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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도쌤 Jul 04. 2022

제주에서, 7년 만에 첫 외박

논짓물 캠핑

아이들이 바다수영장인 논짓물에서 물놀이하며 신나게 놀고 있다. 아이들 보며 앉아 이런저런 얘길 하다가 문득 친구가 이런다.


"야! 내 캠핑 장비 다 있으니 오늘 저녁에 여기서 안 잘래?"

친구의 솔깃한 제안이다. 안 그래도 <타이탄의 도구들> 읽으면서, 베가본드(방랑자)의 삶을 한 번 살아보고 싶었는데 타이밍이 기가 막힌다.


친구의 제안에, 한 번도 해 보지 않은 것에 대한 강렬한 로망(자연을 벗 삼아 텐트에서 자 보는 것), 뭔가 깨달음이 있을 것 같은 기대가 뒤섞여 마음속에서 마구마구 꿈틀거렸다.

바다수영장, 논짓물 풍경 by도도쌤

여기서 자려면 무엇보다 아내의 허락이 1순위다. 조심스럽게 아내에게 의중을 던져본다.

"여보, 나 친구랑 여기서 한 번 자고 가면 안 돼?"


너무 솔직했나 아내 약간 당황한 눈빛이다. 알아서 하라고 하는데 자고 가라는 건지, 안 된다는 건지 확답을 안 주니 불안 불안하다.


 친구가 도와준다.

"우리 둘이서 먼저 캠핑 체험 함 해 볼게. 좋으면 다음에 아이들하고 같이 가족끼리 가 보게."

그 말에 아내 혹한다.


"그래. 한 번 자고 와."

'오에~~~~~~~~~'

아내의 승낙이 떨어지는 순간 겉으론 표현을 안 했지만 속으론 좋아 죽는 줄 알았다. 


그런데 정작 아내와 아이들만 탄 차가 쌩하니 내 앞을 지나가는데 뭔지 모를 허탈감과 미안함이 불쑥 밀려들었다. 캠핑 시작하지도 않았는데 가족에 대 소중함이 마구마구 밀려들었다.


친구 집으로 가 개운하게 샤워를 하고, 친구 옷을 입었다. 친구 옷에 고마움이 가득 느껴졌다. 캠핑 장비를 챙겨서 차에 싣고, 가까운 마트에서 초밥을 사서는 친구랑 단 둘이서만 다시 논짓물로 왔다. 모를 남자들만의 자유 차 바람을 타고 피부에 전해져 왔다.


텐트 치는 일이 우선이다. 어려울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쉽다. 친구가 하라는 대로 폴대를 잇고 구멍에 끼우고 세우니 텐트 모양이 나온다.

텐트를 치다 by도도쌤

압축 매트를 깔고, 침낭을 펼치고 랜턴 2개를 켜니 잘 집 두 개가 완성되었다. 잘 집이 완성되니 마음이 무지 평화롭다. 여기서 잘 생각을 하니 가슴이 두근두근 거린다.


'이게 정말 현실 맞아? 정말? 정말?' 계속해서 꿈을 꾸는 것만 같다. 편의점 가는 길 저절로 발이 움직인다. 근처 편의점에서 맥주와 과자와 라면을 사서, 미리 설치한 테이블로 가서 친구와 함께 축배를 든다.

파도소리를 들으며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다. by도도쌤

"철썩, 철썩, 처얼썩" 

세찬 파도 소리가 귓가를 울린다. 끝도 없는 파도 소리가 계속해서 들린다. 저 멀리 3단 콤보 파도가 하얗게 동시에 밀려오는데 장관이 따로 없다.


"건배"

9시 30분에 먹는 저녁이다. 오랜만에 마시는 맥주는 쓴데 안주는 참 달달하다. 초밥은 술술 넘어가고, 새우깡에 손이 저절로 간다.  


까만 밤바다에 밀려오는 하얀 파도, 그 파도 소리를 들으며 고3 시절 친구들 얘기에 여념이 없다. 보고 싶은 친구들도 생각이 나 늦은 시각에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묻는다.


"잘 곳, 렌트비 필요 없으니 비행기만 타고 온나."

친구의 말이 진심이다. 진심이 가득한 말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친구에게 가슴으로 배운다.


깜깜한 밤, 파도가 계단을 삼킬 듯이 내리친다.

"철썩철썩 챠~~~"

바닷물이 시멘트 계단에 사정없이 튄다.

'무섭다'


낮의 잔잔한 모습만 보다 밤의 거친 모습을 보니 파도도 성이 난다는 걸 깨닫는다. 지금까지 한 번도 못 쉬웠을 파도를 생각하니  열심히 일만 하는 친구 녀석들이 생각. 그 파도에게 친구에게 우리처럼 휴가를 주고 싶었다.


텐트에 누웠다. 여름 밤바다라 혹시나 추울 줄 알았는데  텐트 안이 따뜻하다. 옆 텐트 속 아저씨 코 고는 소리와 파도 소리가 뒤섞여 이 밤이 시끄럽다. 이 스르륵 온다.....


"짹 짹 짹짹짹"

새소리에 저절로 눈이 떠졌다. 무사히 텐트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새벽에 누군가 데크 위를 걷는 소리에 두어 번 숨죽여 귀를 쫑긋했지만 무사히 보냈다.


콸콸콸 쏟아지는 논짓물 민물에 아무렇게나 세수를 하고 바라본 제주 새벽하늘이 아름답다 못해 신비스럽다.

새벽 하늘과 논짓물 by도도쌤

저 멀리 색달 해안가와 이름 모를 절벽엔 물안개가 피어오르고, 주홍 태양빛에 하늘과 구름이 열린다. 그림이 따로 없다. 그 그림들이 논짓물 물에 반사되어 또 다른 그림이  물속에서 살아난다. 이 아침 제주 풍경을 보기 위해 캠핑을 했나 싶을 정도로 기대 이상의 장관이다. 친구 녀석도 뭉게뭉게 춤추는 구름이 신기한지 계속 하늘 멍이다.

하늘멍하는 친구 by도도쌤

좁은 텐트 속에서 잠을 잘 잤다고 생각했는데 아니다. 집에 오니 졸음이 쏟아진다. 잠은 오는데 희한하게 아이들과 아내가 더 사랑스럽게 느껴진다. 함께할 가족과 내 몸뚱이 마음껏 누울 수 있는 집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다. 그러고 보니, 아 키운다고 7년 동안 한 번도 밖에서 잠을 잔 적이 없다. 


그 노고에 대한 선물이 이번 캠핑인 모양이다. 멈추지 않는 거친 파도소리와 새벽 태양에 비친 논짓물 풍경을 사해준 자연이 먼저 고마웠다. 그리고 캠핑을 허락해준 아내가 또 고마웠다. 끝으로 이 모든 걸 실행으로 옮겨준 친구가 무지 고마웠다.


'고맙다! 친구야. 덕분에 꿈에서나 할 수 있는 일을 현실로 하게 되어서.'

논짓물 아침 풍경 by도도쌤

제주에서 7년 만에 첫 외박이 뜨거운 아침 햇살과 함께 아스라이 사라져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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