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 여기 숲길에 푹 빠졌다. 날이 더워 숲 길이 걷고 싶다는 아내를 위해 어디를 갈까 고민하다 생각난 곳이 바로 이곳이다. 블로그 '제주 로댕'님 글 보고 여기 한 번 오면 참 좋겠다고 생각한 곳인데 실제와 보니 더 좋다. 등잔 밑이 어둡다더니 집에서 차로 20분이면 되는 길, 가까운 곳에 이렇게 아름다운 곳이 꼭꼭 숨겨져 있었다니 놀람의 연속이다.
머체왓소롱콧길 입구 by도도썀
다 걷고 혼자서 주저리주저리 녹음까지 했다. 이 길을 혼자 즐기기엔 너무 아까워서.
"좋은 숲길을 발견한다는 건 참 행운이다. 그런 좋은 숲길을 남에게 알려주는 것도 참 기쁜 일이다. 오늘 찾은 우리만 알고 싶은, 찐한 숲 향기 가득 나는, '머체왓 소롱콧길'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주황색이 오늘 걸은 '머체왓소롱콧길'이다 by도도쌤
그래, 소개한다고 했으니 제대로 소개해 보자. 위치는 서귀포에서 동쪽으로 20여분 떨어져 있는 아름다운 숲길로 알려진 '머체왓 숲길'의 '머체왓 소롱콧길'이다.
머체왓 숲길에는 총 3가지 길이 있는데, 연두색 머체왓 숲길, 주황색 머체왓 소롱콧길, 파란색 서중천 탐방로가 있다. 그중에 첫 번째 머체왓 숲길은 이미 4월에 한 번 다녀왔었다. 관종 군락지와 편백나무의 환상 조합이 예술이었던 곳이다.
그럼 오늘 간 '머체왓 소롱콧길'은? 음.. 대답하기 정말 힘들다. 둘 다 좋은 건 확실한데 한 가지 측면에선 확실히 머체왓 소롱콧길이 확실히 낫다. 그건 다름 아닌 편백나무와 삼나무가 만든 숲길이 어마 무시하게 넓다는 거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편백나무와 삼나무 세상이다. by도도쌤
제주 와서 편백나무와 삼나무 있는 곳은 많이 가 봤는데 광범위하게 촘촘하게 많이 심겨있는 곳은 처음이다. 가도 가도 편백나무 삼나무가 끝이 없다. 10분 넘게 계속 이어진 길에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아내와 나 감탄하고 감탄했다.
행복해 한 발, 또 행복해 한 발, 쉼 호흡 한 번 하고 좋아, 또 심호흡 한 번 하고 좋아. 그렇게 한 발 한 발, 한 숨 한 숨 행복해 좋아요 소리가 저절로 나오는 길이었다. 여기가 소롱콧길의 하이라이트니 천천히 숲 향기 맡아가며 쉬어가며 마음껏 숲 속 세상을 즐겼으면 좋겠다.
두 마리의 누워있는 용들이 보이는가? 가까이서 보면 정말 용이 살아있는 것 같다. by도도쌤
사실, 처음 소롱콧길에 들어서자마자 봤던 용 모양의 바위도 충격적이었다. 아내가 안내 속 사진이 용 맞냐고 그러는데 아무리 봐도 잘 모르겠다. 그러면서 안내 표지판 뒤 실제 바위가 이 사진 아니냐고 한다. 맞다. 맞아. 실제 바위를 보니 두 마리의 용이 정말 고이 잠들어 있다. 이런 멋진 바위를 실제 두 눈으로 볼 줄이야. "대박. 대박. 대박"이라고 몇 번이나 말했는지 모른다.
나무 뿌리들이 계단을 만들고 있다. 계단이 미끄러우니 조심하길 바란다. by도도쌤
제주의 땅은 바위가 많다. 그래서 그런지 여기 나무뿌리도 땅속으로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땅 위로 스멀스멀 기어가고 있다. 데크길이 따로 필요가 없다. 뿌리가 계단이 된다. 살기 위해 힘차게 뻗은 뿌리들의 모습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그러고 보니 뿌리, 줄기, 가지가 다 하나다. 뭐가 뿌리고 뭐가 가지고 뭐가 줄기인지 도통 모르겠다. 여기 물에 젖은 뿌리가 빙판처럼 미끄러우니 정말 조심하기 바란다.(스틱이 없었다면 아내와 나 몇 번이나 넘어졌을 거다.)
중간중간에 만난 버섯들 구경도 쏠쏠했다. 새빨간 사과 같은 버섯, 하얀 눈송이 같은 버섯, 빵 모양의 버섯. 이 축축하고 습한 곳에서 너희들 자라기에 최적의 조건이겠다 생각이 들었다.
1시간 40분 동안 짧고 굵게 걸은 '머체왓 소롱콧길'. 이 길에서 만난 사람은 10명이 채 되지 않았다. 그만큼 조용하고 인적이 드물고 자연 그대로를 볼 수 있는 곳이다. 아내와 나 둘만 알고 싶은 길이라고 몇 번이나 얘기했는지 모르겠다.
'제주 와서 아무 생각 없이 편백나무랑 삼나무 있는 곳에서 계속 걷고 싶다.' 그러면 여기가 정답이다. 지금껏 걸은 길 중에서 편백나무랑 삼나무가 제일 많이 제일 넓게 심겨 있는 곳이다. 매일 걸어도 좋은 길, 이 길을 꼭 한 번 가 보기 바란다.