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다. 며칠째 안개비가 흩날렸다 말았다를 반복한다. 공기 중에 습도가 너무 많으니 몸이 찐득찐득하다. 그 찝찝함을 머금었는지 책장에 전시해 놓은 책도 나 살기 힘들어하면서 온몸을 비틀고 난리를 친다. 집 안에만 있으면 책처럼 나도 휘어질 것 같아 허리를 곧추 세우고 밖으로 나가 걷기로 한다.
하얀 안개가 제주도를 삼켰다. 보슬보슬 소리 없이 안개비가 얼굴과 팔을 촉촉이 적신다. 비 오는 날 너무 무리하다간 넘어질 수도 있을 것 같아 가볍게 주상절리만 보고 집에 오기로 한다. 서귀북초에서 531번 버스를 타고 중문초에 내려 걸어간다.
대포주상절리 가는 길 by도도쌤
'주상절리 앞에 왜 대포가 붙었지?'궁금했다. 걸으니 여기 동네가 대포동이다. '아 그래서 대포가 붙은 거구나!'바로 이해가 된다. 장마라 습한 건 별로지만 반대로 해가 없으니 걷기 좋다. 구름이 해를 가려주고 시원한 바람도 중간중간 불어주고 내리막길이니 발걸음이 가볍다.
주상절리 앞 뿔소라 by도도쌤
주상절리, 여기 구면이다. 두 번이나 입구까지 왔는데 못 들어갔다. 한 번은 올레길 8코스 걷다가 '뭐 별것 있겠어?' 하면서 그냥 지나쳤었다. 또 한 번은 올래 패스 도장 찍으러 여길 왔었는데 몸과 마음이 탈진할 즈음에 도착해서 보는 걸 포기했었다.
그 두 번의 아쉬움들이 곱해져 보고 싶은 마음이 몇배가 되어 버린 거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세찬 파도소리가 얼른 오라고 마구 손짓을 한다. 그리고 너를 본 순간, 입이 다 물어지지가 않는다.
'우와'
첫 번째 감탄을 하게 만든 곳 by도도쌤
자연이 만들어낸 작품에 한동안 넋을 잃고 바라만 보았다. 검정 네모 마시멜로들이 바닷가에 겹겹이 쌓여있는데 보기만 해도 배가 불렀다. 게다가 파도가 어찌나 사납던지 검정 네모 마시멜로들을 다 녹일 기세로 팡팡 철석 철석 때린다. 하얀 물보라와 검정 바위의 오묘함에 나도 모르게 빨려 들고 있었다.
도처에 검정 마시멜로 잔치다. 저쪽에서 한 무리의 사람들이 있길래 또 가 봤는데 또 얼음이다. 3초 입 벌린 채 그 장엄함에 할 말을 잃는다.
두 번째 감탄을 하게 만든 곳 by도도쌤
사람이 저 검정 마시멜로들을 조각했다면 가능한 한 일일까 생각해보았다. 아무렴 불가능이다. 바닷물과 용암과 파도가 만든 일생일대의 걸작품을 목격하고 있다는 자체에 두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보고 보고 또 보고 눈과 마음에 넣었다.
거두절미하고 최근에 봤던 경치 중에 주상절리가 탑이다. 2,000원의 입장권에 이런 말도 안 되는 자연 미술 작품을 볼 수 있다는 자체가 행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짧은 10분 감상이었지만 어느 미술관에서의 미술작품을 보는 것보다 더 한 생생한 감동이었다. 제주도에 왔다면,파도와 검정 마시멜로의 환상 라이브 공연을 보고 싶다면 무조건 여기는 원 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