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순간이었지만 강렬한 기억을 선물해 줬던 이곳, 분명 입구는 대한민국 제주도였는데 들어와 보니 외국의 유명 관광지에 온 착각을 불러일으키게 했던 이곳, 타임머신을 타고 몇 만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원시 그대로의 모습을 고스란히 보여줬던 이곳, 바로 '용머리 해안'이다.
'그런데 왜 그동안 난 형용할 수도 없이 아름다운 이 용머리 해안을 그저 그런 관광지의 하나라고만 생각하고 있었을까?'
산방산이 바로 코 앞에 있고, 하멜 선박이 있고, 바이킹이 있는 '용머리 해안', 워낙 유명해서 제주도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이곳을 나도 여느 관광객처럼 여기를 몇 번이나 왔었다. 분명 그때 용머리 해안을 둘러보며 '우와!' 하며 탄성을 질렀음에 틀림없다.
바이킹과 산방산 by도도쌤
그런데 너무 오래전 일(10년 20년)이라 기억이 희미하다 못해 사라져 버린 거다. 그래서 용머리 해안 하면 '뭐 좀 좋았지.', '찐 노랑 층층 바위들이 신기했지!' 뭐 이 정도 수준이었다. 게다가, 아주 최근(작년 9월)에는 아이들과 여길 왔다가 입구에서 비가 우르르 쏟아져 입구만 구경하고 나왔던 영향도 컸다.
아무튼, 너무 오래전 일이라 기억이 거의 사라졌고, 아이들 때문에 정신없이 입구에서 사진만 찍고 돌아오고, 그래서 그런지 여기 '용머리 해안'을 사람들이 많이 찾는 그냥 유명한 곳이라고만 판단했는지 모른다.
저 곡선을 보라. 과히 환상적이지 않는가? by도도쌤
그런데 오늘 용머리 해안의 진면목을 보고야 말았다. 파도 때문에 출입이 금지되었는데 갑자기 해제되는 순간에 여기를 방문하게 되는 행운을 맞게 되었다. 워낙 관광지라 그동안은 사람이 반, 경치가 반이었다면 오늘은 사람은 10도 안 되고, 경치가 90 이상이었다. 초입보다도 중반 아니 그 후반이 더 멋진 풍경이었던걸 어렴풋이 기억하고 있어서 사람들이 사진 찍고 있는 동안 먼저 후딱 걸어서 앞질러 갔던 게 컸었다.
"여기, 서 봐봐"
"아니, 여기 여기"
"여보 빨리빨리 서 봐! 사람 없을 때!"
용머리 해안 풍경을 처음 와 보는 아내, 여기 풍경에 정말 매료됐다. 사진 찍는 걸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데 폰을 아예 손에 들고서 정신없이 사진을 찍는다. 이 아름다운 풍경이 너무 아까운지 나 보고 여기 서 보라고 하고, 저기 서 보라고 하고 사정없이 부른다.
스티로품 박스에 해산물을 메고 가시는 할머니 by도도쌤
노란 바위에 한창 취해있는데 거기에 산방산까지 기겁을 했다. by도도쌤
용머리해안길을 걸으며 산방산을 마주하다 by도도쌤
그렇다. 먼저 사람들을 앞지르고 나니 우리 앞에 덩그러니 온전한 용머리 해안이 보인다. 자연 스스로가 빚어낸 그 자체가 예술 작품인 찐 노랑 바위들에 눈을 어디에다 둘지 모르겠다. 하나하나가 안 소중한 것들이 없다. 이 예술 작품을 내가 두 발로 밟아도 되는지 미안스럽기까지 하다. 사람들이 거의 없는 '용머리 해안' 그 자체가 주는 신비로움에 넋을 잃는다.
동그라미 자연 어항속 물고기을 한참 쳐다보다. by도도쌤
걷다가 우연히 보인 자연 동그라미 어항도 만난다.
"여보, 고기 엄청 많다. 저건 무슨 고기야?" 하며 물어보는 아내, 새끼 물고기는 모르겠고 좀 큰 물고기는 베도라치라고 알려준다. 베도라치들이 빼꼼히 고개를 들어 나를 쳐다보는데 요 녀석들도 사람들이 보고 싶었던 모양이다. 이 깨끗한 물속에 살아가는 물고기들을 바라보고 있으니 내 마음이 편안해진다. 이런 자연스러운 해수 어항을 한 번 꼭 가져보고 싶어서 한참이나 깨끗한 물속의 물고기들이 움직이는 걸 쳐다본다.
용머리해안과 산방산. 아주 그냥 죽여줘요^^ by도도쌤
뭐라고 설명이 안 되는 바위들의 아름다움 by도도쌤
너무 넋을 잃었나, 이 순간을 남기려고 같이 셀카 찍자고 하다가 아내 폰을 떨어트렸다. 그 순간이 아직도 슬로 버전으로 계속 잔상에 남는다. '툭 탁 탁' 그 둔탁한 소리 후에 액정이 깨진 폰, 폰이 떨어지는 그 순간을 수십 번이나 되돌린다. 그러면서 내가 잡는 상상까지 해 본다. 아이고, 아내 많이 속상했을 건데 애써 괜찮다고 그런다.
아내 폰 액정이 깨졌지만 무사히 용머리 해안 산책을 마쳤다. 아내가 찍은 사진을 보니 하나같이 예술이다. 그때의 아름다움에 흠뻑 빠졌던 내 모습들이 순간 되살아 난다. 용머리 해안의 진면목을 보고 싶다면 아침부터 서둘러 사람들이 없을 때 가능한 한 구경하라고 감히 추천드리고 싶다. 입구는 분명 대한민국 제주였는데 중후반부턴 외국 유명 관광지에 온 착각에 빠질 것이다. 아 맞다! 풍경에 너무 취해도 폰은 안 떨어지게 꼭 잡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