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달동네'라는 곳에 살았다. 슬레이트 지붕 아래 옹기종기 붙어있던 집들 뒤로 뒷산이 하나 있었는데 틈만 나면 친구들과 어울려 그곳으로 올라가 잠자리도 잡고, 숨바꼭질도 하고, 매미도 잡고 놀았다. 중간중간 무덤을 발견할 때면 "귀신 나온다"며 친구들이 소리쳐 무서워서 줄행랑을 치곤 했었다.
그 뒷산에 동네 친구들도 참 많이 살았지만, 곤충 친구들도 참 많이 살았었다. 온종일 곤충 친구들 잡느라 온 뒷산을 다 뒤집고 다녔고, 조그만 내 손에 그 조그만 것들이 살아서 움직이는 자체가 내겐 신기함 그 자체였다. (지금은 아쉽게도 그 뒷산이 싹 다 밀려 아파트가 들어서 더 이상 그 곤충들을 볼 수는 없다.)
그 곤충 친구들을 까마득히 잊고 산지 30년, 도시를 떠나 여기 제주에서 살게 되면서 그 친구들을 다시 보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환경오염에 다 사라지고 만 줄 알았는데 여기 청정 제주도에서 다시 만나서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먼저, 요 녀석이다.
바구미 by도도쌤
제주 온 지 20일 정도 됐을 즘, 감귤박물관 '월라봉 근린공원'에서 딸아이가 잡은 친구다. 보자마자 너무 반가워 뽀뽀해주고 싶을 정도였다. 몇십 년 만에 만난 친구처럼 너무 반가워 요리 쓰다듬고 조리 쓰다듬어 주었다. 아빠 이 곤충 뭐예요, 하고 딸이 물었는데 모른다고 했다.
사실, 어릴 적 그렇게 잡고 놀았던 친군데 이름도 모르고 놀았던 친구였다. 진짜 운 좋게 아들이 도서관에서 빌려온 곤충 백과사전에서 처음으로 알게 됐는데 이름이 '바구미'다. 바구니도 아니고 바구미라고 딸이 또 말장난을 쳤었다. 아무튼 다음에 만나면 꼭 너 이름을 이제 불러 줄게 '바구미' 잊지 않을 테다.
그리고 두 번째 녀석은 요놈이다.
방아벌레 by도도쌤
진짜 어릴 적 정말로 많이 가지고 놀았던 친구다. 지금 생각해 보니 좀 많이 괴롭힌 것 같다. 하하하. 요 친구는 뒤집으면 방아처럼 펄쩍 튀어오르는 게 신기해서 몇 번이나 뒤집어가지고 놀았는지 모른다. 또 몸통만 잡고 있으면 '딱' '딱' '딱' 소리를 내는 게 너무 재미있는데 마치 인사하는 것 같아서 우리가 "인사한다. 볼레?" 하면서 인사 벌레라고 막 장난쳤던 게 기억난다.
이 친구 이름도 아들이 가져온 곤충 대백과 사전에서 정확히 알게 되었는데 이름은 '방아벌레'라고 한다. 딸아이 손에 잡혀온 방아벌레를 눕혀서 점프하는 걸 보여주니 딸아이도 그렇게 신기해한다. 방아벌레야 여기서 보게 되어 무지 반가웠다.
끝으로, 만난 친구는 바로 요 친구다.
땅강아지 by도도쌤
이 친구는 주로 집근처에서 땅 파고 놀다가 만난 친군데 이름이 '땅강아지'다. 어릴 때도 강아지처럼 너무 귀여워서 요리 만지고 조리 만지고 가지고 놀았던 기억이 난다.
감귤박물관 놀이터에서 갑자기 아들이 "아빠, 땅강아지요!"라고 소리쳐서 다시 만나게 된 친구다. 설마 하고 아이들이 우르르 모여 있는 곳으로 갔는데 진짜 다시 땅강아지를 보게 될 줄이야. 모래흙으로 뒤덮여 꼬물꼬물 살려고 도망가려는데 아이들이 봐주질 않는다.
태어나서 처음 눈앞에서 본 '땅강아지'를 만지는 것도 무서워한다. 아이들은 독 있다며 문다며 겨우 만지다가 땅강아지가 움찔움찔 움직이니 아이들도 우 씨 우 씨한다. 하하하. 얼굴이 너무 다시 보고 싶어 두 가락으로 살짝 잡아다 봤는데 영락없이 귀여운 강아지 얼굴이다.
'너 진짜 오랜만에 다시 본다. 너무 반갑다. 바구미 때처럼 정말 뽀뽀라도 해 주고 싶을 정도다.'
놀란 똥그란 눈에 강아지처럼 짧은 앞발을 보니 진짜 영락없는 땅속에서 사는 강아지 모습이다. 누가 이름을 붙였는지 모르겠지만 정말 잘 붙였다고 생각이 든다. 진짜 마음 같아서는 집에 데려가서 키우고 싶을 정도였다. 그나저나 이 땅강아지 이 아이 손, 저 아이 손에 왔다 갔다 하면서 스트레스 많이 받았을 건데 잘 살고 있는지 모르겠다.
옛 노래 가사를 들으면 그때 시절이 생각나고, 오래전 일기장 속 내가 적은 글을 보면 그때로 돌아가는 것처럼, 요 곤충 녀석들을 다시 보고 만지니 30년 전 아이 모습으로 어느새 돌아가 있었다. 그러고 보니 어릴 적이나 30년이 지난 지금의 나는 여전히 똑같은 것 같다. '살아있는 것'에 대한 사랑, 특히나 '곤충에 대한 사랑'이 아직도 여전한 것을.
그래 그렇다. 시간이 지나도 내가 가진 생명에 대한 사랑은 그대로임을 제주도 와서 또 새롭게 느낀다.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가게 해 준 곤충 친구들. 바구미, 방아벌레, 그리고 땅강아지야 만나서 너무 반가웠고 고마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