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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도쌤 Jul 07. 2022

각재기국이 뭐예요?

제주살이 1년

해수욕장에서 물놀이하다 생긴 귀 속 염증이 오래간다. 한 번씩 욱신 욱신 거리는데 불쾌할 정도로 신경이 쓰인다. 참다못해 다시 간 이비인후과, 의사 선생님이 귀 속 사진을 보여주면서 고막도 괜찮고 염증도 없다고 한다. 그런데 왜 왼쪽 귀 안이 아플까? 내 콧속 영상을 찬찬히 보여주시더니 코 안이 부어 코 양쪽과 이마까지 농이 꽉 차 귀까지 아픈 거라고 한다.


'헉' 귀가 아파서 갔는데 코 때문에 그런 거라니. 원래 콧대가 휘어져 비염에 축농증이 심한 걸 알고는 있었지만 영상과 사진을 보니 이거 큰일 나겠다 싶다. 5일 치 약 잘 먹고 다시 오라는데 힘이 쭉 빠지고 기운이 하나도 없다. 제주 와서 맑은 공기 마시고 매일 운동도 열심해해서 몸이 건강해진 줄 알았는데 되려 코는 더 안 좋아졌다니... 마음이 무겁다.


풀이 죽어서 집으로 터벅터벅 걸어가고 있는데 평소 한 번 가고 싶었던 가게 하나가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각재기국'이라는 이름 모를 음식이 이 가게 앞에 항상 붙어 있었는데 정체가 뭔지 너무 궁금했다. 코 때문에 속상한 마음, 뭐든지 먹고 힘내야겠다 싶어 혼자 문을 벌컥 열고 들어갔다.


이쪽이 시원하다며 자리까지 안내해주는 아주머니, 표현은 안 했지만 괜스레 기분이 좋아졌다.

"여기, 각재기국 하나 주세요." 하며 나도 덩달아 분 좋게 음식을 주문했다. 그리고 이어 나온 각재기국. 신선한 초록 배춧잎에 물고기 한 마리가 다다


'맛있는 집' 밥, 반찬, 그리고 각재기국 by도도쌤


'뭐지? 저 생선? 고등언가? 살이 두툼한데...'


바로 검색모드다. 내가 직접 먹을걸 생각하니 아무 생각 없이 주문한 각재기 생선이 너무 궁금하다. 폰에다 '각재기'를 치니 내가 아는 물고기 그림과 이름이 떡 하니 나온다.


 '전갱이'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각재기가 제주 사투리로 전갱이라고...'생각지도 못한 대반전이었다. 그럼 각재기국이란 전갱이 국인 거다. 부산 송도에서 친구랑 재밌게 잡았던 그 전갱이다. 이걸 국으로 해서 먹을 생각을 했다니 대단한 발상이라는 생각과 동시에 기 살기 힘겨웠던 제주향기가 음식에서 가득 전해져 왔다.


어쨌든 제주 사투리 덕에 전갱이 국을 다 먹어본다. 국물부터 한 번 떠먹는데 음 비리다. 그런데 뭔가 몸보신하는 느낌이 든다. 한 번 더 국물을 마시니 구수하다. 약간 삼계탕 맛이 난다. 그러면 전갱이 생선살 맛은 어떨까 떼어서 먹었더니 고등어 살 맛데 밋밋하다. 그래서 간장에 찍어 먹으니 한결 낫다.


국을 거의 다 먹었더니 온 몸에 땀이 뻘뻘뻘 난다. 특히 이마엔 땀이 줄줄줄 흐른다. 땀이라곤 잘 안나는 체질인데 희한하다. 각재기국 덕분에 이 더위에 몸보신 제대로 다. 흐르는 땀에 뭔가 안 좋은 귀속 기운과 콧속 기운이 싹 다 빠져나으면 좋겠다. 이열치열로 뜨뜻한 국물에 콧속 부기가 싹 다 가라앉았으면 좋겠다.



생선 국인 줄 미리 알았으면 먹지 않았을 '각재기국'. 그래도 후회는 없다. 먹어봤기에 제주의 맛을 제대로 실감했다. 그런데 사실, 전갱이 살을 먹으면서 고등어 구이가 갑자기 그리워지긴 했다. 하하하.


아무튼 제주도에 와서 제주 음식을 먹어봤다는 데서 큰 뿌듯함을 느낀다. 나도 제주인이 조금씩 되어가고 있다. 각재기국 뭐냐고요? 배춧잎이 들어간 맑은 전갱이 국이랍니다.

각재기국(전갱이국) by도도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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