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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도쌤 Jul 08. 2022

부모님 데려오고 싶을 정도로 아름다운 제주 숲길

비자림로 교래입구에서 출발, 3시간 코스(남조로 사려니숲길 입구까 걷기)

제주에 온 지 어느덧 100일이 훌쩍 넘었다. 집 밖을 나서기만 하면 보물을 만나기나 하듯 설레는 제주 길. 오늘도 잊을 수 없는 보물 하나를 마음에 고이 간직하고 왔다. 이 보물을 혼자만 간직하기엔 너무 아깝다. 그래서 시간이 되는 분이면 여길 강력히 추천한다. 부모님 모시고 5시간 정도 종일 걷기엔 최고의 제주 장소다.


"야! 여긴 진짜 부모님 모시고 와도 되겠다."

"좋제?"

"어. 어르신들 영실코스 같은 계단 많은 곳은 힘들어서 못 간다. 이젠. 근데 여기 너무 좋은데."

"나도 여기가 이렇게 아름다운 길인지 다시 알았다."

"진짜 하루 종일 날 잡고 부모님 모시고, 천천히 자연을 즐기면서 그동안 못다 한 이야기 나누면 진짜 좋을 것 같다. 우리나라에 이런 길이 있어나 싶을 정돈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떠오르지가 않는데...."

"여기 우리나라 아니야. 탐라국이야."

"하하하."


281번을 타고 꼬불꼬불 한라산 산길을 지나, 성판악 버스정류장 다음 코스인 '교래입구'에 내렸다. 왼쪽으로 비자림로가 시원하게 펼쳐져 있고, '비자림로 교래입구' 버스정류장 옆으로 조그마한 숲길 입구가 보인다. 일명 사려니숲길 입구인데 이 길을 쭉 따라서 3시간 정도 걸으면 우리가 흔히 아는 '남조로 사려니숲길 입구'까지 이어진다.

비자림로 교래입구, 사려니숲길 입구 풍경 by도도쌤


도로와 차, 건물과 사람이 많은 인간세상에서 초록빛 나무 세상에 들어오니 한 순간에 몸과 마음이 정화된다. 순간 내가 나무가 되는 신비한 경험을 한다. 이 초록빛이 주는 편안함 속에 그냥 저절로 걸어지는 마법의 힘이 이곳에선 펼쳐진다.


3월에 걸었던 이 길을 친구 내외와 다시 찾았다. 아내가 마음에 쏙 들어했던 길이다. 그땐 배도 고프고, 날씨도 춥고, 길도 모르겠고, 뭔가 준비되지 않은 여행이었다면 이번에는 김밥도 준비했고, 날씨도 따뜻하고, 길도 알고, 모든 게 준비되어 마음이 편안했다. 여기 3개월 정도 풀잎과 나뭇잎이 자정말 초록 세상이 되어버렸다.


'그때 그 길 맞아? 이 길 왜 이렇게 예쁘지?'


10분 정도 걸으니 쉼터가 나온다. 많은 분들이 쉬고 계신다. 화장실도 다녀오고 이제 본격적으로 여기서 3시간을 장작 걸어야 한다. 지도를 보고 갈 길을 체크한다.

사려니숲길 지도 by도도쌤

"우리가 있는 곳이 빨간색 점이네. 빨간색 길 80분, 노란색 길 90분, 합쳐서 3시간 정도 걸어야 하네."

"그럼 슬슬 가 볼까?"

그렇게 해서 시작한 숲길 걷기, 시작이 너무 좋다.


"야, 여기 서 봐봐. 죽여준다."

"포즈도 연애 때처럼 한 번 해봐."

(친구가 부인을 덥석 안는다.)

"하하하하하. 찰칵!"

"너희도 한 번 해 봐 봐."

(아내랑 손잡고 초록 숲 속을 배경으로 마주 본다.)

"뭔가 어색한데... 하하하. 찰칵!"

시원하게 맞아주는 초록 나뭇잎 세상 by도도쌤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 망정이지 누가 시켰다면 절대 하지 않았을 연애시절 포즈가 저절로 나오는 아름다움이다. 이 자연이 뭐라고 그 죽어있던 연애세포를 깨운다. 초록 나뭇잎 사이로 끝없이 펼쳐진 붉은 길,  그 길에 우린 서 있다. 마주 보고 손도 잡고, 안아가며, 그렇게 제주의 허파 속에서 하하하하 웃으며 잊을 수 없는 추억의 한 장면을 담아본다.


바깥은 찜통 더운데 여긴 시원하다. 자연이 만들어준 숲 속 그늘 세상이다.  나무가 선물해주는 자연 그늘의 소중함. 묵묵히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하는 나무. 그 나무들 덕분에 이 초록 찬란한 그늘 세상을 걸을 수 있다. 그리고 한 번씩 스르르르륵 스르르륵 나뭇잎을 타고 자연 물결 바람이 이는데 발걸음을 멈추게 하고, 두 눈을 감게 만들고, 지친 몸과 마음을 스르르륵 스르르륵 보듬어 준다.

길이 초록초록하니 참 예쁘다. by도도쌤


이야기도 끊임없이 나온다. 아름다운 곳에 있다 보니 저절로 나오는 옛 추억 속 아름다운 이야기다. 초록 자연이 주는 아름다음에 저절로 이야기샘이 샘솟는 거다. 고3 시절 풋풋한 사랑 얘기에 친구와 나 푸하하하하 크크크크 거리며 이 숲 속에서 마음껏 웃고 떠든다. 큰 소리로 웃고 떠들어도 누가 뭐라고 할 이 없으니 이 보다 좋은 숲 속 수다방이 어디 있겠나 싶다. 그런 너무 웃고 떠들었나. 사람 마주치기도 힘든 이곳에 "길 좀 비켜주세요."라고 누가 조심스럽게 말해준다. 그러고 보니 우리 넷, 이 숲 속 길 전세 내며 꽉 막고 있고 있었다. 하하하.

마음 놓고 편안히 얘기하게 하는 숲속길 by도도쌤

자연은 문득문득 우리를 깜짝깜짝 놀라게 한다.  길가에 핀 파란 산수국 꽃과 하늘 높이 일자로 솟은 삼나무들 사이로 초록색 고사리 잎들이 끝도 없이 펼쳐져 있다.

"야! 여기 유니콘 나오는 거 아니야?"

유니콘이 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것처럼 신비스러운 곳을 우연히 길을 걷다 만났다. 그 숲 속 만화 속 풍경을 한참이나 친구랑 둘이서 유니콘이 어디 있나 찾아본다.  친구랑 둘이서 얼마나 오래 이 숲을 쳐다봤는지 아내랑 친구 부인은 저 멀리 보이지도 않는다.

유니콘이 나올법한 숲속 풍경 by도도쌤

친구랑 걷다, 아내랑 걷다, 그러다 넷이서 걷다, 이 초록초록 숲 속 그늘 길을 걷고 또 걷는다. 아무것도 안 하고, 이렇게 걷는 일에만 몰두하는 게 그저 좋다. 그리고 희한하게 이렇게 오래 걸은 게 시간이 지나도 기억이 남는다. 여기 고, 저기 고, 좋은 곳을 한꺼번에 이곳저곳 보는 여행은 이제 별로인 것 같다. 지나고 보면 그런 여행은 바쁘고 피곤했던 기억만 남는다. 마음 놓고 편안하게 여유로워지려고 여행을 왔는데 되려 피곤만 쌓이면 여행이 여행이 아닌 거다. 하루에 한 곳, 마음 놓고 놀기, 그곳에 푹 빠지기, 그게 여행의 백미 아닌가 생각한다.


7월의 사려니숲길 좋다 좋아. by도도쌤


생각보다 훨씬 빨리 도착했다. 아내 왈, 우리 그동안 많이 걸어서 체력이 올라가 그런 거라며 깜짝 놀란다. 내가 생각하기엔 그것도 맞지만 김밥도 먹고 좋은 풍경에 좋은 사람과 좋은 얘기를 해서 즐겁게 걸어서 인 것 같다.


친구 말처럼 부모님 모시고 오고 싶은 길이다. 온종일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고 싶은 길이다. 부모님께 그동안 평생 한 번도 못 들은 어릴 적 내 얘기를 잔뜩 듣고 싶은 길이다. 사진을 넣으려고 봤더니 사진 모두가 또 초록세상이다. 다시 그 초록세상으로 들어온 것 같다.

또 만났다. 너. 사려니 숲길. 다시 조만간 보자. (2022.7.7) by도도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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