었다. 저 멀리 한라산 꼭대기 백록담 있는 곳이 두둥 보였다. 기암 백록담과 분홍 철쭉의 환상 콤비네이션에 연신 찰칵찰칵거렸다. 오늘의 영실 탐방의 최고 하이라이트였다.


저 멀리 아래에서 보았을 땐 그냥 돌덩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이렇게 날씨 좋은 날 가까이서 보니 백록담을 품은 한라산 꼭대기 산이 예술이었다. 조그만 산 모양 조각이 수십 개가 모여 하나의 큰 산이 되어 있었다. 저걸 조각한 자연의 신비에 혀를 내둘렀다. 게다가 분홍색 철쭉이 있어서 그런지 한라산 꼭대기가 더 멋있고 아름답게 보였다.

말이 안 나오는 풍경. 5월 달력의 표지다. by도도쌤


평평한 데크길을 스틱 없이 걷는 이 길, 정말 날아가는 기분이다. 5월의 아직 차가운 바람이 땀을 살짝 식혀주며 이 아름다운 그림 속으로 룰루랄라 거리며 윗세오름까지 걸었다. 그런데 여기 윗세오름 대피소는 공사 중이라 살짝 아쉬웠다. 게다가 김밥 두 줄도 순식간에 입속으로 사라졌다. 아내 세 줄 사고 싶었는데 내가 두 줄 사라고 해서 뭔가 아쉬운 표정이었다. 다음엔 무조건 아내 말을 들어야겠다. 윗세오름 표지석에서 아내랑 사진도 찰칵 기념으로 남겼다.

'한라네 김밥' 한 줄이 모자라 아쉬었다. 다음엔 꼭 3줄이다. 하하하 by도도쌤

올라왔던 길을 다시 내려가는 길, 발걸음이 훨씬 가볍다. 김밥을 먹어서 힘이 났는지 아니면 여정이 끝나서 내려갈 일만 남았다는 마음인지 아무튼 마음이 아주 가볍다. 노루샘에서 사람들이 시원하게 나오는 물을 받는데 그 대화가 너무 웃겨 한참을 웃었다.


"이게 진짜 삼다수 아니야?"

"아니지 이게 더 좋지!"

"나 3000원 치 마셨어! 크하하하"

"하하하하"

"우리 물통에 있는 물 버리고 이 물로 담자!"

아내랑 나도 빈 물통에다 삼다수보다 더 좋은 진짜 한라산 백록담 물을 담았다. 벌컥벌컥 마시더니 아내

"캬~맛있네. 이게 진정한 삼다수네!"라고 그런다. 진짜 차갑고 시원한 진정한 삼다수를 마시고 싶거든 여기 노루 샘물을 꼭 마셔보기 바란다.

노루샘 샘물. 진짜 시원하고 맛있다. 일명 진정한 삼다수. by도도쌤


김밥에 진정한 삼다수를 마셔서 그런지 발걸음이 날아간다. 올라온 속도보다 세배는 빠르게 걷는다. 게다가 스틱이 있으니 내려가는 길이 훨씬 수월하다. 쉽게 내려가려고 이렇게 이렇게 힘든 스틱을 들고 오는 모양이다. 이렇게 스틱이 고마울 수가 없다.

영실탐방로 내려 가는 길. by도도쌤


거의 다 내려갔을 즘 우리보다 훨씬 나이 든 할머니께서 "구경 잘하고 왔냐?"라고 그러신다. 우린 윗세오름까지 걸었다고 하니 남벽분기점을 꼭 갔다 오라고 신신당부하신다. 조릿대가 쫙 펼쳐져 있는 너른 들판을 꼭 보고 와야 한다고 그런다. 아이들 하원 시간 때문에 남벽분기점은 못 갔는데 이렇게 추천해주시니 다음엔 꼭 가보리라 아내랑 약속했다.


아직도 백록담 산이 두둥 내 앞에 나타났을 그 순간을 잊을 수가 없다. 기암들이 그렇게 옹기종기 자리 잡아 있는 모양이라곤 상상도 못 했다. 게다가 분홍 철쭉을 드레스로 입었으니 가히 환상적이었다. 물론 병풍바위와 영실기암, 그리고 온갖 종류의 오름을 바라본 풍경도 잊을 수 없다.


계단이 수없이 많았지만 4시간 정도 여기 영실코스는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 별표 두 개라고 쉬운 코스라고 하는데 나한테는 별표 3개 이상이다. 하하하하. 지금 5월 영실 탐방로를 꼭 가보시길 바란다.

영실탐방로, 5월 강력추천한다. 너무 멋있다. by도도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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